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마인드 컨트롤

“50대의 고뇌요? 아니 그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세상에서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주문을 걸며 삽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송석준(52) 에코프린터 대표의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 그를 만나면 우울한 이 시대 50대들을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윈드서핑에 푹 빠져 산다는 송 대표를 만나기 위해 뚝섬 한강공원의 윈드서핑클럽으로 향했다.
[Cover]송석준 에코프린터 대표 “50대가 불행하다고? 긍정은 해보셨나요?”
사무기기 렌탈 사업을 하고 있는 송석준 에코프린터 대표는 건설 회사 임원 출신이다. 쌍용건설과 SK건설에서 건설영업을 했고, 부동산 개발그룹 신영에서 개발사업본부장을 끝으로 지난 2월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최근 몇 년간 얼어붙은 건설 경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떠나야 할 때’임을 직감하고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정년을 미처 채우지도 못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은 수많은 동료, 선배들을 보며 언젠가 자신에게도 닥칠 운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이 정해져 있잖아요. 요즘 직장 다니는 친구들 만나면 다들 ‘길어야 2~3년’이라고 합니다. 철길이 끊어져 있는 걸 아는데 거기에 대비하지 않는 건 자기 삶에 무책임한 거죠. 평생 할 일과 좋아하는 일 두 가지만 있으면 인생 2막도 결코 우울하지 않을 것 같았죠.”

송 대표는 40대 때부터 틈틈이 사업 아이템을 연구하고, 시장분석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쌍용경제연구원에 있었던 경력도 도움이 됐다. 렌탈 사업이 유망하다는 생각에 발 빠르게 프린트, 복합기 등 사무기기 렌탈 회사를 인수했다.

비즈니스차 중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TV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를 직접 확인하고, 상하이 한인타운에 고깃집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 3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그 밖에 중국에서 마스크팩 유통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회사를 나온 지 1년 반 만에 세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가 됐다.

건설사 임원 출신, 윈드서핑으로 찾은 제2의 인생
그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를 나오자 곧 다른 기업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또박또박 들어오는 마약과도 같은 월급 앞에 그는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다. 길어봐야 3~4년 뒤에는 또다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일 것이니 새로운 일을 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라는 말이었다.

“아내는 당장 월 200만 원을 벌어 와도 좋으니 60세 이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살고 있던 넓은 집을 팔아 대출을 털고 몸을 가볍게 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집을 팔기로 결정한 그날 우리 부부는 바로 부동산에 집을 내놨습니다. 아내의 격려와 신속한 결정에 정말 큰 용기를 얻었지요.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할 줄 알았거든요. (웃음)”

그는 고정 급여를 포기한 대신 깨끗한 피부를 얻었다. 그동안 환절기만 되면 극심한 피부 트러블 때문에 고생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희한하게도 괜찮아졌다. 그동안 광적으로 해 오던 운동을 멈추니 몸에 살도 붙었다. 송 대표는 전열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찾던 중 한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윈드서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바다나 강 한가운데서 보드 위에 세워진 돛에 바람을 받으며 파도를 타는 해양 스포츠인 윈드서핑에 매료됐다. 평소에 짜릿한 도전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과도 맞았다. 3개월에 걸쳐 윈드서핑 자격증을 따고 내친 김에 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송 대표에 따르면 보드 위에서는 허리로 중심을 잡고 버텨야 하기 때문에 윈드서핑을 하면 허리가 튼튼해진다. 발바닥, 허벅지, 종아리 운동이 되는 것은 물론 팔로 쉴 새 없이 돛을 잡아당겨야 하므로 오십견 예방에도 좋다. 나이가 들수록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중년 남성들에게 윈드서핑이라는 레저스포츠가 무척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뚝섬에 있는 한 서핑클럽의 멤버가 돼 주말마다 타다 보니 너무 재밌습니다. 요즘은 바람 부는 날만 기다리죠. 보드 장비는 한 번 장만해 놓으면 부러지지 않는 한 평생 탈 수 있어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고 2시간만 배우면 금세 탈 수 있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요. 요즘에는 경희대 학생들의 교양수업 시간에 코치로 참여하게 돼 본의 아니게 재능기부도 하게 됐습니다. 일에 파묻혀 지낼 때는 모르던 삶의 즐거움을 하나 둘 찾아가고 있죠.”
[Cover]송석준 에코프린터 대표 “50대가 불행하다고? 긍정은 해보셨나요?”
내려놓고, 포기하면 나이 드는 것 걱정 없어
송 대표는 ‘늙어 가는 것’에 대해 큰 걱정이 없어 보였다.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게 노하우라고 했다.

“우리 또래들은 나이가 들어도 ‘나는 여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회는 그렇게 봐주지 않죠. 가령,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해요. 상대 여성은 ‘우리 아빠뻘이네’ 이렇게 보는데 말이죠. 나이가 든다는 건 그걸 포기해 가는 과정이죠. 명함 내밀 때 폼 나는 것, 나에게 굽실거리던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대신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취미를 찾는다면 50대는 훨씬 행복해질 거예요. 긍정적인 마인드도 필수예요. ‘죽겠다’, ‘힘들다’ 하지 마세요. 욕하고 불평하며 살아봐야 나만 괴롭잖아요. 하루하루 즐거우면 인생은 쭉 즐겁죠.”

인터뷰를 마친 송 대표가 보드를 들고 저 멀리 한강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보드에 닻을 달고 몸을 실었다. 바람이 미는 대로 유유히 한강을 미끄러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인생도 그렇게 세월에 맡긴 채 힘을 뺀다면 그 속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