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되고, 한국은 안 된다?···갈 길 먼 ‘비혼출산’

국내 비혼 출산율 4.7%, OECD 평균은 41.9%
성인 남녀 중 63%, “비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주거 및 생계를 공유하는 동거인도 법적인 지위 없어

(연합뉴스)


최근 몇 년 새 비혼 출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수년 전 방송인 사유리 씨가 결혼하지 않고 아들 젠을 출산하면서 비혼 출산이 다시금 주목 받았다. 그는 일본의 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유리 씨는 한 방송에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시도했으나 방법이 없었다”며 일본 정자 은행을 찾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 중 비혼 출생 비율이 4.7%를 기록했다.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아이는 1만 900명으로 2022년보다 1,100명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수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OECD 회원국의 평균은 41.9%로 국내보다 10배 가량 높은 수치였다.

▲방송인 사유리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중 프랑스는 62.2%, 노르웨이는 58.5%, 스웨덴은 55.2%의 수치를 기록했다. 해당 국가들은 한 해에 태어난 아이 2명 중 1명은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아이인 것이다.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가 지난 3~4월 전국의 만 25~39세 남녀 700명(미혼·무자녀 기혼)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비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3%를 기록했다.


(위) OECD 주요 회원국 비혼 출산율 (아래) 국내 비혼 출산율 (출처: 통계청)



성별로 나누었을 때 남성 55.7%, 여성 70.8%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비혼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비혼 출산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왜 여전히 국내 비혼 출산율은 낮을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대한민국 생명윤리법상 미혼인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이 금지돼 있지는 않다. 반면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 상 인공·체외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의 시술 대상을 법률혼·사실혼 부부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발적 미혼모가 되는 것은 해외 정자은행을 가야만 가능하다.

모자보건법상 난임이란 부부가 정상적인 성생활을 했음에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기 때문에 동거 커플이나 비혼 여성은 난임 치료를 위한 시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공공정자은행이 없는 유일한 국가다. 결국 법적으로 막고 있진 않으나 비혼 여성이 임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임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미혼모, 비혼 부모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국내에서 미혼모는 주로 청소년 시기에 임신을 한 여성을 칭하는 말이 돼 버렸다. 이러한 탓에 정책 또한 미혼부와 미혼모의 나이로 대상을 제한하기도 한다. 임신확인서로 임신이 확인된 만 19세 이하의 청소년 산모는 청소년부모 아동양육비 지원 정책에 따라 출산에 필요한 진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미혼모의 나이로 정책의 대상이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해당 정책도 지원 대상에 소득분위 조건이 있어 청소년임에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또 국내에는 동거 커플에 대한 정책 및 정의가 마련돼 있지 않다. 비혼 출산을 한 여성 중에는 동거인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동거인과 주거 및 생계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서로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

또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주택청약 등에서도 불편을 겪고 있다. 덧붙여 비혼 부모 중 남성은 양육 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상 부모가 법적으로 부부인 경우에만 양육 휴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함께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있는 부모임에도 양육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혼모, 비혼 부모를 위한 정책을 악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부부들은 ‘미혼모 혜택’을 이용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로 출산 및 양육을 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 법률상 사실혼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미혼모 지원 정책을 악용한 사실에 대해 조사를 해도 당사자들이 부정을 한다면 이들은 동거 커플이 된다. 즉, 사실혼, 동거 커플, 자발적 미혼모를 명확히 구분해 지원하는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에서 비혼 출산 울타리 만들어주는 프랑스&스웨덴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미혼모, 비혼 부모를 위해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을까. 2020년 기준 비혼 출산율 62%를 기록한 프랑스는 공인들 중에도 다수가 미혼부모, 미혼모, 미혼부에 해당한다.
특히 프랑스는 동거 커플에 대한 법적 지위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국가다. 프랑스에는 시민연대계약(이하 팍스)이라는 정책이 있다. 해당 정책은 비혼 커플이나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약이다.

팍스는 법적으로는 부부와 유사한 지위를 제공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쉽게 해지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상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프랑스인들이 팍스를 통해 함께 생활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혼 관계를 입증하기에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미혼모 지원 정책을 악용하는 국내 사례와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덧붙여 법적인 부부에 한정해 양육 휴가를 지원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의 경우, 미혼 부모임에도 급여의 일부를 지원하는 양육 휴가를 보장한다. 프랑스의 모든 정책은 부모가 아닌 아이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

스웨덴에도 프랑스와 유사한 ‘가족법’이 존재한다. 해당 법률은 “혼인 외에도 이혼을 포함해 서로 다른 형태로 사는 것에 대한 도덕적 견해와 관련해 중립적이어야 하고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어려움이나 불편을 초래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스웨덴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법으로 제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정책으로 자발적 비혼모, 비혼 부모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비혼 부모도 양육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남성들이 의무적으로 3개월간 양육 휴가를 쓰며 함께 아이를 돌보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법적으로 부부가 아님에도 함께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OECD 주요 회원국 중 높은 비혼 출산율을 보이는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자발적 미혼모, 비혼 부모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혼모, 비혼 부모도 임신하면 축하받길 원해요”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국내 특성상 유교 문화가 강한 국가이고 결혼제도를 통해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혀있다며 낮은 비혼 출산율의 원인을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결혼을 한 후에만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이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여성 혹은 남성이 혼자 아이를 양육해도 우리 사회에 있는 하나의 가족 형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미혼모, 비혼 부모들은 임신을 축하받지 못한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는 결정이 용기 있는 결정임을 인정해 주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라며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함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현재 국내 정책은 부모가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아동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결국 미혼모, 비혼 부모를 지원하는 정책은 아이를 잘 양육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기 때문에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제도가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라며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선 미혼모 가정이 한부모 가정에 포함돼 있다고 말하며 세세하게 나뉘어있지 않은 지원 정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누군가는 특정 지원이 절실히 필요해 신청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저 이용하기 위해 신청한다”며 지원 대상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점을 설명했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폭넓은 지원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발적 미혼모에 대해 김 대표는 “자신이 선택을 한 길이니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자발적 미혼모, 방송인 사유리가 비난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경제적으로 자립이 돼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 내가 한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민한 후에 내린 결정이라면 우리 사회가 그들을 향해 비난보다는 응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세은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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