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두려운 ‘말(言)’

말이 때론 칼보다 더 무섭고 치명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도 말이 지닌 ‘독성’은 증명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부정적인 말들이 쌓이면 건강을 잃고 생명마저 위협받을 수 있으니, 이제 말 한 마디를 건네기 전에도 먼저 생각해보시길. 타인은 물론 나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HEALING MESSAGE] 죽이는 말 vs 살리는 말
말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뺏을 수 있을까. 의학 학술지로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암’보다 무서운 것이 ‘말’임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가 몇 해 전 발표됐다. 암이란 사실을 통보 받은 사람에게서,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첫 일주일간, 자살 위험도는 일반인에 비해 12.6배나 증가했고 심장 문제로 인한 사망 위험도도 5.6배나 증가한 것이다.

자살이 스스로 심장을 멈추게 한 것이라면 심장마비는 심장이 알아서 스스로 멈춘 것인데, 이 또한 생물학적 자살이라 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스스로 생명 스위치가 꺼져 버린 것인데 암이 진행돼 심장이 멈춘 것이 아니라 “당신은 암이다”라는 말에 스위치가 꺼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암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가’ 하는 억울한 감정과 분노가 강하게 일어난다. 이 억울한 감정과 분노가 암 이상으로 우리 마음과 몸에 해를 주어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말과 소통이 많아지게 되면 신체적 건강까지 잃을 수 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말
반면에 긍정적인 칭찬은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 진료실에서 여자 어르신들께 “너무 고와지셨다”고 하면 우울했던 분들도 활짝 얼굴이 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로는 처방한 항우울제보다 기분을 업(up)시키는 데 칭찬 한 마디가 더 큰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칭찬을 할 때 내 표정이 어떻게 되는가 한 번 살펴보자. 상대방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려고 하는 ‘아부성’ 칭찬인 것을 알아도 우리는 상대방이 칭찬해 주면 내가 손 쓸 겨를도 없이 표정이 환하게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칭찬을 듣고 해석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칭찬을 들으면 거의 자동으로 이미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뇌의 감성 시스템은 칭찬에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한다. 부정적인 말에 부정적인 감정 반응이 거의 자동으로 빠르게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최근 수 개월간 가장 핫한 사람은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행기도 일반석을 타는 검소한 모습,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마음 아픈 이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하나 더 필자가 놀라웠던 것은 그분의 체력이었다. 1936년생이시니 이제 곧 팔순이 되는 연세신데 그 강도 높은 일정을 지탱해주는 그분의 심장이 대단하다 여겨졌다. 성공적인 노화의 모델이라 여겨졌는데, 교황께서 방문 기간 중에 가장 많이 쓴 단어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답이 보였다. 바로 ‘사랑’이란 말로 무려 166회에 달했다. 이 사랑의 마음과 튼튼한 심장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최근 미국 미시간대에서 시행한 연구 결과에서 힌트가 보인다. 이웃 사랑을 하면 심장이 튼튼해진다는 결과였다. 연구팀은 미국에서 50세 이상의 튼튼한 심장을 가진 주민 5276명을 대상으로 이웃 사랑 지수, 즉 이웃과 얼마나 끈끈하게 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평가했다. 지역 사회에 얼마나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지, 곤란한 사정이 있을 때 서로 이웃에 의존할 수 있는지, 이웃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이웃에게 친밀감을 느끼는지 등을 1점에서 9점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4년 후 연구에 참여한 주민들의 심장혈관 건강 상태를 확인해봤다. 결과는 앞에서 측정한 이웃 사랑 지수가 1점 오를 때마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서 심장 세포가 죽게 되는 위험한 병, 심근경색의 발병 위험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점을 준 사람에 비해 7점을 준 사람들은 심근경색의 발병 위험이 67%나 낮았다고 한다. 이 차이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심근경색 발병 위험의 차이만큼 큰 수치다. 이웃과 따뜻하게 연결돼 있지 않으면 비흡연자도 담배를 피우는 위험을 가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 하루 바빠서 운동을 하지 못했다면 주변 사람과 따뜻한 말, 긍정적인 칭찬을 나누면 된다. 운동만큼 심장 건강을 지켜준다.


잔소리보다 효과적인 설득법
우리가 따뜻한 말, 긍정적인 칭찬에 강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람의 가장 큰 욕구가 상대방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칭찬은 내가 상대방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됐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에겐 칭찬이 인색해지기 쉽다. 가깝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가깝기 때문에 칭찬보단 걱정하는 잔소리가 더 쉽게 입에서 나온다.

‘잔소리’는 듣는 사람의 저항이 담긴 표현이지만, 하는 사람에겐 소중한 조언이고 설득이다. 이 간격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의 이중성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사랑을 받고 싶으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너무 들어와 내 자유를 속박한다고 느끼면 싫기 때문이다. 반대되는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제일 술이 당길 때가 아내가 술 먹지 말라고 걱정해줄 때라고 하니 청개구리 심리는 인간의 기본적 심리 반응이다.

이중적인 마음에서 생기는 저항을 잘 다루며 설득하는 기술로 반영적 경청(reflective listening)이 있다. ‘반영’은 상대방이 주는 이미지를 받아 되돌려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되돌려줄 때 내 속성이 살짝 첨가된다. 일반 경청이 수동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면 반영적 경청은 능동적인 감성 소통 방법이다. 반영적 경청은 열린 질문과 짝이 돼 이루어지게 된다. “아들, 공부 했어, 안 했어.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돼요. 엄마 말이 틀린지 말 좀 해봐.” 여기엔 질문이 있지만 닫힌 질문이고 강한 권유이기에 저항이 증폭된다. 반면 “아들, 요즘 공부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열린 질문을 하면 지시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묻는 것이기에 저항이 적게 생기고 속 얘기를 하게 된다.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이야기에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살짝 얻는 것이 반영적 경청이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픈데 집중이 잘 안 된다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루에 10분씩이라도 사색하며 걷기를 하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색하며 걷기’라는 엄마의 권유가 들어가 있으나 아들 입장에선 자신의 의견에 살짝 보태져 오는 것이어서 남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거부반응, 저항이 생기지 않는다. 내 스스로 행동 변화를 한 것이라 느껴지는 것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