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269호 (2020년 03월 25일)

‘일하지 않고 성장이 가능할까’ 기업도 노동자도 우는 노동 규제

[커버스토리=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노동생산성’ 아일랜드의 절반도 안 돼…규제 풀어 노동 시장 유연화해야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4개 중소기업 단체 대표들이 13일 여의도 중기중앙회 중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주52시간제 입법보완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권고했다. 동일한 노동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인 노동생산성은 한 나라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성장은 노동생산성 증대 없이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상위 50% 국가 노동생산성의 절반 수준이다. 그동안 한국은 낮은 생산성을 장시간 노동으로 보완해 왔지만 최근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데다 고령화에 따른 일할 수 있는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이 우선이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와 규제 혁신 등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주52시간, 4차 산업혁명 시대 맞지 않아”


OECD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9.6달러로 OECD 36개 회원국 중 28위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국내총생산(GDP)을 전체 노동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같은 시간 동안 1위인 아일랜드의 노동자가 생산하는 부가 가치는 99.7달러, 미국(7위) 노동자는 70.8달러의 부가 가치를 생산한다.


국내 전문가들의 진단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현재의 생산성 수준에 머무른다면 2020년대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1%대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성장 둔화 추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경제 정책의 목표를 생산성 제고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OECD가 한국의 노동생산성을 거론하며 ‘주52시간 근무제’의 영향력을 언급하긴 했지만 노동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무조건 노동 시간을 연장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도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하는 방식의 혁명’이 전제돼야 하는 이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주52시간 근무제의 방향이 맞더라도 그 실효성과 관련해 비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획일적인 ‘주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이 오히려 노동 시장을 경직시켜 혁신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에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것은 2018년 7월부터다. 이후 사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1년간의 계도 기간이 부여됐다. 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일정 기간 유예하겠다는 것이다. 주52시간 근무제에 따르면 법정노동 시간 40시간, 연장 근로 한도 12시간으로 1주 최대 노동 시간 52시간을 초과해 일하게 하면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는 모습이지만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이와 관련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기업이 주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신규 채용 인건비는 물론 기존 노동자 임금 보전 비용, 설비 투자 비용 등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노동 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에서 중소기업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3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52시간 금무제를 도입하면 중소기업들은 기존의 평균 노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총 12만3000명의 인력이 필요하며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선 총 5조9771억원의 비용이 추가된다. 여기에서 주52시간 초과 노동자의 연간 총임금 감소액 2조6436억원을 빼면 결국 3조3000억원이 기업들의 추가 부담액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간 대통령 직속인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이끌었던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지난해 10월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주52시간 근무제는 나를 위해 더 많이 일하겠다는 개인의 일할 권리를 막을 수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52시간 근무제의 일률적 적용은 부작용이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로서도 ‘주52시간 근무제’의 시행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추정한 상용직의 초과 노동 시간과 초과 급여 감소분은 각각 월 2.5시간과 4만3820원이다. 향후 주52시간 근무제가 확대 적용되면 초과 노동 시간이 더 줄어들면서 급여 감소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생산직 노동자 등 대개 기본급이 적고 초과 노동수당이 컸던 임금 구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춘다’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퇴근 후 대리운전과 같은 ‘투잡’을 뛰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유연한 규제가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 또한 논란이 뜨겁다. 주52시간 근무제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인상 속도’다.


최저임금은 2018년 16.4%, 2019년 10.9%로 2년 연속 10% 이상 큰 폭으로 인상됐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 불평등 축소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하위 10%에서 초단시간 노동자가 증가하고 월 임금 기준으로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저임금 계층이 증가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시급은 올랐지만 고용주들이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끼며 결과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월급이 이전과 비교해 줄어든 영향이다.

최저임금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18년과 2019년 두 해에 걸쳐 시간당 임금 인상률은 1분위가 19.9%(2017년 대비 2019년)로 다른 분위에 견줘 가장 높지만 월 임금 인상률은 같은 기간 1.9%로 가장 저조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폭에 특히 영세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정부는 2020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8590원으로 지난해(8350원)보다 2.9% 올리는 데 그쳤다. 역대 셋째로 낮은 인상률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가 확대되면서 주52시간 근무제를 포함해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노동 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19로 중소기업과 영세 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처하는 등 비상 시국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호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3월 15일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확대 등을 포함한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제언’을 발표했다. 울산시 또한 이에 앞서 3월 12일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주52시간 근무제의 한시적 유예를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산시에 따르면 현재 울산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이 코로나19로 인한 연이은 조업 중단과 휴업 등으로 2월 생산량은 53%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와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강조되는 것이 ‘규제의 유연성’이다. 주52시간 근무제를 일률적으로 강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노동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등 주52시간 근무제를 보완하기 위한 법안들이 논의 중이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불거지며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손질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도 상임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자는 주52시간 근무제의 취지를 공감한다고 해도 노동 시간을 일률적으로 맞추기는 어렵다”며 “비용이 늘어난 기업과 소득이 줄어드는 노동자가 불만을 갖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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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3-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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