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는 창간 7주년을 맞이해 다각도에서 풀어보는 남자의 옷 이야기를 기획했습니다.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의 걸쭉한 입담과 재치 넘치는 남성복에 대한 해석을 생생하게 전합니다.<편집자 주>


남자 옷과 지중해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남성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중해를 화두로 꺼낼 수밖에 없는 필자의 고집(?)을 너그럽게 받아주길 바란다. 헤르메스, 포세이돈, 플라톤, 아르키메데스, 한니발, 카이사르, 로마군단, 토마토, 올리브, 참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피카소, 마티스, 미로, 코린트, 산토리니, 노천극장, 쏟아지는 햇살, 푸른 바다, 흰색 건물, 늘어지는 생활…. 이 모든 것의 시작과 완성이 만나는 곳, 지중해!

지중해는 그 특유의 자유로움으로 언제나 내 패션과 삶에 무한한 영감을 주는 곳이다.

지중해는 ‘키톤’, ‘히마티온’, ‘토가’에서 시작해 남성 슈트의 클래식이자 정석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나폴리 스타일을 만든 무대이기도 하다. 있는 폼을 다 내 슈트를 갖춰 입고 구김 가는 것이 싫어 앉지도 않는 ‘폼생폼사’ 지중해 남자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억지로 짜 맞추는 듯한 갑갑한 삶을 잠시 털어내고 오직 남자인 나만의 시간이 절실할 때 시칠리아 섬의 타오르미나(Taormina)는 고마운 탈출구가 될 것이다.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타오르미나.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타오르미나.
타오르미나는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곳으로 앞쪽 멀리에는 이오니아해가, 위쪽으로는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에트나 화산이 자리하며,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 S전자 광고에 나온 자그마한 고대 그리스 노천극장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중해에서 타오르미나만큼 폼을 잡고 한껏 여유를 부릴 만한 곳이 있을까.

이곳에서만큼은 숨 막힐 듯한 브리티시 스타일은 잠시 벗어두자. 가령 블루 재킷에 화이트 혹은 실버 그레이 팬츠를 입고, 프린트 리넨 셔츠에(화사한 색감의 스트라이프 패턴이라면 더욱 좋겠다) 베이지 나 브라운 로퍼를 신는다면 너무 평범할까. 채도 높은 색상이나 강렬한 윈도체크 재킷, 파란 팬츠에 화이트 리넨 셔츠, 데님 로퍼나 비비드 컬러의 스웨이드 드라이빙 슈즈 등 여러 상상을 하며 아이템을 짜 맞춰 보는 일은 내겐 영감을 주는 일이자 큰 기쁨이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포르토피노 룩’의 본고장 지중해 예찬
이탈리아에서 ‘포르토피노 룩(portofino look)’으로 불리는, 블루 톤 재킷에 블루 셔츠, 새하얀 팬츠에 라이트 블루 스웨이드 로퍼를 맨발로 가볍게 신고 실크 행커치프로 포인트를 준 패션을 이곳이 아니라면 세상 어디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복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싶다.

쏟아지는 낮의 태양빛을 즐긴 후 낙조의 저녁 무렵, 옷을 바꿔 입어보는 기분도 괜찮다. 지중해, 특히 이탈리안들에게는 낮에는 캐주얼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일상을 보내고, 저녁에 포멀한 슈트로 갈아입는 일이 그리 놀랍거나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빛이 쏟아질 때는 화이트 혹은 내추럴 아이보리 팬츠에 블루 재킷, 해가 질 때에는 오렌지색이나 큰 무늬가 들어간 재킷에 리넨 소재의 팬츠 혹은 무릎이 살짝 보이는 정도의 쇼트 팬츠, 그리고 양말 없이 밝은 베이지 혹은 강렬한 블루 로퍼나 가죽을 엮어 만든 구두로 가볍게 멋을 낸다면 완벽하다.
포르토피노 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로퍼의 예.
포르토피노 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로퍼의 예.
지중해는 4월부터 우기 시작 전인 9월 초순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슈트보다는 쇼트 팬츠와 단추를 몇 개쯤 푼 리넨 셔츠를 입어야 할 것 같은 산토리니, 영감의 도시 시칠리아, 라틴과 아랍 문화가 교묘히 섞여 있는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 이 모두가 지중해의 축복이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포르토피노 룩’의 본고장 지중해 예찬
글쓴이 이영원은…

대한민국 핸드메이드 남성복의 아이콘 ‘장미라사’의 대표. 옷이 좋아 옷을 맞추고, 입고, 즐기고, 선물하는 재미에 365일 빠져 있는 사르토리알이다. 내 집 드나들 듯 한 덕에 유럽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그는 옷이 곧 문화라는 철학으로 한국 수제 남성복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