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을 꿈꾼다면···‘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김성은의 슈퍼비전]

사회적 기업·소셜벤처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현실조언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창업, 미션(Mission)과 꿈(Dream)만으로 충분할까.
혹시 이런 고민을 해본 적 있나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 하나로 창업해도 될까?”, “멋진 사명만 있으면 사람들도 도와주지 않을까?”

막상 현실의 벽 앞에서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저 역시 10여 년 전, 사회적 기업을 창업할 때 똑같은 고민했었거든요. 부모님은 대기업이나 좋은 회사 취업하길 원하셨고, 새해 PPT까지 만들면서 발표했던 회사의 꿈은 '유토피아'라는 소리를 들으며, 절대 돈을 벌지 못하고 망할 거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말씀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해요. 결국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 창업에서 부딪칠 가장 큰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일 테니까요. ‘좋은 일’을 하겠다는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기업을 오래 지속시키기 어렵다는 걸 여러분들이 아실 필요가 있어요. 사람들도 그 제품을 사주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 말이죠. 오늘은 제가 히든그레이스를 운영하며 온몸으로 깨달은 몇 가지를 솔직히 나눠보려 해요. 한때 제 앞을 가로막았던 벽과 그때 얻은 깨달음들을 하나씩 이야기해볼게요.
꿈과 미션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수익구조 설계의 필요성
소셜벤처, 사회적 기업을 시작할 때 대부분 가슴 속에 뜨거운 미션(사명)을 품고 출발해요. 저도 “모든 이에게는 특별함이 있다”는 소명을 가지고, 취약계층의 장애와 열악한 환경이 직무에서 전문성을 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교육을 통해 전문기업을 만들겠다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선한 의도와 사명감만으로는 회사를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어요. 냉정한 현실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나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는 함께 하는 사람도, 미션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당시 많은 소셜벤처나 사회적 기업들이 정부 지원금이나 기부에 의존하고, 현재도 그런 지원 사업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그런 도움은 일시적일 뿐이에요. 지원이 끊기면 기업은 휘청이고, 함께했던 취약계층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저도 이 점을 뼈저리게 인식한 후, 사업 초기부터 수익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저희는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사업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연구 논문 안에 있는 통계와 정부 통계 보고서에 집중하게 되었죠.

예를 들어, 대학원생들의 논문 통계 분석 지원 사업이었는데, 이 일은 고객들에게 충분히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서비스였거든요. 이렇게 시장에서 통하는 수익 구조를 갖추고 나니, 그 수익을 통해 취약계층 구성원들을 교육할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었죠.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팔아야 한다: 선의를 강요하지 말 것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고객의 선의에 기대어 판매해서는 안 돼요. “좋은 취지의 상품이니 사람들이 사주겠지”라는 안일한 마음가짐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도 창업 초기에 그런 착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고객은 정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이기 때문에 돈을 내는 것이지, 단순히 착한 일에 동참하기 위해 지갑을 열지 않아요. 오히려 상품의 질이나 효용이 떨어지는데 '좋은 뜻'만 앞세우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애초에 우리 직원들의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일지 많이 고민했어요. 해외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이 예민한 능력을 살려 여성들의 유방암 진단을 돕는다거나, 자폐 성향을 가진 이들이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소프트웨어 테스터로 활약하는 사례들도 있더군요.

저희는 장애가 열악한 환경이 동정심이 아니라,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어요. 예를 들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료는 시각적인 민감함을 활용하여 UX/UI 디자이너로 키워내고, 중도에 사고로 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를 가진 동료는 재택근무를 지원하고, 머리를 활용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절대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데이터분석가로 키워냈죠.

그러다 보니, 고객들에게 따로 우리 회사가 취약계층이 많이 일하는 회사라고 소개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사람들은 그것보다 이 서비스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하니까요.

결국 시장에서 인정받는 품질과 가치를 갖추면 사업은 안정되는 구조였어요. 고객들도 “사회적 기업이니까 이용한다”가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니까 이용한다”고 느낀다는 뜻이겠죠.

사회적 기업일수록 숫자에 민감해야 한다: 이중언어(가치와 수익)
소셜벤처나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돈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창업 초기에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숫자의 언어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오히려 사회적 기업일수록 두 배로 숫자에 민감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미션과 비전뿐 아니라 매출, 비용, 이익 같은 재무 지표를 늘 확인하고 관리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도 투자자나 파트너 앞에서는 손익계산서와 성과 데이터를 가지고 설득해야 할 때가 많았어요. 결국 가치와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만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는 2020년에 카이스트 임팩트 MBA 과정에 SK행복나래 지원을 받으며 입학해 경영 숫자를 다루는 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만난 멘토들에게 들은 조언도 비슷했어요. "임팩트를 증명하려면 측정 가능한 데이터로 보여줘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일수록 비즈니스의 언어로도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그때 깨달았어요. 사회적 기업가인 우리는 가치와 수익 두 가지 언어를 모두 구사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한 손에는 사회적 가치라는 꿈의 언어를, 다른 손에는 재무제표와 성과라는 현실의 언어를 들고 자유롭게 오갈 줄 알아야 해요. 결국 차가운 숫자가 뒷받침될 때 우리의 아름다운 미션도 더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을 얻는 법이니까요.

나만의 방식보다 재현 가능한 구조를 만들 것: 확장 가능성 있는 모델 설계
사회적 기업가들은 종종 혼자 불꽃처럼 모든 일을 해내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저 역시 초창기에는 내 열정과 방식만 믿고 앞만 보고 돌진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나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사업으로는 절대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가는 구조의 조직이라면 오래 버티기 어려웠어요.

사업 초기, 제가 일일이 챙겨야 했던 일들도 점차 시스템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일에 신경 쓰기 시작했어요. 일하는 방식과 노하우를 매뉴얼로 만들고, 교육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신입 직원들과는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실무를 충분히 익힐 시간도 부여했죠. 실패해도 괜찮으니 마음껏 시도해보라고요. 그 결과 점차 제가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업무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 깨달은 점은 확장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거예요. 처음 몇 년간은 회사를 안착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우리 모델을 더 많은 곳에 퍼뜨릴 방법을 고민했어요. 저는 창업 9년 차에 카이스트와 SK를 지원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스파크랩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새로운 법인 '라잇(LRIGHT)'을 설립했어요. 이 기업은 이전 히든그레이스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과 취약계층 인재를 기업들과 연결하는 플랫폼 모델에 뛰어든 거죠.

우리만의 방식으로 작은 조직 하나를 잘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더 큰 임팩트를 내고 싶었습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해법이 하나의 프로토타입이 되어 다른 지역이나 조직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기업가의 꿈이 완성에 가까워진다고 믿거든요. 결국 내 열정과 철학이 담긴 씨앗을 심어, 다른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도 싹을 틔울 수 있는 재현 가능한 모델을 디자인해보자는 생각입니다.

대학 시절, 경제학 교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 말은 지금도 저의 좌우명으로 가슴 한 켠에 새겨져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준비하는 여러분께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Cool Head, Warm Heart(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김성은 님은 연구논문과 데이터 분석, AI를 기술을 활용하여 취약계층 전문 일자리를 양성하고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 제공형 사회적 기업 ‘히든그레이스’를 2013년에 창업하고, 100인 이상 기업의 장애인 부담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잇(LRIGHT)을 2020년에 설립하여 '취약계층 인재 매칭 플랫폼, 라잇팅'을 만든 대표입니다. 13년간 약 8만명의 연구자의 논문을 상담·분석하고, 약 2,000명의 장애인과 취약계층을 만난 그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사랑 받은 <한 번에 통과하는 논문> 책 시리즈를 펴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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