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디지털 콘텐츠의 영토는 넓어지고, 콘텐츠의 재산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 해외에서는 관련 소송이 급증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발등의 불’로 떠올랐다.
[Issue] 디지털 유산, 어떻게 상속할까
정기적으로 적지 않은 수익이 발생하는 파워 블로그를 운용해 온 블로거가 사망하면 그 블로그는 상속될 수 있을까. 유명 파워 블로거 등의 매출은 웬만한 중소기업을 뛰어넘는다.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한 파워 블로거의 경우 약 1년간 무려 158억 원(263개 제품)에 달하는 공동구매를 이끌어내고, 업체로부터 8억8000만 원의 판매수수료를 받았다고 하니 디지털 콘텐츠의 위력에 할 말을 잃을 정도다.

2014년 7월 기준 한국의 인터넷 인구는 4531만4000명에 이른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5월 14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분석 전문 기업 앱애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은 해외 주요 앱 시장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공간에 축적된 디지털 유산은 사용자가 사망하게 된 뒤 상속이 가능할까? 여기서 디지털 유산이라 함은 인터넷 사이트, 카페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메일, 메신저 계정이나 게시물, 사이버머니, 웹툰 작품 등 저작물, 사진·동영상·음악 파일 등 다양하다. 국내외에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 논쟁이 뜨겁게 일고 있다.


조만간 관련 소송 쏟아진다
2012년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메일에서는 흥미로운 기사를 보도했다. 미국의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애플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인 즉 애플 아이튠스에서 받은 MP3를 합법적으로 상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윌리스가 소송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신문 보도 이후 윌리스의 아내인 에마 허밍이 트위터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고 밝히며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 버렸지만 ‘디지털 유산의 상속’이라는 화두를 강하게 던진 사건이었다.

미국에서는 디지털 유산과 관련한 소송이 잇따르는 등 디지털 상속 문제가 사회 이슈로 등장했다. 2004년 11월 미국의 이라크 참전 용사인 저스틴 마크 엘스워스 병장의 사망과 관련해 그의 부모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를 상대로 벌인 소송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이 사건에서 엘스워스 병장의 부모는 고인이 된 아들이 생전에 받은 이메일을 요구했고, 야후 측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에 나선 것. 결국 야후는 이 소송에서 패소해 엘스워스 병장이 받은 이메일이 담긴 CD를 유족에게 제공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유산 문제가 간헐적으로나마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유명 탤런트였던 고(故) 최진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천안함 침몰 사건과 세월호 사고 때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 처리 문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디지털 유산 상속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살아 있는 사람을 규율하는 법규는 많지만 사망한 사람의 인터넷 정보에 대해 규율하는 법규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민법상 디지털 유산을 재산권적 성질로 규정하더라도 디지털 유산은 제3자인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유족 내지 피상속인이 사망한 상속인의 디지털 유산의 제공을 서비스 제공자에게 청구하거나 디지털 유산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청구해야 하는데, 이 대목이 수월하지 않다.

국내 정보통신망법에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금지돼 있으며, 비밀보호 규정 등이 남아 있어 서비스 제공자가 망자의 허락 없이 디지털 유산을 넘길 경우 과징금(매출액의 100분의 1 이하)과 벌칙(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가 굳이 법을 위반해 가면서 상속인에게 디지털 유산을 넘길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의원 입법을 통해 이 같은 디지털 유산의 처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유기준 의원(서비스 제공자는 상속인 요청에 따라 사망자 개인정보 제공 또는 파기), 박대해 의원(이용자가 사망 전에 지정한 자 등이 사망자의 미니홈피 또는 블로그 관리에 필요한 조치 요청), 김금래 의원(이용자 사망 시 6개월 내 개인정보 파기)이 관련 법안을 추진했다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지지부진 마무리된 적이 있다. 또 2013년에는 김장실 의원(새누리당) 등이 디지털 유산을 상속인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유정석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실장은 “의원입법으로 디지털 유산 처리 문제를 다루려고 몇 차례 시도했으나 현실적인 법의 한계에 부딪히며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며 “현재는 인터넷업계가 법 테두리 안에서 자율정책을 정해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실장은 이어 “법이 디지털 기술을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법에서는 원칙만 정해두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소송 이슈가 별로 없는) 지금으로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향후 디지털 유산의 처리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억될 것인가, 잊힐 것인가
그럼 해외에서는 디지털 상속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올해 2월 페이스북은 미국 공식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계정유산 상속제도’를 발표했다. 기존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이용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열람만 가능했는데 바뀐 제도로 인해 디지털 유산을 상속 받은 이용자는 고인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추모에 관한 알림 글 등을 게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고인의 개인적인 메시지와 같은 개인정보는 상속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앞서 구글은 ‘휴면계정관리자’라는 서비스를 통해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신의 사진, 이메일, 문서 등의 구글 데이터를 다른 사람에게 미리 보내도록 설정할 수 있게 했다.

트위터나 유투브 등도 비교적 디지털 유산에 대해서 유연한 정책을 써 오고 있다. 트위터는 이용자가 사망했을 경우 계정 삭제 또는 공개적으로 트윗한 내용을 백업하는 방식으로 사망자의 가족을 지원하고 있으며, 유투브는 사망증명서, 법적 대리권한의 형식 요건을 갖추면 사망자 계정의 콘텐츠 접근을 허용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독일은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일반적인 유산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망자의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거주지 관할 법원에서 발급한 유산을 상속받는 유족 증명서가 필요하다. 상속 해당 사항은 반드시 망자의 유언장과 상속약정서에 근거하도록 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포함되는 이메일이나 블로그, 홈페이지, SNS의 계정과 정보는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 경우 유족이 명확하게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디지털 유산의 목록과 상속권을 증명해야 한다.

국내법에 의하면 포털 계정이나 블로그 등은 일신전속권(특정인만 행사할 수 있어 양도나 상속이 불가능한 권리)에 해당된다.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은 타인에게 명의를 빌려주거나 유족에게 물려줄 수 없으며, 네이버나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포털은 개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사망 여부와 가족관계가 서류를 통해 확인될 경우 업로드 된 데이터의 백업까지는 가능하다.

사실 디지털 유산의 상속 문제는 잊힐 권리와 부딪히기도 한다. 이용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사후에도 디지털 공간에 떠도는 정보들이 남아 망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모 포털 업체의 경우 이용자가 사망한 후 배우자가 데이터 백업 등의 목적으로 계정을 잠시 열어줄 것을 요청해 와 도의적인 이유로 응했던 적이 있었다”며 “이후 한 여성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해 피해를 입었다며 포털 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난처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망자의 배우자가 계정 데이터를 확인하다가 사진 등을 통해 불륜 사실을 알게 됐고, 상대방 여성에게 문제를 제기하자 해당 피해자가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포털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디지털 유산 처리를 재산권적인 상속 문제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민도 이러한 대목에서 발생한다.


디지털 상속 돕는 신종 업체 속속 등장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산 상속을 돕는 전문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직 디지털 상속과 관련한 학문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분위기다. 인터넷 계정 처리에 관한 유언을 남기면 회원 대신 사이버 장례식을 치러주는 ‘라이프인슈어드닷컴’(www.lifeensured.com), 지메일이나 페이스북 등의 이용자들이 생전에 보관해 둔 온라인 계정 정보를 유족에게 전달해주는 ‘레거시로커’(www.legacylocker.com), 갑자기 사망한 망자의 계정이나 홈페이지, 개인정보를 유족에게 찾아주는 독일의 ‘디기틸러 나흐라스’(www.digitaler-nachlass.de), 인터넷 이용자가 생존 기간에 인터넷 유언장을 작성토록 하고, 여기에 은행계좌, 이메일 계정, 홈페이지 가입 계정 등의 중요한 비밀번호를 보관해주는 스웨덴의 ‘마이웹윌’(www.mywebwill.com)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해외에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과 달리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11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에서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개인정보, 계정, 게시물 등) 처리방안 연구’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것이 첫 번째 의미 있는 행보였다고 볼 수 있다.

작년 대법원에서는 사법제도 비교연구회를 중심으로 디지털 유산의 적절한 처리 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으며, 법원을 중심으로 소규모 스터디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정보통신 서비스 이용 계약 시 이용자가 사후 디지털 유산에 대한 처리 방법을 정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방통위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서 “디지털 유산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와 대응 방안 마련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국내 인터넷 이용자 수 등을 감안했을 때 향후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 처리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여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디지털 유산 문제는 법적인 정비만 이뤄지면 5~10년 안에도 상당히 많은 소송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며 “망자의 재산은 포괄적으로 승계가 되는데 디지털 콘텐츠의 재산적 가치를 어디까지 인정해 포함할지, 재산에 해당한다면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어느 정도 예외로 둬 적용할지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디지털 유산 상속은 아직 소송이나 판례가 없는 상태로 학자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점차 디지털 콘텐츠의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분위기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법적 보완책을 함께 고민할 시기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Issue] 디지털 유산, 어떻게 상속할까
한용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