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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윤정·도경완 부부 ‘나인원 한남’ 120억원에 매각…시세차익 70억원[스타의 부동산]

    트로트 가수 장윤정과 도경완 부부가 거주하던 아파트를 최고가에 매각해 70억원 시세차익을 보게 됐다.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고급 아파트 ‘나인원 한남’ 전용면적 244㎡ 타입이 120억원에 실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장윤정·도경완 부부는 2021년 3월 해당 주택을 50억원에 분양받은 뒤 실거주했다. 그리고 약 3년 2개월만에 집을 매도하게 됐다.나인원 한남 244㎡ 타입은 분양가보다 40억원 높은 2021년 12월 90억원에 실거래된 바 있다. 이후 2년여 만에 30억원이 뛴 셈이다.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 후 분양으로 공급된 나인원 한남은 2018년 당시 임대 보증금이 최고 48억원에 달했으며, 2년 뒤 3.3㎡(평) 당 6100만원에 분양 전환됐다. 고가에 분양되면서 피트니스,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 고급 커뮤니티 시설이 주목 받기도 했다.나인원 한남은 ‘한남 더힐’, ‘유엔빌리지’ 등 고가 주택단지가 밀집한 한남동에 위치해 장윤정·도경완 부부 뿐 아니라 많은 유명인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뱅 멤버 지드래곤이 나인원 한남 펜트하우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방탄소년과 RM과 지민, 배우 이종석 등도 거주 중이다.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2024.05.02 17:10:30

    장윤정·도경완 부부 ‘나인원 한남’ 120억원에 매각…시세차익 70억원[스타의 부동산]
  • ‘파르크한남·나인원한남’ 등 주요 고급 아파트, ‘신고가’ 경쟁 치열

    최근 1~2년 이내 주요 고급 아파트의 신고가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됐다.1일 NH투자증권이 펴낸 ‘고급주택 시장 분석_고급주택 트렌드 변화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남동 ‘파르크한남(전용 268㎡)’이 2023년 8월 180억원에 거래되며 서울 아파트 역대 거래 최고가를 기록했으며, 최근에는 한남동 ‘나인원한남(전용 206㎡)’이 2024년 1월 97억원 신고가를 찍은 뒤 한 달만인 지난 2월 9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전용 198㎡)’도 2023년 8월 99억원에 거래됐다.해당 보고서에는 고급주택의 개념과 특징을 정리하고 시장동향과 수요 공급 분석을 통한 향후 전망 내용이 담겨있다.고급주택은 지방세법상 주택가액 및 연면적(전용면적) 초과 여부, 승강기 설치여부 등의 기준에 따라 정의되지만, 실제로는 세금 중과를 피하기 위해 법적 기준을 교묘하게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사회적으로는 고급 자재로 지어지고 넓은 면적과 높은 층고, 한강 또는 산 조망권 확보, 여유로운 주차장 등의 특징을 가진 주택으로 볼 수 있다.보고서에서는 여러 연구를 종합해 고급주택을 양적 측면(가격)뿐 아니라 질적 측면(고급 자재 사용, 생활 편의 등)에서도 좋아야 하고 사생활 보호가 잘 되고 다른 주택과 차별성을 지니며, 유사 사회계층 커뮤니티 형성이 잘 되는 곳으로 정의했다.고급주택 유형을 단독주택, 연립주택(빌라), 아파트로 구분하고 아파트는 다시 단독형과 단지형으로 구분했는데, 사생활보호는 단독주택이 가장 강하고, 커뮤니티 서비스는 아파트 단지형이 가장 좋다고 분석했다.고급 연립주택(빌라)은 세대수가 많지 않아 거래가 빈번하게 일어나

    2024.04.01 16:54:59

    ‘파르크한남·나인원한남’ 등 주요 고급 아파트, ‘신고가’ 경쟁 치열
  • ‘60돌’ 대신증권을 빛낸 장면들

    [비즈니스 포커스]‘큰대(大) 믿을신(信).’한자의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어도 한국인 가운데 이 글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1987년 10월 12일 두 글자 캐치프레이즈를 띄운 대신증권 CF가 최초 방영된 이후 지금도 중·장년층은 증권 회사하면 ‘큰대 믿을신’을 떠올릴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CF가 방영된 지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대신증권은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견뎌 내고 당시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대신증권은 6월 20일 창립 60돌을 맞는다. 한국 자본 시장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신증권의 역사적 장면들을 정리했다. #. 장면 하나.“금융의 중심지, 명동과 여의도를 달구다”1976년 현 명동예술극장(구 국립극장)에 화려한 간판이 내걸렸다. 1962년 삼락증권으로 시작해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운 대신증권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창업자 양재봉 대신증권 명예회장은 ‘금융으로 국가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금융 보국의 신념으로 1975년 대신증권으로 사명을 변경, 재창업을 선언했다.당시 명동 땅은 금융의 중심지로 대신증권 명동사옥의 전광 시세판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명동 증권가의 대명사가 곧 대신이던 시절이다. 10년 후 대신증권은 여의도로 사옥을 이전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며 대형 증권사로 도약했다. 특히 당시엔 기업을 공개하려면 대신증권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공개(IPO) 부문과 회사채 인수 등 발행 시장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과 증시 활황에 힘입어 자본금 1808억원, 전

    2022.06.20 06:00:01

    ‘60돌’ 대신증권을 빛낸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