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연방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국방 및 외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자치권을 갖고 있는 국가다. 몇몇 선진기술 산업에선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 예로 현대의학 발전에서 스코틀랜드를 빼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획기적인 발명과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낸 나라로 유명하다. 또한 고갈돼 가는 화석원료의 대체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장의 방한도 이런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우리나라 중공업 기술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스코틀랜드는 비옥하지 않은 땅과 언제나 쌀쌀한 기온에 비바람이 자주 몰아치는 좋지 않은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소득 수준 4만 달러의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다. 스코틀랜드의 성장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는 자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스스로 스코틀랜드를 ‘World’s Best Small Country’라고 부른다. 회사 동료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베스트 국가란 우리가 도달해야 될 목표다. 현재 교육 및 복지 수준은 영연방 중에선 선두권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간 정도에 속하고 있어 아직까진 어느 정도 격차가 있다. 하지만 향후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베스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믿고 있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수준을 바로 알고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은 곧 그 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배가하는 원동력이 된다.

장인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스코틀랜드의 큰 힘이다. 필자가 일하는 회사엔 다양한 증류소들이 있는데 그중 정통 위스키인 싱글몰트를 만드는 증류소에 가면 40년 이상 한 가지 일만 해온 기술 장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까이서 얘기해 보면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전통 산업에서 일하며 이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자부심과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선 자신이 최고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또한 2대에 걸쳐 같은 일을 하거나 자식도 같은 분야에 함께 일한다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자신감,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의지, 장인을 우대하고 인정하는 사회 인식 등이 지금의 스코틀랜드 전통 산업을 세계적으로 육성시키면서도 첨단 산업의 선두국가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압축 성장을 통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수많은 전통 산업이 고비용 비효율 산업이란 인식하에 고사됐으며,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전통 기법들이 사라지거나 사장(死藏)되고 있다. 즉 전통 장인들의 맥이 여러 산업에서 끊겼거나, 수백 년 걸쳐 내려오던 전통 장인정신이 현대 산업에는 제대로 접목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방한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CEO)인 패트릭 토마의 장인에 대한 견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을 중시하는 에르메스 사람들의 정신이 오늘날 에르메스를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 브랜드도 명품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너무 미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과거의 훌륭한 장인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장인정신이 다시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많은 사람이 과거 전통에 대한 역사와 정신을 체험하면서 그 기간을 단축시켰으면 한다.”
[CEO칼럼] 스코틀랜드의 장인정신과 시사점
국가와 제품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선조들이 이루어낸 전통을 중시하고 장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온고지신의 정신이 간절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박준호 _ 윌리엄그랜트 앤선즈코리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