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유산이 없는데도 뜬금없이 세금 통지서가 날아오는 경우가 있다. 용처가 명백하지 않은 망인(亡人)의 사망 전 2년 이내 거래를 사전에 현금으로 상속한 것으로 추정해 과세한 것인데 이처럼 날벼락 같은 세금 추징을 안 당하려면 꼼꼼한 대비가 필수다.
일러스트 정재환
일러스트 정재환
상속 및 증여세법 제15조(상속재산추정 규정) 조항은 가끔 억울한 일을 발생시킨다. 망인이 사망 전 2년 이내에 처분하거나 인출한 현금에 대해 거래 상대방이 확인되지 않는 등 용처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 상속인이 이를 사전에 현금으로 상속 받은 것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대상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망인이 생전에 인출한 금액이 과세자료 포착이 쉽지 않은 ‘현금’으로 상속인에게 증여 또는 상속됨으로써 상속세를 부당하게 경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입증 책임을 상속인에게 부여한 조항이다.


부모의 은밀한 지출, 상속세로 날벼락
입법 취지가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반면 이 규정으로 인해 억울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고령의 A씨는 시가 20억 원을 호가하는 상가건물을 유일한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배우자는 먼저 사망했고 슬하에 자녀는 아들 삼형제. 어느 날 A씨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던 중에 장남이 아버지의 상가건물을 몰래 제3자에게 20억 원에 양도한 후 그 양도대금을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얼마 후 A씨는 사망했고 그로부터 2년 뒤 과세관청으로부터 상속세 조사를 받게 됐는데, 이때 2남과 3남은 상가건물 양도대금의 사용처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과세관청은 20억 원 중 2억 원을 차감한 후 18억 원을 상속 재산으로 추정해 상속인별로 법정상속지분만큼 상속받은 것으로 보아 상속세 5억 원을 부과했다. 2남과 3남은 실제로 상속 받은 재산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속재산추정 규정에 따라 상속세 납세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유 재산이 발견되지 않은 장남을 제외한 2남과 3남의 고유 재산인 예금을 압류, 추심해 상속세 일부를 국고로 환수하기에 이른다. 2남과 3남은 상속재산추정 규정 때문에 상속세 부담이라는 재산상 불이익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셈이다.

또 다른 사례로 자수성가한 고액자산가 B씨에게는 가족들이 모르는 내연관계의 여인이 있었다. 평소에 생활자금을 지원했던 B씨는 큰돈이 필요하다는 내연녀의 요청에 3억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가족 몰래 건넸다. 그런데 얼마 후 B씨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B씨의 상속인들은 망인이 현금으로 인출한 3억 원의 행방을 확인할 수가 없었고, 그 사용처에 대해 입증하지 못함으로써 3억 원의 20%에 해당하는 6000만 원을 차감한 2억4000만 원이 상속 재산에 포함돼 상속세 부담세액이 증가했다.

이와 같이 상속재산추정 규정은 변칙적인 방법으로 상속세, 증여세를 회피하는 걸 방지할 목적으로 입법돼 당연히 필요한 규정이기는 하지만 사례와 같이 억울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상속인들의 재산상 손실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망인의 도박 비용, 민간요법이나 민간의술 치료에 지출된 비용, 무속인에게 지출된 비용 등은 입증하기가 애매하고, 그것이 고액의 거래라고 하더라도 따로 증빙을 갖추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금의 사용자는 망인인데, 그 입증을 망인의 상속인들이 해야 한다는 데 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고액 자금 지출은 증빙자료 남겨 둬야
이 같은 사례로 인해 상속세 조사 시 과세관청과 상속인 간에 종종 실랑이가 벌어진다. 일상 생활경비 정도의 소액 인출에 대해서는 증빙이 없더라도 인정해주지만, 고액의 인출에 대해서는 그 사용처가 확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 정도 규모가 큰 자금이 지출됐을 때 부모는 해당 증빙자료를 잘 보관해 본인들이 사망한 후 상속인들이 억울한 상속세를 부담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다.

해외에서의 인출 자금에 대한 상속세 과세 및 소송 사례도 있다. 망인 C씨는 1980년대부터 해외에서 해운업을 운영해 왔다. 선박 구입 및 운영을 위해 해외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 운영하면서 사업이 번창해 거액의 재산을 일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선박 운송 규제가 많아지면서 사업은 순항하지 못했고, 보유 선박을 매각하는 등 사업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C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2007년에 사망했다.

상속인들은 국내 상속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신고하고 얼마 뒤 상속세 조사까지 받았으나, 어느 날 해외 재산이 문제가 돼 상속세 조사가 추가로 실시됐고, 그 결과 1000억 원대의 상속세가 과세됐다. 망인 C씨 1인 소유였던 해외 SPC가 예금으로 보유하던 선박 매각대금 등 거액의 자산이 사망하기 전 2년 이내에 수차례 인출되거나 외국 은행으로 이체돼 그 행방이 묘연해진 점과 그에 따라 해외 SPC의 보유 재산이 0원이 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과세관청은 해외 SPC를 도관(conduit)이라 판단해 법인격을 부인하고 그 회사의 1인 주주인 망인을 그 자금의 실제 소유자로 보았다. 따라서 인출 자금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사유로 상속재산추정 규정에 따라 해당 금액을 상속 재산으로 보아 상속세를 과세하게 된 것이다.

조세심판원에서는 과세관청의 의견을 수용해 기각 결정을 내렸으나, 1심 법원에서는 과세관청이 패소했다. 법원에서는 “해외 SPC 명의의 예금이 망인의 소유라는 점에 관해 먼저 과세관청이 입증한 후에 상속인들이 그 사용처에 대해 입증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점, 이 사건의 해외 SPC는 독립된 권리의무 주체인 점, 인출된 자금이 외국 은행 누구의 계좌로 이체됐는지 과세관청이 확인하지 아니한 점 등을 들어 상속재산추정 규정만으로 이 사건 해외 SPC 명의의 예금을 상속인들이 상속 받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상기의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 지켜본다면 재판 결과가 훨씬 흥미로울 듯하다. 금융 시스템이 발달하면 과세대상 조사 기법 또한 발전하게 마련이고, 이는 절세 방법이 갈수록 제한을 받는다는 의미다. 사례를 통해 적절한 대처 방안을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


유상학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세무자문본부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