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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뉴스]샤넬, 에르메스 ‘1인당 구매 가능 수량 제한’... 과연 리셀러들 사라질까?

    샤넬이 올해에만 세 번, 루이비통은 올해 다섯 번이나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했어요.하지만 높아진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장이 문을 열기 전 새벽부터 줄을 서 대기하는 ‘오픈런’의 열기는 여전해요.더욱 거세지는 열기에 힘입어 국내 명품 시장은 점점 커져가고 있죠.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지난해 국내 명품시장 규모를 약 14조 9000억 원으로 추산했어요. 세계 7위에 해당하는 규모예요.또, 올해 8월까지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0%나 증가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요.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사치품 시장이 커지는 현상에 대해 여러 원인을 제시했어요. 코로나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폭발하며 ‘보복성 심리’가 작용했으며, 가격이 비쌀수록 구매 욕구를 느끼는 심리(베블런 효과), 일부 증시로 돈을 번 개미들의 ‘부의 효과’도 한몫했다고 보고 있죠.그만큼 명품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했는데요, 샤넬은 리셀 현상을 막기 위해 이번 달 1일부터 인기 제품에 대해 인당 구매가능 수량을 제한하기 시작했어요.‘타임리스 클래식 플랩백’과 ‘코코핸들 핸드백’라인 제품을 인당 연 한 점씩만 살 수 있도록 했으며, ‘스몰 레더 굿즈’ 항목은 연 두 점 이상 사지 못하게 제한했죠.앞서 샤넬은 지난 7월부터 비슷한 상품을 반복하여 많이 구매하는 사람 등을 판매 유보 고객(블랙컨슈머)으로 지정해 매장 입장과 제품 구매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작했어요.에르메스 또한 동일한 디자인의 가방을 연 2개 이상 사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어요.한편, 일부 소비자들은 명품 브랜드의 인기 제품을 구매하는 게 더 어려워진

    2021.10.12 18:04:22

    [영상뉴스]샤넬, 에르메스 ‘1인당 구매 가능 수량 제한’... 과연 리셀러들 사라질까?
  • 망명 뒤 복귀 패션쇼, ‘대반전’…코코 샤넬, 마지막 불꽃 태우다

    [명품 이야기] 샤넬⑦연합군이 파리를 탈환한 뒤 코코 샤넬은 1944년 9월부터 독일인 연인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와 함께 스위스 망명 생활에 들어갔다. 생활비는 넉넉했다. 샤넬 넘버 파이브(N°5) 판매로 얻은 수익금을 스위스 은행에 예탁해 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스위스의 호화 호텔을 전전했다.  당시 세계 패션계에 등장한 새로운 사조는 ‘뉴룩(New Look)’이었다. 샤넬도 스위스 신문에 새로 등장한 이 단어를 접했다. 뉴룩은 세계 패션계에 선풍을 일으켰다. 재킷은 가는 허리선을 강조했고 스커트는 폭 넓은 플레어 스타일이 뉴룩의 특징이었다. 이런 스타일이 뉴룩이 된 것은 미국 패션 전문지 하퍼스 바자 편집장이 크리스티안 디오르의 패션쇼를 보고 “이츠 어 뉴룩(It’s a New Look)”이라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파리의 패션이 유능한 한 디자이너 덕분에 전쟁의 상흔을 딛고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뉴룩 스타일은 시대가 요구하는 취향과 맞아떨어졌다. 당시 크리스티안 디오르는 마흔두 살이었다. 그가 만든 뉴룩은 참혹한 전쟁을 거친 유럽에 낙천주의라는 새 사조를 열었다. 여성들은 중성적이고 단순한 스타일의 패션에서 벗어나 다시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폭이 15m나 되는 플레어 스커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엄청난 양의 옷감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패션 여왕 귀환, “샤넬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겠다” 샤넬은 약 9년간의 스위스 망명을 끝내고 1953년 파리로 돌아왔다. 일흔 살의 패션 여왕의 귀환은 당연히 화제가 됐다. 샤넬이 파리로 돌아오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샤넬 향수 회사를 함께

    2021.04.23 06:56:02

    망명 뒤 복귀 패션쇼, ‘대반전’…코코 샤넬, 마지막 불꽃 태우다
  • 미국 MGM과 동업, 할리우드 배우들에 샤넬 입혀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샤넬⑥ 샤넬은 모나코 북부에 있는 몬테카를로에서 옛 연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러시아 대공을 다시 만났다. ‘샤넬④’에서 소개한 바 있듯 파블로비치 대공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조카로, 러시아 혁명 이후 프랑스로 망명했다. 전횡을 일삼던 그리고리 라스푸틴 암살에 가담하기도 한 그는 프랑스 망명 이후 향수 제조 전문가인 에르네스트 보를 샤넬에게 소개해 줬고 ‘샤넬 넘버 파이...

    2021.04.09 07:02:01

    미국 MGM과 동업, 할리우드 배우들에 샤넬 입혀
  • 샤넬 아르데코 스타일 '리틀 블랙', 패션 혁명 일으키다[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샤넬⑤ 샤넬 넘버 파이브(N˚5)는 대성공을 거뒀다. 업계에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고객 주문이 쇄도했다. 생산량이 주문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샤넬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의 소유주인 테오빌 바데를 만났다. 라파예트에서 향수를 만들면 고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대량 생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샤넬은 바데에게 향수 공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바데는...

    2021.03.26 07:36:02

    샤넬 아르데코 스타일 '리틀 블랙', 패션 혁명 일으키다[명품 이야기]
  • 조향사 '보'에게 “현대 여성성 표현해 달라”…샤넬 N°5 탄생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샤넬④ 샤넬은 1914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더 이상 도빌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도빌도 독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빌에 문을 연 샤넬 부티크는 샤넬이 없어도 잘 돌아갈 정도로 자리 잡았다. 샤넬과 동생 앙투아네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평온했다. 샤넬과 연인인 아서 카펠(애칭 보이)은 여전히 성업 중인 레스토랑과 극장을 찾아다녔다. 샤넬과 보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2021.03.11 08:28:01

    조향사 '보'에게 “현대 여성성 표현해 달라”…샤넬 N°5 탄생
  • [명품 이야기]샤넬, 바느질하며 꿈꿨던 가수의 길 접고 패션의 길 열다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샤넬②코코 샤넬은 1905년 스물두 살 때 좀 더 큰 도시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물랭을 떠나 약 50km 떨어진 비시로 갔다. 물랭은 군사 도시였고 비시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휴양 도시였다. 예술가들의 도시이자 휴양 도시에서 샤넬은 외국어를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작은 방을 얻어 노래 연습에 매진했다. 교습비를 내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느질을 했다.잠을 아끼고 이를 악물고 노래 연습에 매진했다. 하지만 4개월 뒤 선생님에게서 받은 평가는 절망적이었다. 선생님은 “새처럼 목소리가 가는 데다 표정이란 게 전혀 없다”며 “게다가 너무 말라 뼈밖에 보이지 않아 차라리 바느질이나 하는 편이 낫겠다”고 혹평했다. 샤넬에게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가수의 꿈을 접었다.샤넬은 비시의 온천 휴양지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하얀 복장을 하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온천에서 나는 약수를 길어 유리잔에 부은 뒤 휴양객들에게 건네는 일을 했다.그는 그 무렵 그의 인생에서 첫 연인 에티엔 발장과 사귀고 있었다. 샤넬은 발장과 경마장에 자주 들렀고 “이렇게 아름다운 삶이 있다니…”라며 감탄했다. 발장은 그런 샤넬의 요구를 채워 줄 재력이 됐다. 그는 샤넬에게 콩피에뉴에 말 사육장을 갖고 있다며 원한다면 그곳에 함께 가자고 샤넬에게 제안했다. 샤넬은 발장을 따라 프랑스 북부 도시 콩피에뉴로 갔다.도빌 샤넬 매장 앞에서 샤넬(가운데 서 있는 여성)과 연인 아서 카펠(샤넬 왼쪽).첫 연인 갑부 발장 따라 경마장 딸린 성으로발장의 부모는 직조 산업으로 유명한 생에티엔 출신으로, 대대로 운영해 온 섬유 공장을

    2021.02.06 08:50:03

    [명품 이야기]샤넬, 바느질하며 꿈꿨던 가수의 길 접고 패션의 길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