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엔비디아의 시작은 '게임'이었다 [최지웅의 게임버스]

게임에서 영감을 받고,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주다

(출처=지앤에이컴퍼니)
(출처=지앤에이컴퍼니)



1972년, 스티브 잡스가 돈을 벌기 위해 아타리(Atari)에 입사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회사’로도 유명했죠. 잡스는 여기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면서 “더 쉽고 단순하게 게임을 즐길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고, 이를 통해 게임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후 애플의 공동 창업자)을 만나 “벽돌깨기(Breakout)”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이때 벌어들인 돈과 두 사람이 쌓은 인연은 불과 2년 뒤 애플(Apple)을 창립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아타리의 철학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자”였는데, 이 미니멀리즘적 사고방식이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Macintosh)나 아이폰(iPhone)의 디자인 철학에 그대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컴퓨터 게임을 쉽고 직관적으로 즐기는 경험”을 고민했던 시절이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의 근간을 닦은 셈이죠.

오늘날 AI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엔진 중 하나가 바로 GPU(그래픽 처리 장치)라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GPU는 원래 게임 그래픽, 즉 3D 렌더링과 물리 연산 등을 빠르게 처리하려고 만든 장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게임은 2D에서 3D 그래픽으로 급속히 발전하면서,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는 전용 칩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죠.

젠슨 황이 1993년에 엔비디아(NVIDIA)를 창업해 ‘그래픽 전용 병렬 프로세서’를 만든 것은 순전히 게임을 더 실감 나게 구현하기 위한 집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 GPU가 오늘날 ‘병렬 연산’을 필요로 하는 AI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술이 되었다는 사실은 컴퓨터 게임이 얼마나 폭발적인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합니다.

2004년 11월 출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라는 MMORPG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게임으로 유명합니다. 이 게임은 폭넓은 게임층을 확보하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경제 구조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암호화폐 이더리움(Ethereum)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 게임과 함께 보냈고, “게임 아이템에 화폐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는 WoW 속 캐릭터 스킬이 회사의 일방적 패치로 너프(약화)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곧 “중앙화된 시스템을 대체할 탈중앙화”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사례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현실이 사실은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게임과 시뮬레이션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게임 회사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고요. “게임처럼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에서 얻은 영감이 그에게 어떤 밑거름이 되었는지는 완전히 짐작할 수 없지만, 적어도 게임이 가진 가능성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손끝에서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듯, 게임 역시 “상상 속 세계를 내가 직접 만들고 개척한다”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게임에 빠진 이들 과학자 중에는 커다란 업적을 남기는 혁신가들이 많았고, 이들이 게임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실제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최지웅 님은 1세대 게이머이자 연쇄 창업가, 앤젤투자자로 ‘지온 네트웍스’ 창업했다. 현재는 ‘게이머가 대우받는 게임 생태계’를 만들고자 플레이오(GNA Company)를 또 다시 창업해 대표로 활동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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