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바쳐 일군 가업, 자녀 중 누구에게 기업을 물려줄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 창업주들이 하는 최대의 고민이다. 경영권을 둔 형제간 갈등이 가장 많이 빚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중견기업의 사례를 통해 솔루션을 모색해봤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형제간 경영권 갈등 해소하기
중견기업의 창업주인 박 모 회장은 3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이 중 첫째와 둘째 아들이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처음 후계자로 생각했던 장남이 주도했던 신규 사업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자 경영자로서의 자질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장남의 내성적인 성격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면 둘째는 리더십이 강하고 일하는 방식이 자신과 많이 비슷한 것 같아 시간이 갈수록 둘째 아들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그러다 보니 형제간 경쟁의식도 높아졌고 회사 업무를 놓고 점점 갈등이 심화됐다. 형제 사이에서 임직원들도 눈치만 살피는 상황이다.


내성적인 장남, 리더십 강한 둘째…후계자는 누구?
박 회장은 두 아들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서열만 놓고 본다면 큰아들이 회사를 맡는 것이 좋겠지만, 회사를 생각한다면 경영 능력이 뛰어난 작은아들이 더 적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몇 년 전 그는 규모가 작은 계열사를 하나 분리해서 사장을 맡고 있던 큰아들을 그곳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모기업의 사장 자리는 공석으로 해놓은 채 둘째 아들에게는 부사장 자리를 맡겼다. 직원들은 큰아들이 작은아들에게 밀린 것 같다고 수군대지만 아들들은 박 회장의 의중을 짐작만 할 뿐이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얘기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향후 승계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되니 형제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여기에 배우자들까지 가세해서 가족관계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여기에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두 자녀까지 더 있어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필자는 먼저 큰아들인 박 사장을 만나보았다. 그는 부친뿐만 아니라 동생에게도 불만이 많았다. 박 회장이 자신이 진행했던 신규 사업이 기대만큼 못하다고 해서 단 한 번의 기회로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데 대해 서운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은 자신과 협조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독자적인 행보를 취해 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동생이 결혼한 후 제수씨가 들어오고 나서는 동생이 변했고, 형제들과의 관계도 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그의 부인 또한 박 회장이 경영권은 동생인 박 부사장에게 넘긴다고 해도 소유권은 형제에게 동등하게 배분해주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부사장을 맡고 있는 동생도 부친과 형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형은 자신의 능력이 안 돼서 계열사를 맡게 된 것인데도 은연중에 자신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형수까지도 가세해서 집안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친은 자신에게 경영의 대부분을 맡기면서 사장 자리를 공석으로 둔 채 자신에게 몇 년간 부사장직을 맡기고 있어 대내외적으로 불편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친이 자신에게 사장 자리를 맡김으로 해서 승계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자신이 회사를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넘겨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편, 회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두 동생들은 형과 오빠들이 갈등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형제들이 회사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형제간 우애도 깊었고 가족이 화목했는데, 그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과연 형제들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염려했다. 두 동생들은 어떻게든 이 문제가 잘 해결돼 좋은 가족관계를 이어가기를 바랐다. 이들은 회사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형들보다는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가족관계의 회복을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와 같이 승계를 앞둔 가족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가족들 간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이 돼 문제를 바라본다면 문제 해결 방법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가족회의 열어 경영권 배분, 가족경영 갈등 줄여
필자는 가족 개개인을 만나서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고 난 후, 두 동생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족 전체가 모인 가족회의를 열었다. 가족회의에서 형제들은 다른 가족을 비판하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가족들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가족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박 회장 또한 자녀들의 의견을 듣고 가족의 미래 계획을 가족들과 함께 세우는 것에 동의했다.

가족들은 몇 차례 회의를 통해 몇 가지 주요한 의사결정을 했다. 박 회장이 창업한 모기업의 경영은 부사장인 둘째 동생이 맡고 자회사는 현재와 같이 형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의 지분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두 형제가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으로 했다. 단, 모기업의 경영에 관한 것은 동생에게 전적으로 맡기도록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동생들은 회사 지분을 받는 대신 박 회장이 자신의 개인 자산 중 일정 부분을 상속하기로 했다. 물론 금전적으로 따지면 두 동생은 두 형들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상속받게 되지만, 두 동생들은 부친이 만든 회사가 대를 이어 잘 유지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매년 공식적인 가족회의와 함께 자녀들을 포함해 전 가족이 모이는 행사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형제세대뿐만이 아니라 사촌세대들도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가업승계 계획에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서로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훨씬 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가족기업이 세대를 이어 가족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성공적이었던 가족기업들이 대를 잇는 데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창업자들 중에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열정과 헌신으로 기업을 일구고,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방식으로 일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지시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승계 계획을 세울 때도 가족이나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단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단독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갈등의 여지를 안고 있다.

미래를 책임질 사람은 결국 자신이 아닌 가족이다. 그러므로 오너경영자는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해외에서 성공적인 가족기업은 가족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이벤트와 모임, 가족회의 등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