'신입생 유치 실패'로 학과 통폐합 손 대는 대학들, 피해는 오로지 재학생 몫

학과 공통점 고려하지 않고 재학생들 기본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채 통폐합 추진하는 대학 늘어

재학생들 “학과 통폐합 불가피하지만 피해 최소화해야”

(게티이미지뱅크)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남의정 대학생 기자] 인구 감소의 여파가 대학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주요 대학에서 학령인구 감소와 학과 경쟁력 저하로 인해 기존 학과를 없애거나 비슷한 학과끼리 합치는 학과 통폐합이 추진 중이다.

취업률, 입시 경쟁률 등을 고려해 입학 경쟁률이 낮거나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하는 대학이 늘어나는 한편, 몇몇 대학에서는 학문 간 공통점을 고려하지 않거나 기존 학생들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채 통폐합을 추진해 재학생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학과 경쟁력만이 아니라, 학문 간 공통점도 고려해야...
삼육대학교는 2021년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통합하고 항공 관광 학문을 포함시켜 항공관광외국어학부를 신설했다. 당시 대다수의 재학생들은 항공관광외국어학부 신설을 두고 학과 통합에 대한 의문점을 가졌다.

△삼육대학교 캠퍼스 전경(사진 = 남의정 대학생 기자).


삼육대 중국어학과에 재학 중인 A씨는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가 ‘동양어문학부’로 운영되었다면 혼란이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갑자기 ‘항공관광’이라는 말이 붙을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타 학과 학생들도 갑작스럽게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가 항공관광학부가 된 것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A씨에 의하면, 학교 측은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의 경쟁력이 낮아 학과 유지가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미래 발전 가능성이 큰 항공과 관광을 언어와 접목해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통폐합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어와 일본어를 깊이 있게 학습하기 위해 해당 학과에 입학한 기존 재학생들은 갑작스러운 ‘항공’과 ‘관광’분야의 등장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성신여대에서는 문화예술경영학과(이하 문예경)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이하 미컴)의 통합이 논의 중이다. 성신여대는 지난해 11월, 학과 통합과 관련해 소규모 간담회를 개최했다.

성신여대 역시 대학 운영의 재정 약화로 인해 학과 통합이 필요하며, 통합이 규모의 경제를 가져올 것이라는 교수들의 의견과 달리, 공통점이 없는 두 학과의 통합에 학생들은 당황스러움을 표출했다. 미컴과와 문예경은 다른 캠퍼스에 위치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대학과 융합문화예술대학으로 소속도 다르다.

성신여대 미컴과 재학생 B씨는 “작년 11월경, 갑작스럽게 학과 단톡방을 통해 학과 통합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문예경에 재학 중인 지인은 뮤지컬과 연극 분야의 문화 경영학과 언론, 출판, 광고 등을 다루는 미디어학은 천지차이”라며 “학생들은 겹치는 분야가 적은 두 학과가 왜 통합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학과 통폐합…학생 기본 권리는 어디로?
학과가 통합되면서 많은 학생의 수업권이 침해받고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학문이 통합되면서 학생들에게 이전과 같은 양질의 강의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양대 ERICA 캠퍼스에서는 2019년 정보사회학과와 신문방송학과가 통합돼 정보사회미디어학과로 재탄생됐다. 과거 정보사회학과는 학생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정부의 프라임 사업의 영향으로 학생과 교수의 수가 적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타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 영상 관련 분야를 포함해 커리큘럼 및 학과 명칭을 개편하고 있는 만큼, 신문방송학과도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학과 통합을 직접 경험한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C씨는 학과 통합에 대해 “처음 학교 입학할 때는 학사과정이 ‘정보사회’ 혹은 ‘신문방송’으로 뚜렷했다면, 정보사회미디어학과는 와 닿지 않는 느낌”이라며 “신입생 또는 우리 대학을 지원할 고등학생들이 우리 학과를 어떻게 생각할지 우려됐다”고 말했다.

이어 C씨는 “통합 이전에는 신문방송학과와 정보사회학과 각각 확실한 커리큘럼이 있었으나 학과 통합으로 인해 여러 변화가 생겼다”며 “학생들은 폐지되거나 신설되는 교과목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고, 나 역시 휴학 후 다시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육대 중국어학과, 일본어학과 학생들도 수업권 및 학위 보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과가 통합된 2021년도부터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의 수업은 단계적으로 사라졌다. 원어민 교수의 수업은 한국인 교수의 강의로 대체되고, 수강할 과목들은 줄고, 항공관광외국어학부의 신규 강의로 채워졌다.

2020년도까지 신입생을 받았던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는 20학번이 4학년인 올해, 4학년 커리큘럼만 운영하며 1,2,3학년의 커리큘럼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쉼 없이 대학을 다닌 학생들에게는 불이익이 없다. 문제는 이미 휴학을 했거나 휴학 예정인 재학생들이다. 학교 측은 이런 학생들에게 기존학과와 항공관광외국어학부 중 소속 선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학과 소속을 유지하면 학업우수장학금, 성적향상장학금을 비롯한 여러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없고, 학점 이수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어·일본어학과 강의 수가 줄어들어 전공학점을 채우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항공관광외국어학부 학생 D씨는 “항공관광외국어학부의 소속 학생은 항공, 관광 강의를 최소 36학점 이수해야 한다”며 “중국어, 일본어 전공자들은 학과 통폐합으로 인해 원치 않는 강의를 수강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타 학과로 전과하는 경우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삼육대 일본어학과·중국어학과·항공관광외국어학부 학생들은 수업권 보장 및 학위 유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어학과 재학생 A씨는 “지난해 2학기, 중국어학과에는 약 30명의 휴학생이 있었다. 현재 이들의 수업권과 학위가 보장되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며 “군 휴학한 학생들조차도 학교에서 학위를 보장해주겠다는 확실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치 않은 학과 통합으로 인해 피해 보는 것은 학생들”이라며 “최소한 학위와 수업권이라도 보장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서명운동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위)삼육대 중국어학과, 일본어학과, 항공관광외국어학부가 진행한 서명운동 (사진 제공= 삼육대 중국어학과 학생회) (중간)서명운동에 사용한 양식 (사진 제공= 삼육대 중국어학과 학생회) (아래)삼육대 중국어학과, 일본어학과가 학교 측에 제출한 건의안 (사진 제공= 삼육대 중국어학과 학생회)


A씨는 “해당 서류 전달 이후, 얼마 전부터 교무처에서 학위와 수업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전했다.

성신여대 미컴과와 문예경의 통합과정에서도 해당 학과 학생들의 알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미컴과인 B씨는 “통합과정에서 학생들이 체감하는 의견반영 정도는 처참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과 통합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어떻게 학생 의견을 수렴하고 커리큘럼을 바뀔지 모르겠다”며 “두 학과 학생회들의 노력으로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교수님들은 정확히 논의된 바는 없으나 두 학과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봤다고만 하신다”고 말했다.

학과 통폐합,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더 깊은 대화 했으면
작년, 한국외대에서는 학과 통폐합 문제를 두고 학교와 학생 사이의 큰 충돌이 있었다. 한국외대는 글로벌 캠퍼스의 통번역대학의 △일본어통번역학과 △중국어통번역학과 △영어통번역학부 △태국어통번역학과와 국제지역대학의 △인도학과 △프랑스학과 △러시아학과 △브라질학과 총 4개 학과를 폐과시켰다. 문제는 폐과 학생들에게 서울캠퍼스의 유사한 이름을 가진 학과 졸업장을 수여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외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은 간담회를 개최하고 시위를 하는 등 여러 노력을 보여줬으나 학교 측은 해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외대 전략홍보팀은 “이는 구조조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외대’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과 통폐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학교와의 ‘소통’을 원한다.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C씨는 “과 통합은 장기적으로 학교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기에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만은 않는다”며 “학교의 상황이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학과 통합의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교수, 학생 등)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주셨으면 한다”며 바람을 전했다.

삼육대 중국어학과 A씨는 “학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요즘, 학교 입장에서 학과 통폐합이 불가피한 부분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그러나 학과 통폐합으로 인해 기존학과 학생들이 사소한 부분도 피해받지 않았으면 한다”며 “추후 우리 대학에서 또 다른 학과 개편이 있다면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공유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과학과의 축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신여대 B씨는 “현재 성신여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AI 등 공학 학과의 입학 정원을 증원하고, 그만큼 문과의 입학 정원수가 축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 대학은 공학계 학과를 증가시키고,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자리를 잃고 있다”며 “대학이 학위 팔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상아탑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한편, 이번 학과 통폐합 문제와 관련해 한양대, 삼육대, 성신여대 관계자에게 취재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khm@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