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Lifestyle

갈수록 데면데면한 아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녀, 눈치 보이는 존재인 직장 선후배. 50대 남성은 여러 측면에서 ‘낀 세대’다. 마음은 영원한 청춘이건만 늙어 가는 몸만큼이나 쪼그라드는 삶이 서글프다. 단풍처럼 화려한 지천명을 즐길 것인가, 비에 젖은 낙엽처럼 우울한 50대를 보낼 것인가. 가족관계, 일, 은퇴 준비 등 50대의 라이프스타일에 재점검이 필요한 때다.


공항에서 은발의 노신사가 분홍빛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그가 애타게 기다리던 상대인 백발의 할머니가 입국장으로 나왔다. 깜짝 마중에 감격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포옹을 하며 입을 맞춘다. 누군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이 로맨틱한 노부부의 동영상은 한동안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실제라기보다 흡사 영화에 가까운 광경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Cover]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현실주의자들
가족 위해 살았는데…가족이 있는 집이 불편하다
한경 머니 설문조사 결과 ‘최근 1년 동안 아내와 둘이 손잡고 공원 등을 산책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 달에 1~2번’이 31%로 가장 많았고, ‘한 번도 없다’는 대답이 26%를 차지했다. ‘현재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물음에는 ‘대체로 만족한다’는 답변이 35%로 가장 많았고, ‘보통이다’(30%), ‘대체로 만족하지 않는다’(18%),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4%)가 뒤를 이었다.

50대 남성들의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는 평균 이상이었지만, 실제 아내와 손잡고 마트를 가거나 함께 공원에서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50대 남성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일주일에 1~2번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는 응답이 50%로 절반을 넘었고, ‘한 끼도 먹지 않는다’는 답변도 13%나 됐다. ‘최근 1년 사이 성인 자녀와 둘이서 술 한 잔 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가 35%, 1~2번이 30%로 나타나 자녀와의 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Cover]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현실주의자들
평균을 내보더라도 50대 남성들의 가족관계 및 소통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가족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지금 가정에서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2년 전 30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한 엄석우(가명, 59) 씨는 “나갈 곳 없이 집에 있는 것이 이토록 가시방석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한 공간에 있는 게 껄끄러워 어디든 되도록 나가고자 한다. 자녀들과도 뒤늦게 어색한 관계를 회복해보려고 하지만 그마저 쉽지 않다”며 “어떨 땐 도대체 왜 이렇게 됐나 싶어 주체할 수 없이 서글픔이 밀려온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직에 있는 50대들은 간부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쁜 데다 자녀 결혼, 부모 봉양, 은퇴 준비까지 지출도 가장 클 시기라 더욱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예전처럼 가정을 도외시할 수도 없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퇴직을 한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 씨의 사례처럼 30년 동안 밤낮없이 가족들을 건사하느라 고생했건만, 집에서 삼시 세끼를 먹는다는 이유로 눈치를 받는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이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보통 여성은 중년 이후가 되면 남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돼 더욱 강해지는 것과 반대로 남성들은 감성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진다.

윤 교수는 “갱년기를 겪는 아내 옆에 있는 남편들도 폐경기를 맞는다는 얘기가 있다”며 “계속 회피하려고만 하면 부부나 자식과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게 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황혼이혼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은퇴하기 전부터 가족과의 소통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0대 남성의 로맨스에 관한 조사도 흥미로웠다. ‘배우자 이외의 여자 친구를 사귀었거나 현재 사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26%가 ‘관심은 있었으나 사귀지 않았다’, 17%가 ‘과거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라고 답했다. ‘현재 사귀고 있다’는 응답도 14%였다. 즉, 50대 남성 절반 이상이 이성 친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거나 실제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40대에 늘어나기 시작한 불륜이 50대에 이르러 급증한다는 통계는 이미 여러 조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왜 유독 50대가 불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김 모(55) 씨는 “주변을 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거머쥔 남성일수록 불륜을 일종의 권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취미처럼’ 외도를 즐기는 자산가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사업가 주성혁(가명, 58) 씨 역시 “요즘 친구들끼리 만나면 사업도 잘 안 되고 주식도 재미가 없는데 애인이나 사귀고 싶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중년에 이르러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인생의 허무함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불륜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열정적으로 어떤 일에 빠질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출되고, 이 도파민으로 인해 우리는 삶의 동력을 얻는다”며 “하지만 더 이상 성취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무감각해지면 우리 뇌는 다시 한 번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데, 그것이 왜곡되면 불륜과 외도로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짜릿함은 일시적일 뿐 관계가 끝나면 더 깊은 허탈감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Cover]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현실주의자들

50대는 ‘꼰대’·‘개저씨’? 낀 세대는 아프다

50대 남성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50대는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세대이며, 유학파가 본격적으로 배양된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고도의 성장기를 이끌어 온 주역으로, 일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일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42%가 ‘보통이다’라고 응답했으며, 39%가 ‘높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았다. ‘지금의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32%가 ‘종종 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는 ‘잘 풀리지 않는 비즈니스’(33%), ‘소통의 어려움’(22%), ‘사업 자금 부족 혹은 저임금’(17%) 순이었다.

비즈니스 못지않게 일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결과가 눈에 띄었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세대 간의 갈등, 직장 내 왕따문제 등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실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집단 내 권위주의적이고 몰상식하며 고리타분한 중년 남성들을 비하하는 속어인 ‘개저씨(개+아저씨)’나 ‘수꼴(수구 꼴통의 줄인 말)’ 등이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50대들이 스스로 테스트할 수 있는 ‘꼰대 감별법’ 등이 올라오기도 한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처음부터 쉽게 반말을 한다’, ‘후배가 업무시간에 쉬는 건 이해 못하지만 야근하는 건 당연하다’,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해놓고 막상 후배가 솔직하게 말하면 기분이 상해한다’, ‘내가 젊었을 땐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등으로 꼰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대기업 부장직에 있는 박상식(가명, 53) 씨는 “직장 내에서 고참이 되면서 위로는 임원들 비위 맞추랴, 아래로는 ‘똑똑해진’ 후배들 눈치 보랴 하루하루가 고되다”고 말한다. 그는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바로 ‘꼰대’로 낙인찍혀 부서 내 왕따가 된 다른 동기를 보면 입조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Cover]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현실주의자들
50대가 겪는 이러한 ‘낀 세대의 고충’에 대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50대의 색깔 없음’이 불러온 폐단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됐고, 조금이라도 튀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렇다 보니 정글 같은 조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이디얼리스트(이상주의자)’였던 사람도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추인 50대인 것이다.

황 교수는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들의 가슴 속에는 아이디얼리스트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공자가 ‘지천명’이라고 했듯, 인생의 중반에 이르면 내면에서 진짜 자아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데, 그게 ‘50대 방황’의 출발선이라고 보면 된다는 얘기다.

중년 남성들이 뒤늦게 동호회 활동이나 취미 등에 빠져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호회에서 취미를 즐기고 있는가’는 질문에 ‘가끔 하고 있다’가 34%, ‘하지 않는다’가 22%였지만,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응답도 20%나 나왔다.

은퇴 전 부부 사이부터 점검하라
50대는 은퇴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하는 나이다. 현실로 다가온 은퇴. 하지만 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은퇴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생각은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답이 54%로 가장 많았다.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는 18%에 불과했다. 남성들이 ‘은퇴 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는 ‘여행’이 53%, 취미활동(26%), 가족과 시간 보내기(15%), 공부(5%) 순으로 나타났다.

윤인진 교수는 “인생의 전환점인 50대를 어떻게 장식하느냐에 따라 자기 확장이 일어날 수도 있고 정체 혹은 퇴보할 수도 있다”며 “타인과 관계가 원만하고 현실 속 자신과 이상 속 자신이 일치할수록 삶에 의미가 생기는 만큼 소득, 건강, 지식 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다시 한 번 챙겨야 할 부분은 부부관계다. 은퇴 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가 바로 아내와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필리스 모엔 미네소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은퇴를 기점으로 부부 모두의 결혼 만족도가 일시적으로 낮아진다고 말한다.

모엔 교수에 따르면 이제 갓 은퇴한 사람들은 가장 낮은 결혼만족도와 가장 높은 부부싸움 비율을 보이는데, 약 2년이 흐른 다음에야 이 생활에 적응해 안정을 찾아간다. 먼저 은퇴한 남편과 아직 은퇴하지 않은 아내가 최악의 경우로, 만약 부부가 맞벌이라면 서로의 은퇴 시기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현화 기자 leehh@hankyung.com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