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최근 푹 빠져 있는 뮤지션 박정현의 8집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패럴랙스(Parallax)’는 시차(視差), 즉 시각 차이를 말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 시각의 차이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유독 패션에 관해서는 특히 동일한 스타일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나온다. 심지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는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른데, 흥미로운 점은 그 견해가 주변의 영향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성당인 아야소피아. 현란한 모자이크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성당인 아야소피아. 현란한 모자이크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문화와 패션의 경계이자 교류점 보스포루스 해협

고대부터 유럽인들에게 ‘오리엔탈적’이라는 말은 풍요로운 동양의 느낌을 나타냈는데, 오늘날 터키, 인도, 중동 부근 여러 국가에 해당했다. 아마도 그 옛날에는 유럽 국가들 기준에서 봤을 때 이 국가들이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오리엔트’를, 극동에 있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동양인 것은 분명하지만 왠지 동양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그 나라들을 가보면 뒤섞인 동서양의 생활습관과 문화에서 나온 미적인 관점 차이 때문인지 현재의 패션 트렌드가 이쪽저쪽(동양과 서양)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남성 패션을 중심으로 보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이런 흥미롭고 재미난 주제 때문에 필자는 유럽 출장 때 터키의 이스탄불을 자주 들른다.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이 보스포루스(Bosphorus) 해협(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아시아를, 서쪽으로는 유럽을 동시에 품고 있다)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공존하는 도시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유럽과 동양, 문화와 패션의 공존 이스탄불에서 답을 찾다
이스탄불에서 유럽지역에 해당하는 오르타쿄이. 이곳 카페에서 쿰피르에 커피를 곁들이며 건너편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느낌은 오묘하다.
이스탄불에서 유럽지역에 해당하는 오르타쿄이. 이곳 카페에서 쿰피르에 커피를 곁들이며 건너편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느낌은 오묘하다.
드넓은 영토 중에 하나의 점 같은 작은 크기로 유럽 대륙에 살짝 손을 얹어 터키를 유럽 국가로 만들어 준 이스탄불은 많은 ‘거리’를 제공하는 즐거운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스탄불을 들를 때에는 항상 보스포루스 다리, 유럽지역에 해당하는 오르타쿄이(Ortakoy)의 카페에서 쿰피르(kumpir: 통감자 속에 올리브, 채소, 건과일, 젤리 등 이것저것 넣은 요리.

케밥과 함께 동쪽 유목민족의 대표적인 음식 문화유산)와 커피를 들며 저쪽 건너편 아시아를 바라보며 그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즐긴다. 케밥을 손에 들고 밸리댄스를 구경하며 동서양이 오묘하게 조합된 거리 문화를 즐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몽골 유목민인 돌궐족의 후예들이 들어와서 사는 도시. 1000년 넘게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비잔틴 문화의 심장이었던 곳이다. 이스탄불은 동양 유목민이 서양 도시문화 중심을 점령해 세운 도시인 셈이니 진정 두 문명이 만나는 역사적인 장소가 아니겠나 싶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이스탄불 남자들은, 생김새는 유럽인에 가까울지 몰라도 패션 스타일과 시각, 생활습관은 매우 동양적이다. 가령 우리나라처럼 손으로 바지를 무의식적으로 끌어올려 입는 습관이랄까. 이스탄불 남자들이 입는 바지는 힙은 크고, 라인은 여유롭다. 옷이 몸에 붙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물론 바지의 길이도 길다.

재킷 스타일은 여유 있는 품에 특히 앞쪽을 크게 하며, 물건을 많이 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지 속주머니 또한 넉넉하다. 자신이 과장되고 커 보이길 원하는 아시아 남성들의 공통적인 욕구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과장돼 보임과 동시에 편안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는 남성복을 선호해 왔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유럽과 동양, 문화와 패션의 공존 이스탄불에서 답을 찾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Sultan Ahmed Mosque).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돼 있기 때문에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해 1616년에 완공했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Sultan Ahmed Mosque).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돼 있기 때문에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해 1616년에 완공했다.
블루 셔츠·네이비 슈트는 유럽, 화이트 셔츠·블랙 슈트는 동양

유럽 남성들은 어떤가. 그들은 매우 다양한 디자인의 다리 라인을 즐기되 과하지 않은 길이의 바지를 입지만 힙은 꼭 붙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아시아에 비해 신체 곡선을 드러내는 디자인이 많으며,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다. 하지만 딱 맞는 힙은 디자인 불문이며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하다.

재킷은 곡선을 많이 넣는데, 앞은 작고 뒤의 품을 여유 있게 해 몸을 감싸는 라인으로, 움직임이 좋은 동적인 옷을 선호한다. 슈트도 마찬가지로 그 차이가 극명하다. 동양은 광택 있는 질감의 솔리드와 스트라이프를 선호하며 옷의 중심이 가운데에 있다.

반면 서양은 광택이 없으며 네이비 컬러를 선호하는 편. 이는 버드아이, 멜란지, 글렌 체크 등 다양한 무늬와 그레이, 브라운, 블랙 등 비교적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는 동양에 비해 단조롭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유럽과 동양, 문화와 패션의 공존 이스탄불에서 답을 찾다
이스탄불 이스티그랄 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이스탄불 이스티그랄 거리.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셔츠의 경우 유럽인들은 푸른색 일색으로 얼굴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유럽 슈트의 기본은 푸른 셔츠에 네이비 슈트, 아시아는 하얀 셔츠에 블랙 슈트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졸업과 동시에 처음 샀던 슈트를 기억해보라. 블랙 일색일 것이다).

이란, 인도, 네팔, 동남아시아, 중국 등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동양과 서양을 비교해 보면 같은 디자인과 양식의 옷이라도 문화적 습관에 따라서 아직도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의 일부 나라에서는 세퍼레이티드(seperated·분리)의 개념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터키도 마찬가지다. 터키의 복장 문화는 영락없이 동양이다.

서양 문화의 중심지 콘스탄티노플의 명맥을 잇는 이스탄불이 아니던가.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복장 문화만큼은 동양을 향하고 있으니, 진정한 동서양의 조화란 그들 자신이 아닌가 싶다.

아야소피아(Ayasofya: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성당)의 현란한 모자이크, 지하 수로의 웅장한 기둥들, 로마의 대수로와 블루모스크의 환상적인 세라믹, 동서양의 예술, 톱카프 궁전, 그랜드 바자르를 보면 미(美)를 바라보는 터키 사람들의 시각 차이를 금세 느낄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 격인 그랜드 바자르. 양탄자, 그릇, 다양한 액세서리 상품이 즐비하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 격인 그랜드 바자르. 양탄자, 그릇, 다양한 액세서리 상품이 즐비하다.
동양도 아니며 서양도 아닌 곳, 지금 이스탄불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스탄불을 바라보면 고대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동양과 서양의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미국과 일본은 예외로 두자. 그들은 ‘깍두기’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이 도시 사람들은 서양을 지향하지만 아직은 오리엔탈적 사고에 묶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다지 놀랍다거나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을 이 도시의 화려한 문명의 조합을 보면, 그들 자신이 두 문명을 내면과 외면에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오묘한 조합을 바라보는 이방인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얻게 된다. 어찌됐건 시각 차이는 존재할수록 좋은 면도 있다. 그 덕에 더욱 더 다양한 패션이 창조되기 때문이다.
[이영원의 남자 옷 이야기] 유럽과 동양, 문화와 패션의 공존 이스탄불에서 답을 찾다
글쓴이 이영원은…

대한민국 핸드메이드 남성복의 아이콘 ‘장미라사’의 대표. 옷이 좋아 옷을 맞추고, 입고, 즐기고, 선물하는 재미에 365일 빠져 있는 사르토리알이다.

내 집 드나들 듯 한 덕에 유럽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그는 옷이 곧 문화라는 철학으로 한국 수제 남성복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