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 UP & DOWN

1년 만에 기업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킨 기업은 드라마틱한 순위 상승을 보였고, 총수가 배임, 횡령 등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를 받은 곳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오너리스크 조사 결과와 비교해 순위가 가장 많이 상승한 기업과 하락한 기업 각각 다섯 곳을 뽑았다.
[국내 40대 그룹 오너리스크 평가] 엇갈린 희비…한진 ‘웃고’, 현대중 ‘울고’
Part.1 지난해 대비 순위 상승 기업 Top 5

부영·코오롱…투명성·책임성 호평

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진그룹은 이번 조사 중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3.31점)를 받아 무려 23계단이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1년 만에 오너리스크가 낮은 기업 35위에서 12위로 껑충 올라섰다.

지난해 조사 당시 한진은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해 대한항공을 한진칼과 대한항공으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한진해운의 자금 지원 문제가 불거지며 지배구조 개선 항목(2.59점)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아울러 한진은 그동안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증가하지 않는 점과 더불어 자산 가치 등 할인 요소로 인해 저평가 받아왔지만, 지배구조 전환 과정에서 이러한 불안 요소들이 사라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평가위원은 향후 지주사로 전환한 한진이 대한항공, 한진해운 등의 인프라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진은 지난해 8월 대한항공을 인적분할해 지주사 격인 한진칼과 항공운송 사업을 하는 대한항공으로 나눈 뒤 1년여 만인 지난 10월 한진칼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한진으로서는 내년 8월까지 정석기업→한진→한진칼→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풀고 자회사의 지분율을 상장사 20%, 비상장사 40%까지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이에 따라 정석기업과 한진을 합병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양호 회장 일가가 별도의 자금 투입 없이 지주사 한진칼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를 넘는 10개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가 문제가 돼 오너리스크가 높은 기업 6위에 선정됐던 이중근 회장의 부영그룹은 올해 13계단 오른 24위로 상승해 명예 회복을 했다. 부영은 2013년 조사에서 지배구조 개선 부문 중 오너 지분율의 안정성에서는 3.05점을 받은 반면, 소유 구조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에서는 최저점인 2.36점을 받았다.

일감 몰아주기 비판을 받아왔던 부영은 올 초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오너가 지분 정리에 나섰다. 오너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핵심 계열사였던 정보기술(IT) 솔루션 개발업체 부영씨앤아이 지분을 부영주택에 모두 넘겼다. 이 회장이 보유한 지분 35%와 장남 이성훈 부사장(30%), 부인 나길순 씨(35%) 지분을 부영주택에 매각한 것.

지분 정리로 지배구조를 개선한 데 이어 자산 규모가 늘어난 것도 순위 상승에 주효했다. 기업 경영분석 사이트 CEO스코어가 2004~2013년 10년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 그룹의 공정자산 순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영은 재계 순위 22위다. 현재 16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부영은 매출의 약 80%를 임대주택에 주력하고 있으며, 연매출은 2조1530억 원이다. 부영은 이렇듯 높아진 그룹의 위상에 걸맞게 최근 직원들 연봉을 직급에 따라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까지 깜짝 인상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파격적인 조치는 높아진 부영의 위상만큼 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져야 한다는 이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란 전언이다.

올 한 해 우수한 경영 실적으로 화제를 모은 현대산업개발은 무려 지난해에 비해 11단계 상승하며 오너리스크가 낮은 기업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산업개발은 올 초 무보수 경영을 선언한 정몽규 회장이 분위기 쇄신을 주도한 덕분에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시가총액도 지난해 말 1조7000억 원에서 최근 2조8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국내 40대 그룹 오너리스크 평가] 엇갈린 희비…한진 ‘웃고’, 현대중 ‘울고’
오너리스크 조사에서도 이러한 점이 고스란히 반영돼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 부문에서 비전 제시 항목이 3.21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위기관리 능력이 3.00점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정 회장이 대한축구협회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 현대산업개발의 호실적 뒤에는 경영진들의 리더십이 한 몫 했다는 평이다. 지난해 급여로 15억6000만 원을 받은 정 회장은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올해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이자 현대산업개발 주가가 지난해 말 2만3200원에서 올해 9월 중순 4만5000원대를 돌파하는 등 오름세를 보였다.

두산그룹과 코오롱그룹은 지난해보다 9계단씩 상승해 각각 오너리스크가 낮은 기업 3위와 15위에 올랐다. 두산은 소유 구조의 투명성과 책임경영 항목에서 3.93점, 비전 제시와 위기관리 능력 항목에서 3.50점을 받았다.

두산은 지난해 2012년 당기순이익 7550억 원 적자에서 2013년 5850억 원 흑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 실적이 눈에 띄게 호전됐다. 두산 주가는 지난해 말 그룹에 대한 재무적 불확실성이 제기된 이후 두산중공업의 자사주 매각, 두산건설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 가능성 등이 제기되며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재무적 이벤트들은 대부분 마무리되는 국면에 진입했고, 두산의 3분기 실적 호조를 필두로 두산중공업의 수주 회복,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 호조세 지속 등 그룹 전반적으로 펀더멘털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의 DNA를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통째로 바꿨던 박용만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금 돋보이는 대목이다. 평가위원들은 또 두산이 2008년 인수한 뒤 장기간 적자를 내 온 두산캐피탈과 비엔지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리해 지배구조가 한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웅렬 회장이 이끄는 코오롱그룹은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 부문의 위기관리 능력(3.07점) 항목에서 지난해(2.55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 2007년부터 진행돼온 사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일단락돼 코오롱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계가 완성돼 안정성을 되찾았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화학기업 듀폰과 1조 원대 섬유 소송을 벌여왔던 코오롱이 항소심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대역전을 이뤄낸 ‘사건’ 역시 코오롱이 위기관리 능력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거머쥐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Part.2 지난해 대비 순위 하락 기업 Top 5

LS·동부…주주·채권자 보호 ‘혹평’
창사 이래 첫 1조 원대 ‘어닝 쇼크’를 겪은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오너리스크 조사에서 1년 사이 순위가 가장 크게 하락한 기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오너리스크가 낮은 기업 3위에 올랐던 현대중공업은 불과 1년 만에 16계단 추락해 19위를 기록했다. 세부 항목을 보면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 부문의 비전 제시(2.79점), 위기관리 능력(2.93점), 수익 창출 능력(2.71점) 항목에서 지난해 대비 점수가 크게 하락했다. 이는 지난 2분기 1조10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실적 발표 이후 3대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회사채 등급을 워치리스트에 올리거나 아웃룩을 변경한 데다, 노조가 파업 초읽기에 돌입하면서 ‘19년 연속 무파업’이라는 기록도 깨질 가능성이 높아 현대중공업은 그야말로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임원 262명 중 81명을 감축하는 임원 인사를 단행하는 동시에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을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 발령했다. 재계는 정 상무의 승진을 현대중공업이 24년 만에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경영 체제로 복귀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LS그룹은 지난해 16위에서 올해 28위로 12계단 하락했다. 특히 윤리경영 평가 부문의 준법경영(2.93점), 주주와 채권자 보호(2.57점) 항목에서 지난해 3.18점, 3.05점보다 뒤처진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3년 LG그룹 계열분리로 출범한 LS그룹은 창립 10주년인 지난해 원전부품 시험성적서 조작과 담합 등으로 비리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침통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올해까지 원전비리 여파가 영향을 미쳐 LS전선의 자회사인 JS전선은 상장 폐지됐고, 사업정리 선언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올 1월 “2014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지만 올해 역시 5월 LS니꼬동제련 공장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데다, 7월 최대 주력 계열사인 LS전선이 국세청으로부터 270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는 등 연이은 악재에 시달렸다. LS전선은 2011년 6조 원에 육박했던 연 매출이 글로벌 건설 경기 침체 여파 등으로 지난해 5조 원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4조 원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평가위원들은 올해 LS전선, LS산전 등 LS 주력 계열사의 사업 실적이 부진했는데, 오너의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데다 아직까지 그룹 차원에서 뚜렷한 호재는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CJ, 총수 경영 공백에 10계단 하락
CJ그룹은 총수의 경영 공백이 실적 악화로 직결된 사례다. 거액의 회사 돈을 횡령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이재현 회장은 지난 9월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CJ는 이번 오너리스크 조사에서 지난해보다 10단계 하락한 27위에 머물렀다. 소유 구조의 투명성과 책임경영(2.86점), 내부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2.64점) 항목에서 지난해 3.27점, 3.05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계열사들은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오너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정지된 상황에서 핵심 사업 분야의 신규 투자나 새로운 사업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베트남과 중국에서 사료업체 인수를 추진했지만 의사결정 지연으로 최종 인수 단계에서 협상이 중단됐으며, CJ대한통운도 미국과 인도 물류업체 인수를 검토했지만 좌초됐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시장 확장에 박차를 가해온 CJ오쇼핑도 인수·합병(M&A) 차질로 상당수 경영 계획이 보류된 상태로 알려졌다.

친동생인 이 회장을 대신해 지금까지 CJ그룹을 이끌어 오던 이미경 부회장 역시 지난 10월 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부회장의 최측근인 노희영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이 탈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지난달 전격 사퇴한 데 이어 이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미국행을 택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 40대 그룹 오너리스크 평가] 엇갈린 희비…한진 ‘웃고’, 현대중 ‘울고’
김준기 회장의 동부그룹은 이번 조사에서 지난해에 비해 9단계 하락한 40위를 기록하며 ‘오너리스크가 가장 높은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에서 2.02점,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평가에서 2.40점, 윤리경영 평가에서 2.34점을 받는 등 세 부문에서 모두 최저점을 받았다. 올해 창립 45주년을 맞은 동부는 구조조정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부와 채권단 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동부화재의 고질인 그룹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재차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129억 원가량을 연체 중이던 그룹 계열사 동부LED가 빚 독촉을 감당하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인 동부제철의 경우 채권단이 김 회장 보유 지분에 대해 100대1 무상감자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김 회장은 동부제철의 경영권을 잃게 될 전망이어서 앞날이 더욱 험난해 보인다.

한솔그룹은 지난해보다 8단계 하락하며 34위에 머물렀다. 수익 창출 능력 항목이 지난해 2.55에서 2.14로 떨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지주사 설립을 추진했다 실패한 한솔은 한솔제지와 한솔CSN(올 5월 한솔로지스틱스로 사명 변경)을 각각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 2개를 합병해 지주사 한솔홀딩스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한솔CSN 주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솔은 1993년에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돼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이 고문의 삼남인 조동길 회장 등 직계가족이 제지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