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한 비투비즈 대표

광고기획사 비투비즈를 운영하는 류수한(50) 대표는 세계 100여 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했다. 젊어서부터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훌쩍 떠나다 보니, 전문가 수준의 ‘여행꾼’이 됐다. 그를 키운 건 8할이 바로 ‘배낭’이다.
[Special Trend]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면 당장 훌쩍 떠나세요”
류수한 대표에게 인터뷰 요청을 위해 연락했을 때도 그는 짐을 꾸리고 있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8월 말까지 미국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부랴부랴 류 대표와 약속을 잡았다. 출국을 하루 앞두고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그는 “도움이 될까 해서 가지고 왔다”며 그동안 여행했던 흔적들인 보딩패스를 주섬주섬 꺼냈다. 20여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낡은 비행기 티켓도 있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류 대표는 광고기획사 비투비즈를 운영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광고마케팅을 하다 8년 전 사업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배낭여행에 집착(?)해 온 그는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여행과 한층 가까워졌다.

“제가 초년생일 땐 지금보다 직장 내 분위기가 훨씬 보수적이어서 휴가를 길게 다녀오기가 쉽지 않았죠. 그럼에도 연초부터 물밑작업을 해 어떻게든 팀장님의 승낙을 받아 냈지요. 어떤 해에는 1년에 5번이나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상사들이 ‘대단한 놈’이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웃음)”
멕시코에서 본 카우보이 로데오 경기.
멕시코에서 본 카우보이 로데오 경기.
시간이 날 때마다 아시아, 동남아, 북미, 서유럽, 동유럽을 몇 번씩 돌다가 2007년 5월 홀연히 결심한다. 쥘 베른의 명작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삶의 명작 ‘80일간의 남미일주’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하기로. 그 무렵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직장에서도 나왔다. 알 수 없는 내일에 자신감은 사라지고 머릿속은 복잡한 그런 날들이었다.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오겠노라 다짐했다.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80일간의 남미 여행
본격적인 남미 여행을 시작하기 전 기초 어학에 도전했다. 과테말라에 2주 동안 머물며 여행에 필요한 기초적인 스페인어를 배웠다. ‘리꺄르도’라는 멕시코 이름도 만들었다. 류 대표는 “짧은 여행이라면 모를까 보름 이상 그 문화권에 머물면서 여행할 계획이라면 사전에 어학을 익히는 것도 도움이 된다”며 “여행자들을 위한 하루, 이틀짜리 단기 어학 프로그램들도 많다”고 말했다.

마이애미에서 출발, 파나마를 거쳐 칠레 산티아고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베네수엘라에 이어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둘러보며 남미 일주를 했다. 애초에 콘셉트가 풍족한 여행이 아니었으니 여행지도 실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하고, 숙소도 비앤비(Bed and Breakfast) 등으로 정했다. 다양한 도시의 모습에서 그는 많은 것을 깨우쳤다.

“가난이 들러붙은 거리를 걸으며 처음엔 ‘어쩜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순진한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 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난 경험은 사업을 할 때 사람과의 관계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예고도 없이 비행기가 결항된다거나 인터넷이 두절되는 등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엔 화도 났지만,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했어요. 자연스레 인내심도 길러졌죠.”
아르헨티나 센트로 시비코 광장에서 세인트버나드와 함께한 기념사진.
아르헨티나 센트로 시비코 광장에서 세인트버나드와 함께한 기념사진.
류 대표는 “무엇보다 중년에 접어든 남성들은 여러 측면에서 삶의 무게가 버거워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럴 땐 여행이 선생님의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배낭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돈이 많은지, 시간이 많은지를 먼저 물어본다고. 그러나 류 대표는 “그들이 말하는 여건이라는 건 결코 돈과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소 비싼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여행지에서도 고급 바를 찾아가니 돈이 많이 들 테고, 검소한 스타일이라면 여행지에서도 길거리 음식을 사먹으며 실용적으로 여행을 즐길 테니 여행경비가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항공료를 제외하고 체재비는 한국에 있을 때와 엇비슷하게 든다는 게 그의 말이다. 시간도 마찬가지. 한국에 있으면서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을 생각하면 여행길에 나서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류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철저하게 한 해의 반은 ‘나를 채우는 데 쓰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실천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레고 광장에서 사람들이 탱고를 추는 모습.
부에노스아이레스 도레고 광장에서 사람들이 탱고를 추는 모습.
“여행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요. 저는 공연이나 전시 관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문화생활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편이에요. 그 대신 해양레저나 쇼핑 등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때로 길을 걷다가 미치도록 좋은 곳이 있으면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며칠이고 더 머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고 전체 일정의 20% 정도는 여유롭게 남겨 두죠.”
잃어버린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마추픽추.
잃어버린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마추픽추.
어느덧 그의 나이 50대, 젊은 시절 배낭 하나 메고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여행하던 때와 비교하면 체력적으로도 많이 약해졌다. tvN ‘꽃보다 할배’를 보며 ‘할배’가 됐을 때까지 두 다리 멀쩡하게 여행하기 위해서라도 체력관리를 해야겠다고 각오했단다.

“막상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많은 이유로 실행에 못 옮기는 경우가 대다수죠. 올여름엔 ‘은퇴 후’로 미루지 말고 꼭 가세요. 분명 들인 시간과 비용보다 더 많은 걸 얻어서 올 테니까요.”



류 대표의 배낭여행 노하우
너무 많은 계획은 금물, 20% 정도 여유 둬라

여행 계획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고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건 자유여행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든 패키지여행이나 다름 없다. 전체 일정의 20% 정도는 항상 여유 시간으로 남겨 둬라. 호텔스닷컴(kr.hotels.com), 호스텔스닷컴(www.hostels.com/ko)에서 숙소를 많이 찾는 편이다. 항공은 트래블로시티(www.travelocity. com)와 칩티켓(www.cheaptickets.com)이 북중미와 남미에 강하며, 스카이스캐너(www.skyscanner.co.kr)가 유럽 쪽 비행편이 많다. 투어캐빈(www.tourcabin.com)에서는 항공권 가격 비교가 가능하다. 이곳에서 최저가를 확인하면 꽤 저렴한 가격에 비행기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외국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날그날 할인 티켓이 나와 있으며, 소셜커머스를 통해 땡처리 항공권(출발 날짜가 임박해 가격이 급격히 저렴해진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다. 온라인 투어(www.onlinetour.co.kr)나 투어익스프레스(www.tourexpress.com) 등도 배낭여행족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여행 준비
교통패스나 데이투어 티켓을 철저히 챙기자. 패스 한 장만으로 기차, 지하철, 버스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레일패스, JR패스 같은 교통패스는 여행지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유용하고, 데이투어 티켓은 현지 유명 관광명소를 체험 및 관람할 수 있어 좋다. 교통패스는 출발 전 미리 구매해도 좋다. 여행 경비는 하루에 얼마를 사용하겠다고 못 박는 것이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는 길이다. 대륙 간, 국가 간 이동하는 경우 이동수단은 미리 예약하고, 현지에서 쓰는 비용은 그날 스케줄에 따라 정해 가급적 지키는 것이 좋다. 가이드북은 반드시 챙기자. 인터넷이 느린 나라로 여행할 경우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행할 나라의 문화나 역사 관련 책도 읽고 가면 훨씬 여행이 풍요로워진다.

여행 즐기기
아프리카, 동남아 우림 지역으로 떠난다면 콜레라, 황열, 말라리아, 조류 인플루엔자 등도 주의해야 한다. 처음 여행 가는 경우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여행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시차가 6시간 이상 차이 나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출발 3일 전부터 취침 시간을 미리 조정해 두는 것도 방법. 혹 장년층 가운데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 걱정된다면 항공사의 ‘실버 서비스’를 이용하자. 보호자 없이 여행하는 만 70세 이상 고객에게 담당직원과 함께 출국 수속을 한 후 항공기에 탑승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윤경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류수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