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명의로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경우 세무당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
과거에 누락됐던 여러 가지 세금에 대해서도 과세 처분이 이뤄질 수 있으며, 대규모 세금 추징은 물론 형사 처벌 등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
일러스트 김범석
일러스트 김범석
우리나라는 참으로 신뢰가 충만(?)한 사회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내 재산을 내 명의가 아닌 남의 명의로 해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목적도 세금 회피, 직장 또는 공직자의 윤리 규제 회피, 경제적 이익 도모, 범죄 자금 은닉, 비자금 조성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듯 내 재산을 타인 명의로 보유, 관리하다가 세무당국에 적발되면 세금이나 과징금 부과를 피하기 어렵고, 심한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대표적인 차명 재산에는 주식, 금융계좌, 부동산 등이 있다.

차명 주식은 세무당국에서 명의자와 실소유자에게 ‘증여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부과하나, 이는 이익 이전에 대한 과세가 아니다. 조세법상의 대원칙인 실질 과세의 원칙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명의신탁을 이용한 조세 회피, 조세 포탈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명의신탁 행위 그 자체를 제재하는 성격을 가진다.

차명 예금에 대해서는 명의자가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부과하거나 실제 차명 예금인 것이 밝혀지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 따라 처벌한다. 차명 부동산에 대해서는 명의신탁자에게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에 따른 과징금 및 이행강제금 부과, 형사 처벌 등을 집행한다. 더불어 이러한 차명 재산들을 보유함으로써 과거에 누락됐던 여러 세금에 대해서도 세무당국의 과세 처분이 추가된다.


실제는 내 재산, 서류상 남의 재산
대기업 오너 A씨는 과거 자신이 경영하던 건설 회사가 부도가 나 본인 명의로는 정상적인 금융 거래나 사업 운영을 할 수 없게 됐다. 사업을 재기하기 위해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본인 주식을 타인 명의로 명의신탁하게 된다.

이후 A씨는 사업이 정상화돼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됐으나, 명의신탁한 주식을 본인 명의로 환원할 경우 명의신탁 행위에 대해 막대한 세금이 부과될 것이 염려됐다. 또 딱히 명의신탁을 입증할 자료도 없었으므로 명의 환원을 차일피일 미루던 중 수년이 지난 후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명의자로부터 A씨가 본인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차명 주식을 증여받는 것으로 해 증여세를 신고, 납부하는 방법으로 실명 전환했다.

이후 A씨는 억울한 마음에 주식을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주식을 되찾아 온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세무당국에 이의 제기를 했고,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 대법원까지 가서야 사실을 인정받아 납부했던 증여세를 돌려받았다. 명의신탁을 하면서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명의신탁과 관련된 아무런 증거나 흔적을 남겨 놓지 않을 경우, 실명 전환을 하려고 할 때에는 되레 큰 걸림돌이 된다.

운수업을 경영하는 B씨는 1980년대에 사업을 시작해 착실히 사업에 매진한 결과 알차게 부를 형성했다. 하지만 B씨는 사업으로 벌어들인 소득을 세무당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고, 관련 자금을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 명의의 예금계좌에 넣어 30년간 관리해 왔다.

B씨는 이후 세무당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데 이유는 소득이 많지 않은 회사 직원들의 예금계좌에서 고액의 이자가 발생함으로써 그 자금의 출처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B씨 소유의 차명 계좌임이 밝혀져 실제 소유자인 B씨에게는 금융소득종합과세로 인한 종합소득세가 부과됐다. 이는 소득 신고를 누락한 사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로까지 이어져 거액의 세금이 추징된 사례다.

C씨는 평생을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하면서 모은 자금으로 수시로 부동산을 구입, 결국 부동산 재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사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소득 중에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은 소득으로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본인 명의로 등기를 하지 않고 다른 여러 사람의 명의로 등기해 둔 부동산도 꽤 있었다.

그렇게 지내 오던 중 차명 부동산을 본인 C씨 명의로 돌려놓기도 전에 차명 부동산의 명의자 중 한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해 버리고 만다. 그 차명 부동산은 명의자의 자녀들에게 상속됐고, 실제 소유자인 C씨는 상속인들을 상대로 소유권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오랜 기간에 걸친 법정 다툼 속에서 겨우 부동산을 되찾을 수 있었다.


차명 재산, 형사 처벌 대상 될 수 있어
주식의 경우,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 1개이고 그 기업의 주식을 명의신탁한 경우에는 그나마 세무 이슈가 단순하나, 여러 개의 기업을 소유하면서 그 기업들의 주식을 각각 명의신탁한 경우에는 그 법인들 간의 내부거래와 관련한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부인,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증여세 등 여러 가지 세무 이슈가 발생한다.

어떠한 목적에서건 남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내 재산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재산에 대한 소유권 자체를 명의자나 그의 상속인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으며, 세금이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하고 위반 정도가 중대한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금융 거래 시스템이 발달하고 정부기관 간의 정보 공유도 증가하고 있으며 국세청의 전산 시스템과 분석기법도 나날이 진화하는 상황에서 차명 재산의 적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더 이상의 차명 재산은 없어야 한다. 만약 현재 보유 중인 차명 재산이 있다면 누적돼 있는 세무 이슈를 해결할 슬기로운 방안을 찾아가며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제는 각 국가 간의 정보 공유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외국 법인 주식의 명의신탁, 해외 차명 계좌, 외국 부동산의 명의신탁의 경우에는 어떠한 불이익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세법, 금융실명법, 부동산실명법 등으로 해외 차명 재산에 대한 과세나 처벌이 가능한지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유상학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세무자문본부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