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4th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베토벤의 음악. 그러나 어떤 연주가의 곡을 듣느냐에 따라 그 감동은 천차만별이다. 요즘 말로 베토벤과 환상의 ‘케미’를 보이는 명연주가들이 있으니, 그들의 곡을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베토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CLASSIC ODYSSEY] 명연주가들을 통해 수많은 베토벤을 만나다
베토벤에 대한 필자의 남다른 애정 강도는 이미 드러낸 바 있으나, 그를 깊이 사랑한 이들이 어디 필자뿐일까. 베토벤의 삶이 오롯이 투영된 음악들은 곧 베토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니, 그가 남긴 악보들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며 당시의 베토벤을 재현하고자 노력한 연주가들 또한 베토벤의 열혈 추종자들이 틀림없다.

굳이 추종자가 아니더라도, 모차르트와 더불어 베토벤은 고전음악을 전공하는 연주가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도전하는 이는 많으나 전문가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클래식 마니아들이 “이 사람의 연주는 꼭 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연주가들이 있어 소개한다. 베토벤의 음악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깊이 있는 연구와 해석으로 완성된 명연주가의 연주를 들으면 감동은 배가 될 테니.


베토벤과 피아노, 그 필연적 조합
한 곡 한 곡 혼을 불살라 작곡했던 터라 베토벤의 곡 중 그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게 없지만,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시리즈가 바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과 9곡의 교향곡이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명곡이라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도 그럴 것이 베토벤은 작곡가 이전에 피아니스트로 먼저 인정받고 유명세를 탔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20대 중반, 그는 이미 빈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피아니스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좀처럼 다작을 하지 않고, 어떤 경우엔 한 장르에 단 한 곡만 남겼을 정도였던 베토벤이 피아노 관련 곡을 많이 작곡했던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단지 곡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분명 차이가 있었다. 피아노가 베이스가 되는 바이올린 소나타에서조차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동급일 정도다. 피아노의 대가로 불리는 이들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한 두 곡 ‘비창’과 ‘월광’은 웬만한 대가들이 다들 거쳐갔으니 논할 필요가 없겠으나,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녹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시도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아무나 할 수는 없었던 것. 그중에서도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몇 있다.

먼저 1900년경 전성기를 누렸던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최초로 전곡 녹음한 그는 베토벤 연주로 유명해졌고, 마지막 녹음도 베토벤 소나타였을 정도로 베토벤 연주에 관한 권위자다. 표현에 과장이 없고 정석적인 연주가 특징인 슈나벨의 연주는 개인적으로도 깊은 호감을 갖고 있다. 1950년대에 사망했으니 실황을 볼 기회는 없었고 다만 아버님이 소장하고 있었던 슈나벨 음반을 통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처음 접한 필자의 소감은 ‘베토벤 곡도 이렇게 깨끗하게 칠 수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명료하고 깨끗한 연주는 모차르트의 곡에 쓰이는 설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연주 스타일이 짐작될 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던 이들이 독일계 피아니스트와 그 외의 피아니스트들로 나뉘는데, 전자의 대표 연주가는 빌헬름 바크하우스(Wilhelm Backhaus)다. 다이내믹하고 스케일이 크면서도 톤이 좀 어둡고 무거운 바크하우스의 연주는 만일 베토벤이 살아 있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정도로 ‘베토벤답다’ . 그게 가능했던 건 바크하우스가 베토벤에 대해 철학적 연구, 학자풍의 연구를 끊임없이 했던 베토벤 전문가였기 때문이었다.

바크하우스의 라이벌이었던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또한 베토벤 해석으로 아주 유명한 연주가다. 철학을 공부한 켐프의 연주에 대해 개인적으론 ‘너무나 정석적인 터치’라는 평이지만, 마니아들이 많다.

후자의 연주가를 논하자면, 러시아 피아니스트인 스뱌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와 에밀 길렐스(Emil Gilels)다. 다이내믹하면서도 어둡고 무겁지만, 바크하우스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바크하우스의 연주가 정교화된 다이내믹이라고 하면 리히터의 연주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라고나 할까.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연주하다 보니 중간에 실수도 많고 세련되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더 와닿는다.

또 한 명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으니 바로 캐나다 연주가 글렌 굴드(Glenn Gould)다. 그의 연주는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흥얼거리는 목소리까지 그대로 녹음된 것. 곡에 대한 해석 또한 남달라서 이른바 ‘중간’이 없다. 포르테와 피아니시모, 알레그로와 안단테가 ‘극단적’인데 바로 이런 독특함 때문에 굴드에게 열광하는 팬들이 엄청나다.


베토벤보다 더 베토벤을 잘 아는 사람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으니, 리히터와 마찬가지로 굴드도 결코 대중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앞에서 거론한 연주가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연주가들에게 공통된 이야기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연주가들에게 중요한 건 단지 작곡가가 어떤 의도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를 읽어내고 그에 가장 가깝게 연주하는 것뿐이다. 베토벤 자신조차 몰랐던 베토벤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연주가의 몫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또 하나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베토벤이 남긴 악보 하나가 수많은 연주가들에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악보가 표현할 수 있는 테크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악이 악보를 만들지 않고 제자를 두어 ‘전수’하는 방식을 택했던 건 그래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국악이 발전하지 못한 건 악보를 만들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만 두고 보더라도 같은 악보 하나에 너무나 다른 연주들이 숱하게 양산됐으니, 악보야말로 위대한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다시 돌아와, 피아노 소나타에 이어 9곡의 교향곡 역시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몇 번씩 전곡 녹음에 도전할 만큼 존재감이 남다르다. 사실 이·삼류 오케스트라가 가장 어려워하는 게 베토벤과, 베토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브람스의 곡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모차르트의 곡은 앙상블이 맞지 않더라도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지만, 베토벤의 곡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따라서 음악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베토벤의 곡을 들으면 일류 오케스트라의 연주인지 아닌지를 금방 판단할 수 있다.

지휘자 편에서 이미 거론했던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 카를 뵘, 카라얀 등 일류 지휘자들의 베토벤 교향곡은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그중에서도 카를 뵘의 1·2번,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의 3·5·7번 교향곡, 브루노 발터와 카를 뵘의 6번,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의 4·7번, 카라얀의 5·9번 등은 ‘강추’다.

이 밖에도 ‘피아노 콘체르토’ 5곡과 ‘바이올린 콘체르토’ 등 명곡, 명연주가들이 너무나 많지만 어찌 다 논할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같은 곡이라도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듣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연주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갈 수 있게 되니 말이다. 또 하나, 깊은 고뇌와 내면이 투영된 베토벤의 곡들은 오래 들으면 들을수록 계속 새로운 게 들린다는 점에서도 탐미(耽味)를 권한다.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