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으로 가는 길

최근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싶다는 분을 몇 분 만났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실제 많은 해외 장수기업들은 자선 활동에 적극적이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록펠러·밴더빌트가에서 배운다
세계에서 자선재단이 가장 많고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는 약 4만 개 이상의 자선재단이 있는데 그중 한 가문이나 가족기업이 설립한 가족재단의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유럽에서도 가족재단은 각국의 자선 활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월드웰스리포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가족기업의 자선 활동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향후 자선 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가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족재단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들어 세대교체를 앞둔 많은 가족기업들이 성공적인 승계를 위해서는 건강한 가족지배구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선 활동이 가족기업을 성공적으로 승계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플랫폼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자선재단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재단을 사회적 기여와 함께 자산관리 및 세금 전략의 일부로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성공한 가족들은 가족이 함께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가족 운영 체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가족의 사명선언서가 가족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이라면, 자선 활동은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신뢰를 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자는 3대 가기 어렵다’는 3세대 함정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고 있다. 과거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 가문과 밴더빌트 가문의 횡보를 비교해 보면 대를 이어 부를 지키는 비밀이 자선재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록펠러재단은 미국 자선재단의 원조 격으로 카네기재단, 포드재단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큰 3대 재단으로 손꼽힌다. 록펠러재단은 창업자인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가 1913년 ‘지식의 습득과 공유, 고통의 제거와 예방, 인류 진보와 관련해 미국인을 포함한 전 인류의 문명을 향상시키고 인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으로 설립했다. 이 같은 록펠러의 유지는 그의 후손들에게도 전해져서 록펠러의 아들과 손자 등 후손 대부분이 자신들의 자선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특히 록펠러의 여러 아들 중 록펠러 2세는 자선사업을 일생의 사업으로 선택, 아버지의 유업을 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후손들의 자선사업에 관한 행보를 보면 록펠러가(家)는 가히 자선사업의 명가로 불릴 만하다.


자선재단을 통해 세계적인 가문으로 성장한 록펠러家
존 록펠러와 그의 아들 록펠러 2세가 벌이는 록펠러재단의 활동에 고무돼 1940년에는 록펠러 2세의 아들딸들이 모여 ‘록펠러 브러더스 펀드’라는 자선재단을 설립했고, 1967년에는 록펠러가의 3대, 4대, 5대 가족이 ‘록펠러 패밀리 펀드’를 설립해 세계 평화와 환경 보호,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 공공정책 문제에 집중해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록펠러가는 100년 동안 쌓아온 자선사업의 노하우를 다른 부자들과 공유하고자 2002년 5월 록펠러 자선자문단이라는 비영리기구를 새롭게 만들었다. 이 자문단의 한 관계자는 “그간 대학이나 기업들은 돈을 벌고 쓰는 방법만 가르쳤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부할지에 대해서 준비시키는 곳은 거의 없었다”라면서 “록펠러 자선자문단은 부자들의 자선적 기부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5대손인 타라 록펠러는 “가족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우리에게 동참하길 원하는 자선기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록펠러가는 장남인 록펠러 2세가 아버지가 시작한 자선사업을 총괄했고, 이것이 다시 록펠러 3세, 4세, 5세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반면 록펠러가와 대비돼 자주 거론되는 가문이 있다. 바로 밴더빌트가다. 코넬리어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는 1810년 해운업으로 시작해 이후 철도사업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는 1877년 10억 달러 가까운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98년 아메리칸 헤리티지는 그가 남긴 돈을 당시 가치로 추정했는데 약 959억 달러에 달했다. 그는 역사상 록펠러, 카네기에 이어 셋째로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선사업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아들과 손자에게 엄청난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돈을 지켜라”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욕 5번가에 있던 그의 아들과 손자의 저택에서는 미국 최고 부자 가족들과 정치인들이 모여 매일 밤 파티가 열렸다. 그리고 요트, 말, 보석, 미술품 등을 구입하고 저택을 꾸미는 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밴더빌트가 세상을 떠난 지 48년이 되는 1925년 가문의 관리자 역할을 맡았던 그의 증손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부터 750만 달러를 물려받았지만 고작 13만 달러만을 남겼다. 이후 밴더빌트가의 가족들은 1973년 처음으로 ‘가족 재회의 날’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한 연구서에 따르면 “그날 모인 사람들 중에 백만장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3세대 함정 극복하지 못한 밴더빌트家
1989년 당시 록펠러 가문에서는 가족들 중 5명을 미국의 400대 부자 순위에 올려놓았고, 전 집안의 재산도 50억 달러나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밴더빌트 가문은 부자 순위에 한 명도 없었다. 밴더빌트의 손자 윌리엄 밴더빌트는 막대한 유산이 자신의 행복 추구를 방해한다고 말했다.

“부는 나에게 아무것도 바랄 게 없도록 해줬다. 돈이 많으니 애써서 찾거나 구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규정할 것도 없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물에 불과했다.”

결국 밴더빌트가는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3세대의 함정을 극복하지 못했다. 반면, 록펠러가는 가족이 함께 자선사업을 통해 가문의 재산을 사회와 나누면서도 오히려 가문의 재산을 불렸다. 그들은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나누는 것이 사회에 유익하지만, 가족이 함께 참여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가문에 더 유익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많은 가족들이 가족재단을 가족지배구조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기업과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만 했지 가족이 함께 재단을 운영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부금을 내거나 자선 활동을 벌이는 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접근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자선 활동을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등의 방안으로 활용한다. 또한 자선 활동도 대부분 불우이웃돕기와 장학사업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더 높은 차원의 자선사업에 나설 때다. 자선재단이라고 해서 꼭 재벌기업처럼 수천억씩 내놓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자선재단의 90%가 소규모 가족재단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가족기업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자선 활동은 사회적인 기여뿐 아니라 창업자의 경영 철학과 정신을 후손들에게 계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고, 결국 가족에게도 더 유익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