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는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문을 여는 이 간이식당을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메뉴는 없다. 마스터가 사람들의 주문을 받고 되도록 그와 비슷하게 있는 재료로 만들어준다. 이 작은 식당에는 늘 뭔가 사연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음식으로 고독을 달래고 위로를 얻는다.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밤늦게 문을 연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허기는 단순히 배가 고픈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빵가게 재습격> 속 주인공의 참을 수 없는 공복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외로움은 허기를 부르고, 허기를 해소하면서 고독은 잠시 물러나는 듯하다. 또다시 배고픈 밤이 찾아오는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이다. 도시의 외로움은 밤이 되면 전깃불 아래 더욱 빛나게 마련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드워드 호퍼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내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그들의 외로움과 허무함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드워드 호퍼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내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그들의 외로움과 허무함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1942년,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깊은 밤, 인적이 끊긴 도시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을 만난다. 간이식당 안의 형광등 불빛은 대낮보다 더욱 환하고 통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혼자, 혹은 같이 앉아 있다. 모자를 눌러 쓴 남자도,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도 도시의 전형적인 고독과 욕망을 대변한다. 그들은 바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불이 켜진 이곳을 찾아와 허기를 달랜다. 간이식당은 고립된 그들의 상실감을 보여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내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그들의 외로움과 허무함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일반적인 도시의 풍경이 담겨 있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은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같다는 동질감을 갖게 한다. 혼자 앉은 남자의 등에 드리워진 외로움, 불 꺼진 거리의 적막함, 비어있는 의자들의 상실감, 그리고 너무나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처럼 내 마음 속 진심을 들킨 듯한 두려움까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도시의 속마음을 그대로 껴안은 채 낮보다 더욱 환한 그곳에 앉아 있다.
<간이식당>모자와 안경을 쓰고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와 바깥의 하반신만 드러낸 매춘부는 도시의 익명성을 대변한다.
<간이식당>모자와 안경을 쓰고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와 바깥의 하반신만 드러낸 매춘부는 도시의 익명성을 대변한다.
모자와 안경을 쓰고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와 바깥의 하반신만 드러낸 매춘부는 도시의 익명성을 대변한다.">
에드워드 버라(Edward Burra), <간이식당> (Snack bar), 1930년, 영국 런던 테이트브리튼갤러리 소장

그런가 하면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호퍼의 그림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묘사된 그림도 있다. 에드워드 버라의 <간이식당>은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상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바에 앉은 여인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마시며 바깥을 흘깃거린다. 그녀의 짙은 화장과 화려한 차림새는 바깥 풍경과 연결돼 보는 이들에게 그녀의 직업을 암시해준다.

가게 안쪽에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환하게 켜진 전구는 지금이 낮이 아니라 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낮보다 더욱 밝아 오히려 이질감을 주는 이 공간은 커다란 전구가 마치 연극무대의 조명처럼 느껴진다. 간이식당의 문 바깥쪽은 큰 전구에 시야가 가려져 한 여인의 하반신만 보인다. 그리고 그녀 앞에 서 있는 남자는 그녀의 하반신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전구에 가려진 이 익명의 여인은 매춘부로 그녀의 고객과 흥정하는 중이며 바에 앉은 여인은 아마도 그녀의 동료일 것이다.

짙은 화장으로 자신을 감추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여인. 바 안쪽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바텐더는 햄을 썰고 있다. 자신의 앞에 앉은 여자를 보는 남자의 눈에도 성적인 욕망이 엿보인다. 그는 여자를 몰래 곁눈질하며 오직 햄을 써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드러낸다.

핑크빛 햄은 여성의 육체를 상징하고 있다. 그들의 뒤에는 한 남자가 홀로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모자와 안경으로 가려져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소외되고 외로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버라 역시 호퍼와 마찬가지로 도시 속 간이식당에서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반복되는 욕망과 고립감을 표현해냈다. 혼자 식사하는 매춘부도, 햄을 써는 바텐더도 결국은 덧없고 단조로운 도시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모자와 안경을 쓰고 샌드위치를 먹는 남자와 바깥의 하반신만 드러낸 매춘부는 도시의 익명성을 대변한다. 그들에게 찾아오는 허기는 낮보다 더 환한 간이식당 안에서 무언가를 먹으며 달래지고 그들이 느끼는 고독 역시 내일 다시 찾아올망정 잠시 동안은 잊힐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외롭다. 도시의 밤은 길고 때로는 낮보다 더욱 환한 불빛으로 쉬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가끔 상상한다. 만화 속 심야식당처럼 우리가 가진 본질적인 상처를 음식으로 치유해주는 간이식당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먹는다는 행위는 때론 허기를 달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친 몸과 마음을 함께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네이버 블로그‘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