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돈은 없지만 자신과 뜻을 함께할 동료 예술가 친구들과 작업할 수 있는 작업실을 만들 꿈을 가지고 아를로 향했고 친구인 고갱에게 아를에 와서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여러 번 편지도 보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일까.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오르세 미술관전’이 열리면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회에는 연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으며, 전시회 타이틀은 아예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으로 붙여졌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 스스로도 본인이 사후에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흐는 평생 가난했으며, 친구였던 고갱과 싸운 후 결별하고,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도 갔었고, 끝내 들판에서 자살하는 불운한 인생을 살다갔다. 문득 고흐의 팬으로서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바로 남프랑스 아를(Arles)에서 살았을 때가 아닌가 한다. 이 시기 이곳에서 그는 노란 집의 2층에 세를 얻어 그 꿈의 공간을 마련한다.

<고흐의 방>(The bedroom), 1888년,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
고흐의 방(The bedroom), 1888년,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
고흐의 방(The bedroom), 1888년,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
고흐는 아를에 사는 동안 <노란 집>에 세를 들었다.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호텔비가 너무 비싸서 더 이상 호텔에서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볕이 잘 들고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2층 방을 침실로 썼는데 그 방이 바로 <고흐의 방>이다.

사실 처음에 들어갈 때는 돈이 없어서 침대도 들여놓지 못했다고 한다. 침대도 없이 맨바닥에서 잠을 잤지만 이 집에 사는 반년 동안 그는 일생 중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 대상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아를의 노파>(An old woman of Arles), 1888년,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

고흐는 늘 전문적인 초상화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모델을 살 돈이 없어 주로 자화상으로 연습을 하곤 했다. 아를에 머물면서 만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그는 인물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그림에 듬뿍 쏟아 넣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고흐가 살던 노란 집 1층에 있던 카페 ‘드 라 가르’를 운영하던 여주인 지누 부인이다. 그림 <노란 집>을 자세히 보면 1층 왼쪽 입구에 카페 차양이 있다. 고흐는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는데, 물론 그림 속 부인은 젊고 아름다운 미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쭈글쭈글하고 거친 얼굴과 주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부드러워 보인다. 또한 세월의 연륜과 내면에서 오는 기품도 느껴진다. 그녀가 웃고 있거나 아름답지 않은데도 그림에서 그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고흐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의 모델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매력이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닐 뿐”이라고 말했다. 즉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 역시 매력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를의 노파>에서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아를의 전통적인 민속의상이고 머리에는 검정 리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마르셀 룰랭의 초상>(Portrait of Marcelle Roulin),1888년,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

초록색을 배경으로 그려진 귀여운 아기. 포동포동한 볼 살과 팔뚝, 손등, 그림 속 아기는 무척 사랑스럽다. 그냥 한눈에 봐도 고흐가 이 아기에게 얼마나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마르셀 룰랭의 초상> 속 아기는 고흐가 아를에 사는 동안 각별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 우체부 조셉 룰랭의 아들이다. 룰랭은 정확히 말하면 우체부는 아니었고 우체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흐는 룰랭 가족들을 모델로 많은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 그림은 그가 그린 초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고흐가 이 그림을 동생 테오의 부인인 요안나에게 보냈던 것만 봐도 그가 이 그림에 애정을 쏟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요안나는 임신 중이었으며 곧 고흐의 조카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요안나는 이 그림을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고흐에게 편지로 곧 태어날 자신의 아기를 위해 이런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또한 이 그림을 식탁의 자기 자리에서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두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그림들은 모두 같은 연도인 1888년에 그려졌다. 고흐의 걸작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가 아를에 머무르던 초기, 이 시기의 그림들에 필자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강렬한 예술혼을 불태웠던 위대한 화가의 삶. 그러나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는 그의 삶에 대해 가장 순수하고 행복하게 그림을 그렸던 시기가 이때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을 찾는다면 고흐의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며 그의 인생과 행복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고흐의 별밤 속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들과 론 강의 서정적인 풍경을 보면서 이 시기 적어도 고흐는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필자 역시 그의 그림을 보며 한동안 마음의 위안과 잔잔한 평화를 얻었던 것은 물론이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네이버 블로그‘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