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를 게 뭐가 있어? ②] “퀴어소설 마니아인 동생에게 커밍아웃 했어요”
입력 2023-04-05 15:35:32
수정 2023-04-06 14:37:40
이성애자와 다를 게 없는, 동성애자의 사랑···동성애자들 ‘개방적인 나라로 가고 싶어, 외국에서의 삶 꿈꿔’
[다를 게 뭐가 있어 ①]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뀐 성소수자들···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모습[다를 게 뭐가 있어? ③]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 게이 게토(Ghetto)로 불리는 ‘낙원동’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남의정 대학생 기자] 매체에서 그려내는 성 소수자들의 사랑은 용감하고 당당하다. 실제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성 소수자들은 어떨까. 그들도 당당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의하는 성 소수자 4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게이지만 3년간 여자친구 만난 경험 있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교육받았다. 자신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바리스타인 우연(31) 씨는 “학창 시절, 같은 반 남자친구를 좋아하면서 내 성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연애란 남녀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마음은 남자를 좋아하지만, 연애는 당연히 여자랑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게이인 우연 씨는 실제 3년간 여자친구를 만난 경험이 있다. 당시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자친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3년이란 시간을 함께했다. 그는 “생각보다 정신적 사랑은 서로를 더 돈독하게 해주더라”며 “결국 결혼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이별했다”고 말했다.
동생에게 커밍아웃했다는 우연 씨는 재밌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동생이 중학생 때 퀴어소설 마니아였다”며 “학창 시절, 동생이 나에게 남자를 좋아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당황했지만, 게이가 아닌 척했다”고 전했다.
10년 뒤, 그는 가족여행에서 동생에게 커밍아웃했다. 그는 “동생이 게이 친구 판타지가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커밍아웃해서 기뻐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성 소수자에게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났던 성 소수자들은 친구보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기가 훨씬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지인들에게는 커밍아웃했으나,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수현(가명·31) 씨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본인들 기준에서)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것은 그저 기대에 못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키우며 공고히 쌓아온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두려움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지인들에게 거침없이 여자친구를 자랑하는 사랑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고, 깊은 관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여자친구 사진 보여드릴까요?’라고 말해버린다”며 “그러면 대부분 웃으면서 커플 사진을 함께 감상해 주신다”고 전했다.
“동성애 커플이 이성애 커플보다 좋은 점이요?”
성 소수자들의 연애 시작은 이성애자와 어떻게 다를까. 다들 이성애자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김은혜 씨는 “만남을 시작할 때,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성향인지 알아내는 게 힘들다”며 “잘못했다간, 상대방이 거부감을 보이며 관계 자체가 틀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민 씨도 “주변에서 퀴어 전용 데이팅 앱, 클럽 등을 통해 애인을 사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며 “성 소수자들은 학교 강의실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번호를 묻는 등의 행동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의 연애 역시 이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이수현 씨의 여자친구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처음에는 동네 친한 언니가 생겼다고만 생각했다”며 “그런데, 지속적으로 연락도 하고 여자친구가 진실된 면을 자주 보여줘서 천천히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박정민 씨는 “연애를 시작하고 나면 이성애자 커플과 딱히 다를 것도, 특별한 것도 없다”며 “매체에 나오는 비 성소수자들의 연애에서 성별만 바뀐 거로 생각하면 쉽다”고 말했다.
동성애 커플은 이성애 커플보다 모든 걸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수현 씨는 “목욕탕이나 수영장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함께할 수 있다”며 동성애 커플의 장점을 드러냈다.
동성애자들, 결혼을 위해서라면 국내보다 해외 선호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애 결혼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는 동성애자들도 있다. 김은혜 씨는 “결혼식을 올릴 수는 있지만, 사회의 공식적인 인정이 없어 관계가 법으로 보장받을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정민 씨는 “동성애 결혼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염두에 둬서 영어 공부에도 신경 쓰고 있다”며 “꼭 결혼 때문이 아니더라도 퀴어에 대한 생각이 개방적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해외 취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현 씨는 “외국인도 결혼이 가능한 국가를 알아보고 있다”며 계획을 전했다.
해방감과 행복함이 있는, LA 레즈비언 커플의 삶
해외 동성애 커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최유빈 씨(28)는 멕시코인인 Arianna(이하 아리)와 결혼해 미국 LA에 거주 중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오픈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 최 씨는 “어렸을 때, 우리에게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매체가 없었다”며 “그 역할을 우리가 해주고 싶고, 우리의 행복한 기운을 공유하고 싶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가 바라보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은 뭔가요.
“레즈비언으로서 한국의 보편적인 사회 안에서 자라 왔고, 항상 어딘가에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처럼 느꼈어요. 여행하면서 느꼈던 해방감과 행복함이 지금의 저를 LA로 오게 한 것 같아요. LA에는 레즈비언, 게이 커뮤니티가 굉장히 많아요. 국적과 인종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즐거운 일이에요.”
결혼생활은 만족하시나요.
“가장 좋은 점은 이성애자 커플의 여자는 ‘청소해야 하고, 집에서 아기를 돌봐야 한다.’ 이런 성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정해진 성 역할이 아예 없죠. 단점도 있어요. 저희가 여행을 계획을 세울 때, 한 친구가 저희와 같이 가고 싶다며 방을 쉐어할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저희는 커플끼리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 가는 건데, 친구는 여자 3명끼리 여행 가는 것처럼 생각하더라고요. 보통 이성애자 커플과 친구가 여행 갈 때 친구가 같은 방에서 머물러도 되냐고 물어보나요? 아닐 것 같아요.”
가족계획은 세우셨나요.
“저와 아리 한 명씩 아기를 가져 총 4명의 가족을 계획하고 있어요. 미국에는 레즈비언을 위한 여러 가지 의료 절차가 많아, 이를 통해 아기를 가질 예정입니다. 남들보다 더 어렵고, 돈도 더 들겠지만 꿈에 그리던 일이라 설레는 맘이 더 커요.”
결혼을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남들의 시선보다 둘만의 감정을 제일 우선시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결코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테니까요.”
매일 퀴어퍼레이드인 세상 꿈꾸는 성소수자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성 소수자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까.
김은혜 씨는 “항상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힘들다”며 “남녀 간의 사랑처럼 다양한 성별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니 받아들이지 못해도 비난은 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바람을 전했다.
이수현 씨는 “퀴어퍼레이드 때, 행진을 따라다니며 혐오 발언을 하시던 아저씨가 기억난다”며 “당시, 퀴어인들이 아저씨를 향해 ‘사랑해요!’, ‘여기서 같이 춤춰요!’ 하니 그분이 못 이기는 척 행진에 참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퀴어라는 존재를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면 퀴어퍼레이드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며 “그런 세상이 온다면 매일이 퀴어 퍼레이드일 거 같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성소수자들, 지금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지금도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이들을 위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자기혐오를 하기도 했다는 우연 씨는 “지금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며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성별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은혜 씨는 “다들 자신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을 것”이라며 “혼자가 아니라 곁에 당신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고 있는 우리가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수현 씨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우리는 어릴 때, 왕자와 공주가 서로 사랑한다고 배웠고 이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는 동화책은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 혼란기가 자신을 깊이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우리는 흔히 여자에게는 “남자친구 있어?”, 남자에게는 “여자친구 있어?”라고 묻고는 한다. 문득, 미드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대사가 떠오른다. “Are you dating someone?” 짧은 질문 하나가 성 소수자들을 더 당당하게 만든다. 질문 하나로 세상은 변화시켜보는 건 어떨까.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