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러운 관계 맺기, 손맛

이른바 ‘먹방(먹는 방송)’이 인기다. 그런데 정작 요리는 하지 않고 눈으로만 즐기고 있으니 일종의 거짓 쾌감이다. 요리는 힘들지만 직접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해본 사람만 안다. ‘삼식이’ 취급 받을까 두려워만 말고 일상에서 요리하기를 욕망하시라.
[HOW TO ENJOY LIFE] 요리를 욕망하다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란 가사 어떤가. 가수 이적이 보컬을 맡았던 긱스라는 그룹의 ‘짝사랑’ 노래 가사 중 일부다. ‘냉면 같은 음식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는 정도로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냉면 마니아들의 반응은 다르다. 엄청난 최고의 사랑 표현이라고 이야기한다. 필자도 냉면을 좋아하기에 이 노래를 들을 때 ‘대단한 여자를 만났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먹는다는 것은 가장 일차적 본능이다. 생존의 기본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는 것에 우리 뇌는 강하게 작용한다. 가족을 만드는 사랑이라는 본능보다 더 앞선 본능이 먹는 본능이다. 내가 존재하고 나서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로맨스 드라마 이상으로 ‘먹방’이 인기고 ‘훈남’ 셰프들은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다. 맛 집을 찾아다니는 방송이나 요리 경연은 벌써 올드 패션이고 연예인 집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고 와 그 재료로 요리 경쟁을 벌이는 방송도 있다. 눈으로 쉬지 않고 요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남성의 마음이 더 여리다
‘요리를 욕망하다’는 요리의 사회문화사를 담은 책인데, 현대인들이 ‘먹방’은 좋아하는데 막상 요리는 점점 안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요리를 손이 아닌 눈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주방이 아닌 침대에서 타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상상으로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요리는 수고가 많이 들어가는 노동이다. 그래서 눈으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 만드는 것을 넘어선 자기 주변과의 관계 맺기다. 요리의 재료엔 자연이 담겨 있어 우리는 요리를 하며 자연과 만나게 되고 또 그 요리를 함께 나눌 대상을 만나게 된다. 손맛이라는 것도 정성스러운 관계 맺기의 마음이다. 요리는 힘든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 요리를 실제 손으로 할 때 진짜 만족감이 찾아오게 된다. 노동이 수반되지 않는 욕망 충족은 뇌를 중독시켜 내성을 만든다. 점점 더 큰 자극을 주어야만 같은 쾌감을 얻을 수 있다. 마약이 내성을 만드는 것도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거짓 쾌감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울어본 적이라곤 없는 강인한 성격이었는데 멜로드라마를 보며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며 놀라 찾아오는 남편 분들이 적지 않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춘기 이전까지는 이런 차이가 없다. 사춘기 이후 호르몬 변화도 한 원인이겠지만 남성은 울면 안 되는 캐릭터를 가지도록 교육받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남성이라고 울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슬퍼도 잘 울지 않도록 연습한 셈이다.

사실 여성보다 남성의 마음이 더 여리다. 여성이 남성보다 마음이 더 강하다. 모성애 때문이다. 남자가 강한 것은 마음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이다. 그래서 사회적 역할에 있어 강함을 요구받았던 셈이다. 근육의 힘이든, 사회경제적 힘이든 강한 남자가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남성들의 머리에는 뿌리 깊게 내재화 돼 있다.

그런데 남성이 중년을 넘어가면 자신을 감쌌던 전투력의 갑옷이 벗겨지며 원래의 여린 마음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강한 남성이 여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섬세한 감성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평소 무뚝뚝한 남성조차도 예술가처럼 마음이 섬세해진다. 그래서 전에는 느낌도 오지 않았던 멜로드라마를 보며 ‘꺼이꺼이’ 울게 되는 것이다.

우는 것은 사실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다. 남성도 울 수 있고 슬프면 울어야 한다. 자신의 눈물을 갱년기 우울증 증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보다는 ‘내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다. 중년 이후 우울증은 여성이 2배 많은데 자살률은 남성이 2배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남성이 감정 표현을 지나치게 억제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성은 우울하다고 표현을 하는데 남성들은 그조차도 쑥스러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의 ‘삼식이’ 예방법, 요리
한 남편의 사연이다. “나이가 들면 남성은 여성호르몬이 나와 여성화가 되고 여성은 남성화가 된다는데 그런 것인가요? 전에는 남편과 자식들에게 다 양보하던 정말 순수 현모양처였는데 보고픈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절대 양보도 안 하고 결정에 있어 제가 좀 조언을 하면 잔소리하지 말라며 쏘아붙이는데 무서워 죽겠습니다. 제가 일찍 들어올 때 저녁 안 챙겨주는 것은 생각도 못 했던 일인데 차려 먹으라며 놀러 나가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전에는 왜 일찍 들어오지 않느냐며 들들 볶아 괴로웠는데 이제 마음잡고 가정적으로 살려고 하니 아내가 집에 없네요. 아내가 다중 성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다 ‘삼식이’가 되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사연이 구슬프다. 다중 성격은 서로 다른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다중 성격은 아내의 모성 엔진이 약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가지게 되면, 여성은 모성 엔진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모성애는 자신의 테두리를 확장시킨다. 자신을 넘어 가족을 자신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자식에 대해선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놀라운 마술을 일으킨다.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게 한다. 그러다가 중년이 넘어서면 모성 엔진이 약화되며 다시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중요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하는 허탈한 마음도 찾아올 수 있다.

이것 또한 병적인 현상은 전혀 아니다.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래서 중년 이후 이런 변화에 부부가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내가 밥 안 차려주고 나간다고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 모성애를 잠깐 꺼놓고 ‘나’라는 자유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니까.

그리고 남편이라면 자신에게 찾아온 섬세한 감성을 이용해 그럴 때 오히려 아내를 위해 요리할 것을 권하고 싶다. 잘 되면 숨겨진 자신의 예술적 감각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할 것이고, 망쳐도 아내가 고마워는 할 것이며, 음식 재료가 아까워서라도 아내가 밥을 차려줄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삼식이’가 되는 것에서 멀어질 수 있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