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마지막 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미술관을 지어주시오.” 1943년 6월, 솔로몬 R.구겐하임은 자신이 수집한 그림들을 전시할 공간을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게 의뢰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창 뮤지엄이 신설되거나 증축되던 때였고, 이들의 대다수가 네모난 상자 모양이었다. 라이트는 여기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창한 유기적 건축 원리를 적용한 달팽이 모양의 미술관을 짓게 된다. 이 파격적인 외형의 건물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고 인류 최초의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뒤편에는 1992년에 건축된 증축 건물(10층)이 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뒤편에는 1992년에 건축된 증축 건물(10층)이 있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소개하기에 앞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와 더불어 세계 3대 건축 거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엄청난 열정의 소유자였던 그는 91세까지 살았으나, 안타깝게 1959년 구겐하임 미술관 완공을 6개월 앞두고 눈을 감았다.

라이트는 자연에서 유추된 형태들이 디자인의 기본이 된다는 개념의 ‘유기적인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주창했다. 간단치 않은 개념인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프만 주택(낙수장·water fall)을 보면 이해가 쉽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베어린에 있는 카프만 씨의 집은 폭포 위에다 집을 지은 이색 건축물이다.

“당신의 주택은 그 장소로부터 쉽게 확장될 수 있다. 그곳의 자연이 근사하다면, 그곳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 하도록 하게 하라.”
미술관 내부의 독특한 나선형 원통 구조를 잘 활용한 전시 `아트트랩`, 한국의 건축가 조민석 작품이다.
미술관 내부의 독특한 나선형 원통 구조를 잘 활용한 전시 `아트트랩`, 한국의 건축가 조민석 작품이다.
라이트에게 유기적 건축은 곧 시간과 장소, 인간에게 모두 유익한 설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유기적인 건축’ 개념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우선, 이 미술관은 센트럴 파크 바로 옆인 뉴욕 5번가에 자리를 잡았다.

6개 층의 원형 건물은 흡사 달팽이를 떠올리게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실내 동선은 ‘지구라트(Ziggurat)’라고 하는 바빌론의 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공간의 연속성과 내외부의 유기성이 그대로 반영됐다.

필자는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았다. 당시 백남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도처에서 위대한 건축가의 천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술관의 낮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뻥 뚫린 대공간이 열려 놀라운 감동을 자아낸다.

미술관의 동선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인 6층으로 올라가 나선형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서 미술품을 관람한다. 층의 구분이 없어 방문객들은 동선의 교차 없이 경사로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전 층을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고, 중앙의 개방된 아트리움을 통해 몇 개 층을 같이 볼 수도 있다. 막혀 있는 공간에서 한 작품만 보는 것과는 스케일부터 다르다. 이동하는 램프(Ramp)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미술품을 전시하는 기능을 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인 카프만 주택(낙수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인 카프만 주택(낙수장).
6개 층이 개방된 중앙의 대공간은 하늘을 향해 열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아트리움을 통해 자연채광을 받아들인 밝은 내부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렇듯 ‘안팎으로’ 독특한 미술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 미술관에서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것이 ‘미술품’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러나 그 당시엔 설계가 너무나도 파격적이기에 건립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많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립 전부터 시 당국은 물론이고 주민들이나 아티스트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바닥에 3도 정도의 경사가 있으니 안정감이 없어 관람이 불편할 것이라는 것과 전시벽 상부에서 들어오는 역광은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21명의 아티스트들은 연판장을 돌리면서 “우리는 이 미술관이 완공되더라도 거기에 전시를 못 하겠다”고 선언했다. 준공 직후 뉴욕타임스는 “크고 하얀 아이스크림이 탄생했다”는 제목의 기사로 구겐하임 박물관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라이트는 시 당국자와 건립 관계자들과 16년간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 같은 역경을 딛고, 미술관은 1959년 완공되자마자 뉴욕의 랜드마크로 우뚝 서고 일약 세계적인 건축물로 자리매김한다. 전 세계인들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던 건축 거장의 위대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1990년 8월 뉴욕시 공식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1992년에 증축 건물이 완료됐고 지금도 한 해에 120만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2011년에는 우리의 자랑인 이우환의 특별전이 전관에서 열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작, ‘유기적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다
필자는 그동안 한경 머니에 12회에 걸쳐 건축 기행을 연재하면서 전 세계 유명 건축물을 매개체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직접 내발로 가보고 익히 알고 있던 건축물이었지만, 자료를 뒤지고 꼼꼼하게 공부하다 보니 건축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위대한 건축물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는 현재 한미글로벌에서 하고 있는 건설사업관리(CM) 사업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하나의 프로젝트를 보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견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건축물과 깊게 연관이 돼 있다. ‘집’에서 살고 ‘사무실’에서 일하며 ‘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러하기에 일반인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건축물을 보는 성숙된 눈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다뤘던 건축물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건축가(Architect)와 디자이너들을 아껴주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해줄 때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다. 빼어난 건축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의 품격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소장품 중에서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예술품이 바로 건물이라 했던가.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건축물이 많이 탄생하기를 고대하면서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그동안 건축 기행을 사랑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종훈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