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는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 현역에 종사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욕망한다. 100세 시대엔 여기에 하나 더, 보다 오랫동안 일함으로써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 측면에서 90대에도 은퇴하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박승복(93) 샘표식품 회장은 부러움 혹은 존경의 대상이다. 은행원, 공무원, 경영자로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죽는 날까지 현역으로 남을 것이라는 박 회장. 지금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건, 그의 행보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박승복 회장은… 1922년 함경남도 함주 출생 1940년 함흥공립상업학교 졸업 후 한국식산은행 입행 1945~1964년 한국산업은행, 1959년 재무부 총무과장 1966~1972년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1973~1976년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1976~ 샘표식품 회장(현)1996~2013년 한국상장협의회 회장
박승복 회장은… 1922년 함경남도 함주 출생 1940년 함흥공립상업학교 졸업 후 한국식산은행 입행 1945~1964년 한국산업은행, 1959년 재무부 총무과장 1966~1972년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1973~1976년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1976~ 샘표식품 회장(현)1996~2013년 한국상장협의회 회장
몇 년 전,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80대 후반 즈음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었지만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얼굴에 활력이 넘쳤다. 그는 “피부 나이를 측정하면 지금도 40대로 나온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평생 현역’의 모범 사례로 박 회장이 적격자였다. 그에게 취재 요청을 했지만, 요사이 몸이 좋지 않아 직접 만나기는 어렵다는 뜻을 전해 왔다. 그래서 서면으로 대신한 인터뷰. 박 회장이 보내 온 답변지 행간에는 노장의 지혜가 그득했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여전히 건강하신지요.
“제 건강을 궁금해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건강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감기 같은 자잘한 병이 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안경을 쓰지 않고 신문을 보며 보청기도 끼지 않을 정도입니다. 또한 되도록 매일 출근해 직원들을 격려하고자 하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간부회의를 소집해 회사 돌아가는 상황 전반을 보려고 합니다.”


‘커피 쏘는 회장님’이시죠(그는 회사 앞 커피숍에 자주 들르는데, 만나는 직원들에게 커피를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도 직원들에게 커피를 자주 사 주시나요.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요즘도 한 번씩 샘표 사무실이 있는 충무로역 스타벅스에 갑니다. 다들 손주뻘이라 그런지 우리 직원들을 보면 그렇게 흐뭇합니다. 만나면 커피도 사 주고 애로사항도 물어봐요.”


출근하는 것 외에는 어떤 일상생활을 영위하세요. 3년 전엔 샘표식품을 비롯해 대한적십자사,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20여 개 조직의 명함이 있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신지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외 다양한 모임과 활동들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제가 오랫동안 맡고 있던 직책을 물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올해는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8년을 회장으로 있었기에 아쉽기 그지없었지만, 제 뒤를 이어 젊고 소신 있는 분께서 잘 이끌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취미생활이나 운동 등은 어떤 걸 주로 하세요.
“운동은 안 합니다. 골프는 1970년대 초반에 잠시 치다가 그만둔 뒤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다른 운동도 시간이 없어서 엄두를 못 냈습니다. 다만 흑초를 꾸준히 마시는 게 유일한 건강 비결입니다.”


90대 현역의 힘은 식초에 있는 셈이군요.
“아직까지 정정하다 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건강 비결을 궁금해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매번 알려드립니다. ‘식초 건강법’이라 불리는 제 흑초 음용법을 말이지요. 젊었을 때 위장병이 있던 저에게 일본인 친구가 추천해 줬던 것이 바로 ‘흑초’입니다. 식초를 마시면 오히려 위에 안 좋지 않을까 했던 제 의심을 한번에 없애 준 고마운 식품이지요. 흑초는 현미를 발효해 만든 식초인데 ‘식초의 왕’이라고 불려요. 1983년부터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흑초를 물과 희석해 마십니다. 업무상 잦은 음주로 위궤양 진단을 받았는데 이 지병이 사라진 순간부터 의심하지 않고 지금까지 습관을 들여 흑초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피곤하거나 기력이 없다거나 하는 느낌이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평생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을 정도예요.”


보다 일찍 은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껏 노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은퇴라는 걸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껏 해 왔던 일을 그냥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 나이가 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 보면 그 모임의 목적은 잊고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 좋은데요,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어느 순간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의미가 되는 나이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의 목표를 다시 다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건강하다는 자각과 살아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고, 앞으로의 삶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삶의 목표를 재설정하려는 의지를 얻는 것이지요.”
[MASTER`S WISDOM] “100세 넘어서도 ‘좀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93세 현역 비결? “30여 년간 식초 마시고 순간에 최선 다한 덕분”
박 회장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1940년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수재들만 모인다는 한국식산은행(한국산업은행의 전신)에 입행해 25년간 은행원으로 지냈다. 1959년 재무부 파견 근무로 공직에 발을 들인 뒤 재무부 기획관리실장과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을 역임했다. 10년에 걸친 공직 생활을 마치고 1976년 부친의 뒤를 이어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를 장류 업계 톱으로 성장시켰다. 1997년 대표이사직을 아들 박진선 현 사장에게 물려주기까지 20년을 경영 일선에 있었으며, 지금까지 샘표 회장을 비롯해 여러 사회 활동을 하며 평생 현역으로 살고 있다. 그는 평소 원칙주의자로 유명한데, 법인카드를 쓰다 보면 자기 돈이 아니라는 생각에 씀씀이가 커질 것을 우려해 모든 비용은 자신의 월급으로 처리하는가 하면 기업과 주식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때도 합법적으로 상속세를 다 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물의를 빚는 데 대해 “깨끗하게 세금을 내면 되는데 너무 술수를 많이 부리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MASTER`S WISDOM] “100세 넘어서도 ‘좀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25년간 은행원으로 재직했으며, 정부에서도 10여 년간 일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경영을 해오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어떤 일이 성격과 가장 잘 맞았던 것 같습니까.
“은행원으로 살았을 때, 나라의 부름을 받고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샘표라는 회사의 경영을 시작했을 때도 제 마음가짐은 똑같았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뿐이다’라는 생각 말이지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가진 진심을 다했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맞지 않았던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샘표가 성장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서 참 흐뭇하기는 했습니다.”


자서전 ‘장수경영의 지혜’에도 인생과 일에 있어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하고 있더군요. 참으로 FM적인 삶입니다.
“순리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어요. 정직, 신용, 신뢰 등이지요. 태어나 배워 온 모든 것들이 순리 안에 집약돼 있는 것입니다. 순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아요. 언젠가는 무너질 건물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제 스스로 순리를 지키면 하고자 하는 일에 온 우주가 도움을 주는 것처럼 매끄러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잠시의 이득에 현혹되거나 순간의 손해를 감내하지 못하고 순리를 어기는 것은 미래를 담보로 사채를 쓰는 것과 같지요.”


경영을 하다 보면 여러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지요. 순리를 거스를 유혹도 느끼게 되고요.
“샘표식품이 한 우물을 판 기업이라는 평을 듣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다른 사업에 진출할 기회도 있었어요. 단적으로 1960년대에 라면이 시장에 나왔을 때 라면 생산을 해 보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고 박규회 샘표식품 창립자)는 고집스레 간장에 애정을 보이셨죠. 그때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지금 더 잘 됐을 수도 있었겠지만 진출하지 않아 오히려 샘표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믿어요. 기업이 바로 서기 위해선 넓고 깊게 한 우물을 파야 한단 걸 배웠습니다.”


일을 하면서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로 행복하지요. 나는 첫 직장 한국식산은행에서 40대 중반까지 일했는데 그때 일과 인생과 사람의 도리를 배웠어요. 입사하면서 장차 은행장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는데, 막연한 꿈이었지만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꿈의 힘은 참으로 위대해서 꿈을 갖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에 적극적 자세로 임하게 됐습니다. 실력을 쌓기 위해 낮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을지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공부가 끝나면 한국생산성본부 강좌를 들었습니다. 꿈이 있으니 일이 즐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집니다. 박 회장님께서는 일생에 걸쳐 다양한 방향으로 직업 혹은 진로를 변경했는데요, 선배로서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사회가 어수선해서인지 많이들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껏 살아 온 사회 역시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도 마찬가지예요. 샘표라는 회사를 맡으면서도 불안했지요. 감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혼신을 다하면 언제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는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천천히, 그리고 한결같이 하면서 배워 간다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꿈꿀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작의 마음을 계속해서 간직하면 어떤 일에서든 열정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1. 지난해 한국상장사협의회 증권 파생상품 시장 개장식에 참가한 모습.2. 샘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모습.3. 아들 박진선 현 샘표식품 사장과 제품 테스트하는 모습.
1. 지난해 한국상장사협의회 증권 파생상품 시장 개장식에 참가한 모습.2. 샘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모습.3. 아들 박진선 현 샘표식품 사장과 제품 테스트하는 모습.
100세 시대에 평생 현역으로 남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장수기업을 경영해 온 사람으로서, 또 지금까지 장수해 온 사람으로서 ‘오래됨’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요란하게 건강관리를 한 적도 없었고, 샘표를 장수기업으로 키워야겠다 작정한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사람도 기업도 똑바로 제대로 하면 오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게 살아 왔고요. 평생 일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우선 따져봐야겠지만,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면 지금 하는 일의 기본을 챙기세요. 또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세요.”


솔직히 말해 언제까지 일하고 싶으신가요.
“샘표에는 제 삶이 녹아 있습니다.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해 회사에 출근하고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가지고 계신 개인적인 목표나 꿈은 무엇입니까.
“오래살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거짓일 것입니다. 그보다 더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원로모임에서 누가 ‘아흔 살의 일기’를 읽어 주었는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90세에 어학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 이유가 ‘105번째 생일날 아흔 살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나 역시 100세가 넘어서도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삽니다.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끝으로 샘표가 앞으로 10년 뒤, 100년 뒤 어떤 기업이 됐으면 좋겠습니까.
“샘표는 국민을 생각하는 회사로 시작해 지금껏 커 왔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담가 먹는 것에서 사 먹는 것으로 ‘장’의 개념을 바꾼 지 어언 68년이 됐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인에게 ‘장’의 개념을 각인시킨 회사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한국의 식문화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수준에서 나아가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저와 샘표인들이 모두 노력할 겁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샘표식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