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마지막 현장을 다녀오다

‘어게인 콘서트’로 피날레 장식하는 학전, 33년 여정과 마지막 현장을 따라
‘학전 어게인’ 콘서트(2024.28.~3.14) 종료 후, 2024년 3월 15일 소극장 학전 폐관
고(故) 김광석 콘서트,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아동극 창작 등으로 공연계에 획을 남겨
권상희 시사·문화 평론가 “‘학전’이란 이름이 사라진다는 건 대학로 상징성의 소멸”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 공연장 외부


1991년 3월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개관한 소극장 학전이 3월 15일로 문을 닫는다. 지난해 11월, 학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경영난과 학전 대표 김민기의 건강 악화로 폐관 의사를 밝혔다. 이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학전 살리기’를 위해 지원 사업을 실시하겠다 발표하고, 학전 출신 가수, 배우들이 모여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와 ‘학전, 어게인 콘서트’ 개최와 참여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월 22일 학전은 “33팀의 가수, 학전 배우들이 마련한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끝으로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어린이와 청소년, 신진 음악인을 위한 김민기 학전 대표의 뜻을 잇되, 학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길 바란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학전은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끝으로 정식 폐관을 선택한 것이다. 폐관 이후 공간 운영을 맡게 될 문예위는 “민간단체에 공연장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중”이라 전했다.

학전의 마지막 공연이 이루어지는 지금, 학전의 역사를 살펴보고, ‘학전, 어게인’ 콘서트 현장을 기록했다.
소극장 학전, 연극 전용 극장이 아닌 실험공간
소극장 학전의 과거 모습(한국연극 제공)


소극장 학전은 연극 전용 극장이 아니라 대중음악, 무용까지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는 실험공간에 가까웠다. 창설 초기에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주요 공연장으로 활용되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여행스케치, 동물원, 강산에, 노영심 등이 학전을 거쳐 갔다. 싱어송라이터들의 라이브 콘서트부터 ‘김덕수네 사물놀이’ 전통 예술 공연, ‘발레블랑’, ‘지구 댄스 씨어터’ 등의 무용 공연까지, 학전(學田)은 이름에 걸맞게 그야말로 문화예술 공연을 길러내는 배움의 터전이었다.

특히 고(故) 김광석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학전에서 라이브 공연을 개최해 1000회의 전설을 만들었다. 그를 추억하고자 학전 대표 김민기는 김광석추모사업회 회장을 겸임해 2012년부터 매해 기일에 맞춰 ‘김광석 다시 부르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1994년 이후 학전은 김 대표의 지휘 아래 본격적으로 자체 제작 또는 공동 제작 공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학전만의 대표작,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어린이 아동극 시리즈

(위)뮤지컬 ‘지하철 1호선’ 포스터 (아래) ‘지하철 1호선’ 작품에서 연기하는 설경구(학전 제공)


그중 김 대표가 제작·연출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창작 뮤지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최초의 기획 프로덕션, 최초 라이브 뮤지컬, 최초 중국진출 등 다양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대표작이다. 또한 이 작품은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황정민, 이정은, 배해선, 방진의 등 스타 배우를 배출하기도 했다. 1994년 5월 14일 학전 소극장에서 초연된 ‘지하철 1호선’은 15년간(1994.5 ~ 2008.12) 4,000회의 장기 공연과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2018년부터 재공연을 거듭해, 2023년 12월 31일을 끝으로 4257회 공연, 누적 관객 73만명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김 대표는 독일 그립스 극단 원작 ‘리니에 1’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춰 번안해 ‘지하철 1호선’을 제작했다.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 연변 처녀 선녀는 한국 남자 제비를 찾고자 입국한다. 그녀는 하루 동안 지하철 1호선에서 잡상인, 가출 소녀, 취객, 실직 가장 등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1990년대 서민의 고단한 삶과 매우 흡사한 인물들에서 한국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리니에 1’의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20개국의 해외 번안 ‘리니에 1’ 작품 가운데 한국의 ‘지하철 1호선’을 최고로 꼽았고, 1,000회 공연 이후 저작권 면제라는 이례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원작자가 ‘지하철 1호선’을 한국 자체 창작품으로 인정한 것이다.

학전의 주요 공연을 논할 때, 아동극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학전의 아동극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독일의 그립스 극단의 원작을 김 대표가 번안, 연출한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떡볶이’, ‘슈퍼맨처럼!’, ‘무적의 삼총사’ 등이 있다. 두 번째는 한국창작동화를 기반으로 한 ‘그림자 소동’, ‘도도’와 같은 작품들이다. 김 대표가 학전 설립 후, 청소년·아동극을 꾸준히 제작한 건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아이들에게 TV와 미디어 이외 체험적·문화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꾸준히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이 목표 의식 아래, 학전의 아동극 작품들은 학전 소극장뿐만 아니라, 폐교나 지역 곳곳에서 상연되며 수많은 어린이 관객을 만나왔다.
학전의 마지막 페이지, ‘학전, 어게인’ 콘서트 현장
지난 10일,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개최된 ‘학전, 어게인’ 콘서트 현장(김윤영 기자 촬영)


“언젠가 이곳이 추억이 될 때면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싶나요?” (‘학전 어게인’ 콘서트 중, 오프닝 영상 대사)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게 될 ‘학전, 어게인’ 콘서트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옛 관객부터 젊은 관객에게도 관심을 받으며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기자가 찾은 지난 10일 ‘학전, 어게인’ 콘서트의 모든 좌석은 빼곡하게 차, 빈자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백발의 노인,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온 어린이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무대 사진과 무대를 배경으로 한 ‘셀카’를 찍기도 했다. 60대 여성 관객 김 씨는 “옛날에 김광석 콘서트부터 아이들과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러 학전에 왔었다”며 “이제 학전을 찾는 게 오늘이 끝이라는 게 섭섭하다”고 말했다.

이날 낮 공연에는 가수 박시환과 가수 이정선이 무대에 올랐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로 학전과 연을 맺은 박시환은 고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과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부른 후, “마지막으로 학전에서 노래하는 지금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 많다”며 심경을 전했다. 김 대표의 대학 선배였던 이정선은 그와 대학 시절 기타를 치던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그는 “김민기 대표가 발매한 음반을 들으며 포크송의 문법을 익혔고, 나만의 음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제 이런 이야기도 학전이 아니면 어디 가서 할 수 있겠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학전이 공연 문화 예술계에 남긴 과제
학전의 마침표는 문화예술계에 어떤 의미일까. 전문가들은 학전 폐관이 문화예술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대중예술 장르를 포함해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공연실적을 살펴보면, 공연 건수, 티켓예매수, 티켓판매액 모두 2023년이 가장 우수했다. 2023년의 티켓 판매액은 총 12,679억원으로, 전년 대비 모든 실적에서 최소 약 14%에서 최대 약 24%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공연 산업의 성장을 이끈 것은 대극장 대형 뮤지컬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소외된 소극장들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의 상당수는 오랫동안 비현실적인 임대료, 코로나19 이후 경영난, 건물주의 일방적 계약 해지에 시달리며 위기에 처해왔다. 2020년 종로예술극장과 나무와 물이 문을 닫았고, 2002년부터 21년간 운영되던 한얼소극장도 폐관을 결정했다. 소극장 극장들이 공적 자금 투입 없이 개인이 사비를 털어 극장과 극단을 운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권상희 시사·문화 평론가는 “문화예술의 뿌리였던 ‘학전’이란 이름이 사라진다는 건 결국 대학로의 상징성이 소멸되는 것과 같다”며 “한국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 소극장 극단에 대한 지원책이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윤영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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