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는 글로벌로 뻗어나가는데, 창작자의 보호는 글쎄···
저작권 유효기간 사후70년···창작활동은 ‘가족 비즈니스’
만화 <검정고무신>의 故이우영 작가 사건을 계기로 저작권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뜨겁다. (주)형설앤(이하 형설)에 ‘검정고무신과 관련된 작품 활동 및 2차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 권리를 양도’한 사업권 설정 계약에 대한 저작권 소송을 이어오던 원저작자 이우영 작가는 지난 달 12일 세상을 등졌다. 이로 인해 ‘저작권법률지원센터’가 설립됐다.
저작권 보호의 필요성
2004년 동화책 <구름빵>을 출간한 백희나 작가도 책의 저작권과 사업권을 출판사에 양도한 ‘매절계약’으로 2017년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패소했다. 지난해에는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가 저작권자와 출판사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공연이 이뤄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웹툰업계의 매절계약 및 공동저작권 개념이 붙은 ‘최소수입 보장 계약(MG제)’도 위험성 논란이 있으며, 음반업계 역시 음악 생성 인공지능(AI)훈련이 저작권을 침해한다면서 음원 데이터 사용을 금지했다.
최근에는 ‘누누티비’가 논란이 됐다. 불법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이트 ‘누누티비’는 2021년 6월 개설돼 국내외 유료 OTT 및 공중파·종편 등의 신작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며 저작권 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전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브라보 박연진’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더글로리>나 신작 <길복순>의 불법스트리밍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저작권 보호는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몇 해 전부터 국내 콘텐츠가 글로벌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문화예술강국’으로 불리지만 아직 저작권 인식은 뒤쳐져 있는 게 현실이다. 업계의 오랜 불공정 계약 논란은 지속되고 있고, 제작자와 창작자 간 제도적·구조적 차원에서 개선돼야할 부분도 많다는 지적이다.
창작자의 권리, 저작권
저작권이란 말 그대로 시, 소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컴퓨터프로그램 등과 같은 ‘저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가지는 권리다. 예를 들어, 작품을 창작한 작가는 원고 그대로 출판·배포할 수 있는 복제·배포권과 다른 형태로 저작할 수 있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연극 등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연권, 방송물로 만들 수 있는 방송권 등 여러 가지 권리를 지닌다. 이 모든 권리가 곧 저작권이며 크게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 있다.
저작권은 매매·상속·대여·양도가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인 대가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저작재산권이라고 한다. 만일 누군가 허락 없이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하면 저작권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상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저작자는 작품의 제목, 내용 등이 바뀌지 않도록 하는 동일성유지권, 자신의 성명을 표시할 수 있는 성명표시권, 출판 여부를 결정하는 공표권 등을 가지는데, 이는 저작인격권이라 하며 저작재산권과 구분된다. 주로 저작자의 인격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주어진 권리다.
앞서 언급됐던 사례들은 쉽게 말하면 저작권의 부분 양도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고 팔 수 있는 저작권의 여러 권리 중 일부를 양도하는 계약이 논란을 빚은 것이다. 故이우영 작가의 <검정고무신>은 본편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사업권을 무기한 양도한다는 조항으로 인해,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은 출판사에 저작재산권을 통째로 넘기는 계약이 문제였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논란의 경우 저작권자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공연권을 침해 받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저작권이 창작자 개인의 권리라면, 불공정한 계약에 서명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라고 하지만 온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작품을 내고 사업을 진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들 ‘창작의 고통’이라 표현하는 것처럼, 본인의 일만 해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회사나 플랫폼과의 협업도 대게 필수적이다. 문제는 함께하는 순간에 저작권자와 회사가 대등한 관계가 아닐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창작자가 계약조항까지 확인 어려운 구조···산업 발전한 만큼 대책 마련해야
한광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전문강사
저작권 문제와 해법에 대한 논의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한광수 전문 강사(위촉)을 만났다. 그에게 저작권 관련 이슈에 대해 물었다."
<검정고무신>, <구름빵> 등의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구름빵>은 쉽게 말하면 합법적인 계약에 의해 저작권을 넘긴 것이다. 외주 용역 계약을 하면서 넘긴 거고, <검정고무신>은 아웃소싱은 아니었지만 저작권의 일부인 사업권, 비즈니스 권한을 너무나 많이 넘기면서 故이우영 작가가 통제력을 상실한 걸로 보인다. 건 별로 때마다 일을 진행했어도 되는데, 비즈니스 전체에 대한 권리를 다 넘겨버리니까 사실상 권리 행사를 최초에 다 해버린 거다."
예전부터 ‘매절계약’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창작자가 왜 이런 계약을 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K출판사를 통해 만화책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림 관련 캐릭터라든지 스토리를 통한 애니메이션 등 여러 비즈니스가 파생될 텐데, 작가 혼자서 이 모든 걸 컨트롤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K출판사가 이를 관리하며 도움을 주는데, 이때 향후 수익이 얼마나 어떻게 날 지는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최초 계약을 주도면밀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본인과 K회사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사의 덩치가 훨씬 클뿐더러 현실적으로 작가는 수익의 대부분을 본인의 작품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미 몇 차례 작품을 출간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계약 당시 수익이 적거나 거의 없는 작가 입장에서는 회사가 내미는 계약에 대부분 동의하면서 사업권이나 저작권 넘기는 조건을 수락하는 경우가 많다."
‘누누티비’와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방도가 없나
"‘누누티비’의 경우 서버를 도미니카공화국에 두고 있으니 수사 협조도 그렇고 관련자를 잡아내기도 어렵다. 정부가 미리 도메인을 다 사서 막기 어려운 이유가 정부가 도메인 한 만 개를 사 놓으면 사업자는 이걸 피해서 다른 도메인에 사이트 운영해버리면 그만이다. 다행히 트래픽 비용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압박을 해 오니까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했지만, ‘누누티비’가 없어진다고 해서 불법 복제가 없어지는 건 절대 아닐 거다. 노노티비가 나올 수도 있고, 뭐 재미티비가 나올 수도 있고 누군가 새로 나오면서 이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기가 없으면 불법도 없다. 합법적인 매출이 늘어나고 한류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일은 앞으로도 생길 텐데, 이게 한류 문화의 중흥기에 겪어야 될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걸로 보인다. 헌데 ‘누누티비’는 한국어로 돼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기도 했고, 피해액도 5조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잘 폐쇄됐다. 결국 불법 서비스 제공자의 처벌보다는 개개인의 인식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물론 계속 교육 캠페인도 이뤄지고 있긴 하고, 정부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산업이 발달해 나아가는 만큼 적극 확대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창작자들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제도적으로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사실 지금 문체부에서 표준계약서도 마련하고,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창작자들에게 지원금도 지급하는 등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제도적으로 이를 돕기엔 예산상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매번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자니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지금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여러 기관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전에 있던 분산된 저작권 관련 법률상담 지원 기능을 연계해 설립된 ‘저작권법률지원센터’도 여기에 해당한다. 지속적으로 작가와 회사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창작 활동은 ‘가족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저작권의 유효기간은 사후 70년이다. 창작물이 잘되면 이거 하나만 가지고도 후손들이 먹고살 수 있다는 거다.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을 많이 판매했는데, 이게 10권짜리고 1980년대에 출간돼 지금처럼 컴퓨터로 쓴 게 아니라 원고지에 일일이 쓰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이 성공했고 아들이랑 며느리가 상속을 받을 텐데 상속 조건이 ‘필사’였다. 노력과 수고의 대가를 알고 가치를 알아야 너희가 이걸 지키고 평생 감사하며 살 거라며 다 옮겨 적게 했다. 요새 그렇게 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거의 없을 거다. 상속받을 인세나 사업권은 결국 다 저작권이다. 저작권 보호는 가족 모두의 일이란 걸 조정래 작가가 잘 보여줬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창작자는 주변에 친하거나 함께하는 지인들과 공유하며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강홍민 기자 / 신지민 대학생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