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을 상영합니다 "무비랜드X전태일의료센터 노동절 특별 상영회"



5월 1일 노동절 오후, 서울 성수동의 한 극장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맥주 한 잔과 영화 티켓을손에 쥔 채대화를 나누거나, 티켓 부스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스크린 앞에 앉은 이들은, 각자의 직업병을 잠시 내려놓고 ‘건강한 노동’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극장 무비랜드는 5월 1일부터 11일까지 노동절 특별상영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병원인전태일의료센터와 함께했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설립 중인 전태일의료센터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은‘노동자 병원’이다.무비랜드가노동절을 맞아 전태일의료센터와 손잡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무슨 일 하세요?”에서 시작된 이야기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크고 작은 직업병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 ‘잠깐 아픈 거겠지’ 하며 일상 속 통증과 피로를 쉽게 넘긴다. 이번 상영회는 그런 각자의 직업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더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기획의 출발점에는 전태일의료센터의 철학이 있었다. 사무국은“전태일의료센터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를 아프게 만든 일터와 사회를 함께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무비랜드의기획자 권지우씨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라는전태일의료센터의 모토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태일의료센터가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세요?’보다는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먼저 건네는 병원이라는 점이 새로웠다”며,“이곳과함께라면 건강한 노동에 대해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전태일 정신을 관객의 일상으로


전태일의료센터는 무비랜드에“‘건강한 노동’이라는 가치를 무비랜드만의시선으로 풀어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무비랜드는 2028년 완공될 전태일의료센터의 모습을 상상하며,극장 곳곳에 그 이미지를 구현했다.전태일의 초상을 재해석한 그래픽으로 바닥 현판을 만들고,그가 차비를 아껴 미싱공장 노동자들에게 건넸던‘풀빵’을 형상화한 스티커를 극장 곳곳에 비치해 그의 정신을 기념했다.

극장 2층 대기공간에는 전태일의료센터를 간접체험해볼 수 있는 부스가마련되었다. 직업병 전문 의료진이손목 테이핑 교육, 혈압 혈당 검사, 직업병 상담 등을 진행하며 관객들을 마주했다.‘건강 기원 복(福)부적’ 코너에서는 부적을 만들며방문객끼리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요즘 몸 상태는 어떠한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러한 체험은 극장에 모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었다. 전태일의료센터 의료진, 무비랜드 팀,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를 매개로 각자의 직업병과 노동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같은 노동자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해갔다. 더 많은 이들의 일상으로 경험을 확장하며,사회적 연대의 감각을 기른 것이다.‘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오직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지만, 무비랜드는‘전태일의 직업병’이라는 표현을 통해관객들이자연스럽게 내 동료 그리고 나 자신의 노동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권지우 씨는 “‘전태일 열사’라는 인물을 마음껏 가지고 놀아달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노동’이나‘전태일’이라는 단어는 자칫 무겁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전태일의료센터는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나의 병원’처럼 느끼길바랐어요. 일하다가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일하다 아픈 사람들



이번 특별 상영회에서는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과 토마스 스투버 감독의 <인 디 아일>이 상영되었다. 두 영화 모두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각자의 리듬을 만들며 살아가는인물들의 이야기를담고 있다.<패터슨>의 주인공은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운전하며, 일상 속 풍경과 대화를 시로 풀어낸다. <인 디 아일>은 고독한 마트 노동자들이 일상의 틈에서 작은 연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권지우 씨는 “‘직업병’이라는 이번 상영회의 테마를 반복되는 업무가 쌓여 몸과 마음에 쌓여가는 아픔”으로 해석했다. 그는“두 작품 모두 반복적인 노동의 모습이명확히 드러나고, 그 안에서 인물들이이를 어떻게 해소하는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며,“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나는 어떻게 일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태일의료센터는“영화를 매개로 한 이번 협업이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이어“영화 <패터슨>과 <인 디 아일>이 직업병이라는 주제를 조금 더 일상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데 도움을 줬다”며,“직장생활로 인한 우울증이나 사무직 노동자가 겪는 손목 질환처럼 흔하고 간과하기 쉬운 문제들도 직업병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예술은 어떤 메시지를 ‘나의 이야기’로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 타인의 이야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대입해 보기도 하고, 함께 영화를 본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무비랜드의 기획자 권지우 씨는 이번 상영회의 의미를 이렇게 전했다. 무비랜드와전태일의료센터가 함께한이번 노동절 특별 상영회는‘직업병’을 특별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반복되는 노동속에서 쌓여가는 아픔을 돌아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본 시간. 스크린 너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진호 기자/이다윤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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