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수 대표의 ‘공간의 기쁨’

최철수 초이건축 대표는 그러니까 ‘해결사’다. 그것도 창조적인 해결사.

집짓기 딱 좋은 땅보다 이상하게도 척박한 환경이 주로 주어졌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거기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주변 자연과 어울리는 집을 만들어냈다. 자연을 해치는 건축이 아닌, 자연을 완성시키는 조형물로서의 건축, 최 대표의 지향점은 그랬다.
[BEYOND ARCHITECTURE] 집, 그렇게 자연이 되다
회색 도시의 성냥갑 아파트에서만 살아본 사람과 다양한 환경 속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살아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지은 집은 어떻게 다를까.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 보는 이들을 홀딱 빠지게 만드는 그림 속, 사진 속 멋진 집도 살아보지 않고서는 평하기 어렵다. 집이란 본디 조형미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철저히 삶을 기반으로 한 공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철수 초이건축 대표는 조형미를 추구한다. 그럴 수 있는 건 다양한 거주 공간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삶을 위한 기능적인 공간 구성은 그야말로 기본 중에 기본. 최 대표는 공간이 주는 기쁨에 주목했고, 그 기쁨의 실현은 집이 가진 아름다운 조형성, 내외부의 경계 없이 자연과 소통하는 집의 형태로 담겼다.

최 대표는 어릴 적부터 건축가를 꿈꿨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베트남, 일본, 스위스, 미국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던 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환경도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집들을 경험하며 놀았던 기억은 그에게 집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심어주었다.

“나라별로 단독주택의 형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주택 단지가 들어선 동네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어요. 아직까지 국내에선 단독주택 단지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있어요. 작은 땅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들은 주택이라기엔 어색하고 마치 또 다른 아파트 같은 느낌마저 주죠. 제가 해외에서 경험한 주택들은 녹지가 풍부하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집이었어요. 집 자체에 놀이 공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집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기에 좋은 환경이었죠.”

최 대표가 건축물에 가능한 오픈 스페이스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안에서도 밖의 자연과 소통되는 공간을 통해 자연과 어우러진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 누군가는 ‘건축은 예술이 아닌 삶’이라며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전통 건축물들이 그러했듯 공간의 소통성과 연결성을 중시한 건축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했는지를 상기해보면 최 대표의 방향성이 건축의 과거와 미래를 넘어 본질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의 미래니 과거니 하는 평들은 공간의 개념 등 건축의 작은 요소만 보기 때문에 나오는 말들이에요. 그보다 중요하면서도 더 스케일이 큰 개념은 마루와 지붕, 그리고 선처럼 건물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건축을 살리겠다는 식의 대단한 신념을 가진 건축가는 아니지만, 우리 전통 건축에 분명 좋은 요소가 많다고 봅니다. 서양 건축은 도시화되면서 외벽 위주로 올라가며 스케일이 커지고 있지만, 동양 건축은 마당과 지붕이 수평을 이루며 자연과 소통하고 있거든요. 그로 인해 공간은 실제보다 훨씬 더 넓어 보이는 효과까지 있죠. 제 건축에서 개방감과 함께 변하지 않는 절대적 요소인 ‘확장성’의 답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1999년 귀국, 초이건축을 오픈하고 선보인 대부분의 건축들은 이처럼 개방성과 확장성이라는 공식을 따르며 정적인 건축들 사이에서 생명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첫 결과물이었던 덕소주택을 비롯해 홍천주택, 판교주택 등 거주형 주택뿐만 아니라 청평 모닝레이크 요트하우스, 제주 서귀포 빌라 등 레저용 주택에 이르기까지 그의 건축들은 1년 365일 살아 움직이는 자연과 더불어 변화무쌍하게 달라졌다. 불변의 공간이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며 전혀 다른 색채를 띠니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풍성해졌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 결국 최 대표의 건축이 강한 개성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외부적 조건의 힘이 분명 있었지만, 환경의 좋고 나쁨을 떠나 최대치를 만들어내는 건 어디까지나 최 대표의 몫이었다.
[BEYOND ARCHITECTURE] 집, 그렇게 자연이 되다
극적 대지와 극적 매스의 만남, 덕소주택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하게도 최 대표에게는 일반적인 대지의 조건을 지닌 집보다는 극적인 환경이 주로 주어졌다. 다행인 건 그럴 때마다 도전 의식이 불타올랐다는 점이다. 독특한 지형과 배경이 주어질 때마다 그는 각각 다른 형태의 건축 방식과 기술을 통해 그 상황에 맞는 ‘해결안’을 제시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반적인 평지 조건이 많지 않아요. 경사지도 많은데 그런 조건을 잘 활용하는 건축을 짓는 게 중요하죠. 극적인 대지 여건이 주어질 때 저는 오히려 남들이 잘 못하는 상황에서 잘 해보겠다라는 의지가 생겨났던 것 같아요.(웃음)”

국내에 들어와 처음 작업했던 덕소주택부터가 그랬다. 당시 호텔을 경영했던 건축주는 한강에서 서핑을 즐길 정도로 자유롭고 남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소유하고 있었다. 건축에 관한 비전 또한 미래적이라 설계와 건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최 대표에게 일임하면서 당시 국내 주택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덕소주택이 들어선 약 991.74㎡의 대지는 낮은 쪽이 진입도로에 면하고 언덕 위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사지였지만, 최 대표의 첫인상은 감탄 그 자체였다. 땅 자체가 극적이니 건축 또한 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그는 성격이 전혀 다른 대지 조건을 따라 두 개의 대조적인 기능과 공간 및 건물 매스를 형성했다. 연면적 396.69㎡의 2.5층으로 된 공간 중 진입로에 접한 북향 공간을 입구와 통로, 복도, 화장실, 자녀 침실 등으로 구성했고, 한강이 보이는 언덕 위 남향 공간은 건축주의 침실과 함께 거실과 식당, 부엌, 주 계단 등 주로 공적인 공간으로 구성해 성격을 나눴다. 특히 남향의 매스는 외형 자체를 하늘로 비상하는 날개 형태로 하면서 유리 벽면으로 마감해 마치 한강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것 같은 환상의 뷰를 만들어냈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공간 안에서도 역동적인 스케일은 그대로 드러났다. 거실 공간을 가로질러 완만하게 연결된 계단을 통해 1, 2층이 연결되면서 자연스레 층과 공간을 구획하고 더불어 깊이감까지 확보했다. 공간의 맨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공간이 뻥 뚫려 있어 다이내믹한 체험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실제 공간감보다 확장된 느낌을 갖게 한다. 북측 면도 높은 창을 연속적으로 설치해 이 집이 가진 개방감을 더욱 극대화했다.

“건축주의 주말 주택이었던 덕소주택은 역동적이지만 느린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포인트였어요. 커브 형태로 돼 있는 계단도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고, 곡선과 직선 등 두 개의 단으로 된 지붕도 편안한 형태로 펼쳐져 여유로운 느낌을 주었어요. 남쪽은 벽이 없이 유리로 뚫려 있고 커튼을 통해 차단할 수 있게 했는데, 유리벽 넘어 잔잔히 흘러가는 한강 또한 평온함 그 자체죠.”
[BEYOND ARCHITECTURE] 집, 그렇게 자연이 되다
물과 하늘, 자연과 맞닿은 움직이는 건축, 청평주택
극적인 대지와 극적인 매스의 환상적 조합은 청평 모닝레이크 요트하우스에서도 드러난다. 북한강변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에 위치한 청평주택은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활용 중이며, 수직과 수평으로 된 네 개의 콘크리트 매스가 서로 다른 축을 이룬 채 만나고 있어 일명 ‘벡터 하우스’라 불린다. 마치 강변에 위치한 바람개비처럼 보이는 이 주택은 바람이 불면 실제로 움직일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대지를 처음 보고 너무 재밌었어요. 심한 경사지인 데다 또 폭이 좁았거든요. 물과 도로 사이의 폭이 좁다 보니 집은 서 있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건축주 또한 위에서 아래까지 물과 지상을 연결하는 집을 지어달라고 요청했어요. 수면에서 떠 있는 집이 아니라 수면과 맞닿은 집을 자연스레 세우면서 동선까지 잘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거기다 북향이라 매스를 아래로 파고 브리지로 연결하면서 창을 많이 내 햇빛이 들어오도록 했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실험적인 이 공간은 그러니까 건축주와 건축가의 환상 ‘케미’가 이뤄진 덕분이었다. 두 명의 동업자인 건축주들은 각각 호텔 관련업과 외국 회사 지사장으로 지금 당장은 게스트하우스로 시작하지만, 훗날에는 자신들의 거처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특히 호텔 관련업을 하는 건축주는 고향이 청평으로 누구보다 대지가 가진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었고, 은퇴 후의 삶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온 터였다.

“대지가 가진 잠재력을 건축주가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국내에서는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는 주택이 별로 없지만 해외의 고급주택들을 보면 집에서 바로 요트를 타고 나가도록 돼 있는 곳이 많잖아요. 청평주택이 그런 조건으로 아주 탁월한 곳이죠.”

1652.89㎡의 대지 면적에 들어선 495.87㎡의 주택은 외형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 또한 상당히 실험적이다. 북한강 쪽을 바라보는 벽을 모두 창으로 내 공간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오는 자연경관은 말할 것도 없고, 공간의 구획 자체가 일반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가로축과 세로축을 각각 사적인 공간과 개방된 공적인 공간으로 성격을 나누면서, 건물의 중심엔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끝 쪽으로는 침실 등 사적인 공간을 배치해 동선을 효율적으로 했다. 경사진 건물의 특성상 현관은 4층에 위치해 있는데, 현관으로 들어와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이동하면서 느껴지는 깊이감과 층고, 개방감도 비일상적 공간이 주는 낯설음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사실 이곳은 뷰 자체만으로 그냥 그림이에요. 강 건너편과 거리가 있어서 커튼 없이도 사생활이 철저히 보장되죠. 외관과 내부 공간이 화려한 면이 있어서 재료는 아주 심플하게 선택했어요.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죠. 다만 조경 등이 완벽하지 않아서 아쉬운 면도 있지만, 이 조건에서 이 정도의 건축물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인물) 기자, 남궁선·초이건축 제공(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