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경제력이 필요한 이유 [어쩌다 워킹맘]

직장인→주부→다시 직장인을 선택한 그녀들



결혼이 끝인 줄 알았다.

안정적인 직장과 회사의 인정, 순조로운 임신까지. 앞날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타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너무 어린 아이를 남에게 맡기기도,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어려웠고, 지역까지 멀어지면서 전업주부 생활이 시작됐다.

전업주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이 커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 삶의 주도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경제력이 없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섰다. 인생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편을 설득하거나 다그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남편은 경제에 대한 부담을 내게 준 적이 없었다. 내가 주양육자로 육아를 전담하는 것에 대해 늘 의미를 뒀고 존중해줬다. 나 역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선택했기에 남편은 단절 없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의견이 다를 때면 내 확신이 흐려졌다.

“결국 그 비용을 부담하는 건 남편이니까. 내 생각이 달라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이런 자기 검열과 무기력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다.

돌이켜보면 이상했다. 내가 분명히 원하는 방향이 있고, 꿈꾸는 삶이 있는데도 그 모든 과정의 책임은 남편 한 사람에게 지워져 있었다. 아이 교육을 결정할 때도, 이사나 집 장만을 고민할 때도, 가족 여행지조차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려면 결국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그때 알게 됐다.

내게 경제력이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주도권이라는 걸.
혼자 외딴섬에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이 필요했고, 성취감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부(富)와 책임을 남편 한 사람에게만 맡기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은 결국 돈과 연결돼 있다. 그게 남편 혼자만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부부니까. 인생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니까.

그 책임을 나눈다는 건 단순히 가계 수입을 늘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인생의 방향을 두 사람이 함께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엄마의 경제력은 가정 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남편은 누구보다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이었지만, 전업주부로 머물러 있던 나는 오히려 그가 모든 걸 해내는 모습에 묘한 죄책감과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다.

가정과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것만으로는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결국, ‘인생의 주도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엄마에게 경제력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들에게 아빠에게만 기대지 않고, 함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수년 전, 4년에 가까운 공백을 딛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짧지 않은 공백을 깨고 돌아온 길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도 내 영역을 확장하며 삶의 주도권을 단단히 잡아가고 있다.

박소현 님은 올해 8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