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중을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유쾌하다’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3초에 한 번씩 터지는 호탕한 웃음, 웃을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장난기 가득한 눈매, 자만하지 않는 폭넓은 지식, 자신의 실수를 ‘흑역사’라며 웃어넘기는 낙천성, 상대방을 배려하는 세련된 거절법 때문일 것이다. 그의 그림처럼 생동감 넘치는 색감과 다양한 에너지를 품은 남자, 팝아티스트 김태중을 경기도 장흥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Artist] 김태중 “삼삼한 영혼에 불을 당겨라”
기술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다섯 살 때부터 프라모델을 만지기 시작한 소년은 유독 ‘기계’에 집착했다. 연합고사를 치고 난 중학교 3학년, 갑자기 번개를 맞은 듯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히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미술반에 들어갔고, 두 번 다시 하기 싫은 입시미술의 지옥을 거쳐 홍익대 판화과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은 치열했다. 무조건적인 비판, 밑도 끝도 없는 비판이 이어지는 세계 안에서 소년은 단단히 여물어 갔다.

1975년생인 김태중은 IMF 세대다. 그가 데뷔하던 2001년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모두가 허덕이던 때였다. 아버지의 사업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업작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컸다. ‘대학 생활 내내 열심히 해 왔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자. 그리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과감히 접자’ 그렇게 마음속으로 걸었던 일생일대의 도박은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렸다.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김태중’을 찾았다. 인터뷰가 쉼 없이 이어졌고, 한 달에 네댓 개씩 전시를 열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미술 시장이 한창 호황이던 2005년, 그가 돌연 화단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쉬는 동안’ 그는 자동차 마니아, 클럽 디제이(DJ), 사회인 야구단 리그 감독 등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자신이 푹 빠져 있었던 세계들을 또다시 그만의 회화 언어로 우리 앞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그는 항상 무언가에 푹 빠져 있었고, 새로운 것에 탐닉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대중이 뭐라고 하든, 그는 그가 진짜 하고 싶고, 또 걷고 싶었던 길을 꾸준히 걸어왔을 뿐이다.
[Artist] 김태중 “삼삼한 영혼에 불을 당겨라”
‘talking figure­Andy Warhol’, 100×100cm, 2015년

“지금은 ‘소리’에 푹 빠져 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팝아티스트, 설치미술가, 화가…. ‘김태중’이란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이 굉장히 많더군요. 본인은 어떻게 불리길 원하세요?
“아티스트가 좋죠. 제가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걸(아티스트) 하고 싶으니까. ‘팝아티스트’라는 말은 좀 계면쩍어요. 제가 하는 것들이 ‘팝’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는 대중의 소비문화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한 달에 테마가 다른 전시회를 4~5회나 했으면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말도 못 하죠. 저는 나름대로 전시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는데, 그 텀이 워낙 짧으니까 대중이 ‘김태중은 만날 똑같은 것만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도 신이 나서 작업하긴 하지만, 텀이 짧으면 변화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겠죠.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변화는 익혀 뒀다 한번에 보여주는 변화와는 다르잖아요. 스스로 검증할 시간도 부족하고. 그러니까 자꾸 성질이 나더라고요. 하하. 그래? 그럼 나는 쉴래!”

대략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쉬었던’ 거죠. 뭘 하면서 쉬었나요?
“자동차에 푹 빠졌죠. 진짜 ‘미쳤다’고 할 정도로 자동차 마니아였어요. 한 16대는 타봤을 거예요.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정보를 모으다가, 나중에는 아예 차를 1대 만들었어요. 이베이에서 엔진과 부속들을 사고, 해외 포럼을 뒤져서 자료도 모으고…. 옛날 BMW 3시리즈를 튜닝해서 빈티지 경주용 차를 만들었죠. 워낙 기계를 좋아해서 라디오나 디제잉에 심취하기도 했어요. 그다음엔 야구에 미쳤죠. 한 5~6년째 미쳐 있는데, 사회인 야구단 ‘우리야구’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투수만 빼고 모든 포지션을 하고 있어요. 지난해 리그에서 무려 타율왕도 했습니다.”

엄청 신기하네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것에 푹 빠져 있나요?
“요즘은 스피커를 만들어요. ‘평판 스피커’도 직접 만들었어요. 보통 스피커는 사각이나 원통, 원뿔 모양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평판 스피커는 앞에 있는 배플(baffle)에 따라 소리의 크기나 특색이 정해지지요. 판이 커질수록 소리도 커지고요. 그래서 요즘은 평판 스피커를 응용해 ‘소리가 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전시회에서 ‘소리가 나는 작업’들을 볼 수 있겠군요.
“벌써 내년 4월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평판은 옛날 극장에서 많이 쓰이던 방식이에요. 인클루저 스피커가 통 안에서 인위적으로 소리를 울린다면, 평판 스피커는 훨씬 생생한 소리를 내죠. 그래서 연주가 좋은 재즈곡, 보컬이 잘 구현이 된 곡들을 골라서 같이 들려줄 생각이에요.”

좀 더 순수한 소리라고 볼 수 있겠네요. ‘순수한 것’을 좋아하시나요?
“네. 인위적인 것 말고 원시적인 것, 근원적인 것을 좋아해요. ‘왜 내가 이런 걸 좋아할까’하고 생각해봤지만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 대신 어떤 상징으로 전달할 수는 있겠더라고요. 원시시대에는 종교, 미술, 정치, 음악 등이 다 하나였잖아요. 저는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대의 퍼포밍과 에너지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옛날부터 이어져 온 상징들이니 질리지도 않죠.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원시적인 스타일이 애니메이션적이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팝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Artist] 김태중 “삼삼한 영혼에 불을 당겨라”
‘from my sweet dream’, 110×97cm, 2014년

“그림은 말하는 것처럼 그려야 한다”
“관람객이 나의 작품에 필요 이상으로 심오한 해석과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당신 작업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곤란해요. 저는 예술이 가진 매력과 에너지를 작품마다 다르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니까요. 사실 ‘예술’이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니까 계속 하는 거예요. 예전 제 작업들, 그리고 지금 작업들도 나중 작업을 위한 과정일 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좋아요. (웃음) 근데 그건 쉽게 알아볼 소스를 제가 의도적으로 주지 않았던 거예요. 좀 더 깊이 들어와라. 그리고 내 스타일대로 느껴봐라.”

일부러 안 가르쳐주셨다고요?
“네,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재밌잖아요. 제가 뭔가 규정지어서 이야기해 버리면,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제한되잖아요. 저 안에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생각들이 나올 수 있는데. 설명이 많으면 재미가 없어지죠. 그래서 평론가들이 물어보셔도 저는 최근의 관심사나 사용한 테크닉에 대해서만 오픈하지요.”

평소 “그리는 일은 말하는 것처럼 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무슨 뜻인가요?
“음, 우리가 말을 할 때 다 정해 놓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예요. 운동선수가 훈련을 아주 열심히 하면, 본 경기에서 무념무상이 돼요. 공을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이죠. ‘뭘 그릴까’ 이렇게 고민하면 안 돼요. 저는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가요.”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발화를 할 때도 생각을 먼저 하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 작품은 뒤에 엑스(X)자들을 먼저 그렸어요. 이 옆에 있는 물감 흘린 것 같은 자국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이렇게 뭔가를 먼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옆에 뭔가가 새로 생겨나는 식이죠. 스케치를 전혀 하지 않고.”

굉장히 본능적으로 작업을 하시네요.
“옛날부터 해 왔던 훈련들, 생각들을 기반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작가도 말하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말을 배워 온 것들이 모두 훈련이고 시행착오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도 계속 훈련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셈이죠. 그래서 컬래버레이션(협업)도 저한테 좋은 훈련이 돼요.”
[Artist] 김태중 “삼삼한 영혼에 불을 당겨라”
‘the beauty of soul’, 60×60cm, 2015년


그가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까닭
그러고 보니 컬래버레이션을 무척 활발하게 하고 계시네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안 힘들어요. 컬래버레이션은 컬래버레이션이니까. 상대방이 원하는 게 있으면, 제 스타일로 표현을 해요. 그리고 처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명히 전달하죠. 의견이 부딪치면 작업으로 설득하면 돼요. 서로 도를 넘지 않으면 얼굴 붉힐 일도 없죠.”

컬래버레이션에 안 좋은 추억을 가진 작가들이 많아서요.
“글쎄요. 컬래버레이션의 경우 서로의 니즈가 분명해요. ‘나는 당신의 작업물을 통해 이런 시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분명한데, 그걸 굳이 외면하면서 제 고집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작가도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통해 발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저는 장흥이 이렇게 ‘자연친화적’일 줄 몰랐어요. 작업에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환경이네요.
“그렇죠? 그래도 시골에서 도시로 잠깐 나갔다 오면 엄청 뿌듯해요. 열심히 일한 것 같아서.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막 떠오르고. (웃음)”

계속 도시에 있었을 때는요?
“항상 지쳐 있고, 항상 바쁘고, 항상 재촉 받느라 그런 느낌은 잘 몰랐죠. 확실히 리프레시 되는 느낌이 있긴 해요, 전원생활이.”

‘삼삼한 영혼에 불을 당겨라’라는 사인을 아직도 즐겨 하시나요?
“네. 아까 제 작업에 ‘상징’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3이라는 숫자는 영원, 사랑, 완전함 등을 나타내요. 2는 처음과 끝밖에 없지만, 3으로 넘어가면서 중간이 생겨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이 가능해지죠.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3이 셋이나 있는 9는 완전 끝내주죠. 그래서 삼삼한 영혼, 불이 삶과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니까. 예술도 결국 그런 거잖아요.”

내년 4월 전시 외에도 준비하는 게 있으세요?
“컬러링북을 만들 거예요. 소위 ‘멍 때린다’는 순간에 사실 뇌가 가장 바쁘게 돌아가고 있대요. 그리고 그 ‘멍 때리는’ 과정이 제가 작업하는 방식과 굉장히 비슷해요. 제가 가진 회화언어와 테크닉이 다른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다르게 보일 뿐이죠. 컬러링북은 그걸 좀 더 쉽게, 같이 동참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거예요. 단, 지금까지의 컬러링북이 사람을 ‘색칠하는 기계’로 만들었다면 저는 약간의 에세이를 덧붙여볼 생각이에요.”
[Artist] 김태중 “삼삼한 영혼에 불을 당겨라”
‘sweet super soul’, 42×34×34cm, 2013년



이현화 기자 leehh@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