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원의 남자옷 이야기

여운 깊은 선셋(sunset)이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남기며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곳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사람들. 바로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곳 스위스 루가노(Lugano) 사람들이다.

루가노에 도달하기까지는 밀라노 북쪽에 자리한 코모 호수(Lago di Como)를 지나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인 키아소(Chiasso),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아울렛인 폭스 타운(Fox Town)이 있는 멘드리시오(Mendirisio)를 거친다. 그런데 이 여정은 자동차로 가도, 기차로 가도 언제나 아름답고 황홀하다.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와 근접한 세련된 알프스의 부자 동네 루가노. 정돈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가진 이 도시에는 세련미와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선셋처럼 황홀한 황혼을 즐기는 도시, 스위스 루가노 사람들
그런데 진정한 ‘루가노스러움’은 오전 10시를 넘어서면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루가노 사람들은 스위스 사람들처럼 하루를 일찍 시작하지 않는다. 되레 잘 차려 입고(지리적 영향 때문일까. 이탈리안처럼 차림새가 과하지는 않은 편이다) 느긋한 하루의 시작을 즐기는 모습이 이탈리안에 가깝다.

이곳 사람들은 호숫가에서, 또 회랑으로 이어진 작은 골목골목에서 채도 높은 원색의 패션으로 부드러운 색감의 도시를 그림 그리듯 꾸민다. 또한 까르띠에·에르메스 매장과 마주하는 채소가게, 고급 시계숍 옆에 즐비한 노점상과 소시지·치즈가게는 흡사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예쁜 꽃가게의 디스플레이, 식료품점, 일상적인 모든 것들이 마치 일부러 꾸며놓은 듯이 어우러진 이 놀라운 모습들과 그들의 완벽한 조화가 신기하다. 특히 황혼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이 도시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광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옷차림에선 오랫동안 갈고 닦은 각자의 ‘인생’이 묻어난다.

루가노를 거닐다 보면 마치 필자가 추구하는 ‘미래의 길’을 거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맘껏 멋을 내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인생도 보이고, 시티웨어를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는 모델 같기도 해 도대체 눈을 뗄 수가 없다.

캐시미어 블레이저와 도시형 패딩 재킷, 조금은 순화된 듯 믹스 앤드 매치가 편안한 밀리터리 트위드 재킷, 빨간색·청록색 등 채도 높은 컬러의 팬츠, 소재와 디자인이 다양한 코트 등의 조합이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시티 룩을 만들어낸다.
이탈리아와 근접한 스위스 알프스의 부자 동네 루가노는 세련미와 고급스러움이 도시 전체에서 묻어난다.
이탈리아와 근접한 스위스 알프스의 부자 동네 루가노는 세련미와 고급스러움이 도시 전체에서 묻어난다.
색상과 매치가 이탈리안처럼 과감하지만, 또한 스위스 사람답게 절제하는 법을 아는 듯하다. 근사하게 시티 룩을 차려 입은 노부부가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한국 남자인 나에게는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하다. 청명한 호숫가의 알록달록한 집들, 그 거리를 물들이는 황혼의 패셔니스타들이 어우러지며 뿜어내는 도시의 기운은 마치 만년의 인생을 불태우는 황홀한 선셋의 그것과 같다.

호숫가의 아름다운 붉은 노을처럼 나이는 멋을 부리는 데 제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특별한 도시를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꼭 방문해보길 권한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폭스 타운은 루가노와 매우 가까우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품 아울렛이 있어 루가노와 함께 엮어 방문하기 좋은 장소다.

구찌, 프라다, 에트로, 펜디, 버버리, 크리스찬 디올, 입생 로랑 등 명품 반열에 오른 패션 브랜드들은 이월 상품, 컬렉션용 상품, 한정판 등 다양한 라인으로 상품을 선보이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브랜드별로 매장 한쪽에서 진행하는 특가세일 등을 이용한다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선셋처럼 황홀한 황혼을 즐기는 도시, 스위스 루가노 사람들
글쓴이 이영원은…

대한민국 핸드메이드 남성복의 아이콘 ‘장미라사’의 대표. 옷이 좋아 옷을 맞추고, 입고, 즐기고, 선물하는 재미에 365일 빠져 있는 사르토리알이다. 내 집 드나들 듯 한 덕에 유럽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그는 옷이 곧 문화라는 철학으로 한국 수제 남성복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