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필요할 때 대학 가는 선취업·후진학 …. 혹시나 학교는 등록금 수입 올리고 학생은 자식들 생활기록부에 부모 학력 한 줄 꾸미는 데 그치진 않을까.
[경제산책] 선취업·후진학 시대의 조건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삼일회계법인, 대우그룹. 2002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현).

고등교육 이수율 66%, 한국 25~34세 청년층이 대학 교육을 마치는 비율이다. 2007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과연 이렇게 너나없이 대학에 가야 할까. 어렵게 다니면 제값을 할까. 한번쯤 생각해 보는 질문이지만 공부하겠다는 ‘수요자의 의지’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지성인의 위엄도, 고시 붙고 박사 따서 벼락출세하는 신화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학 졸업장’을 찾고 있다. 고등학교와 다를 것 없는 대학 수업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취업 전선이 ‘모두가 아는 사실’임에도….

어떤 공부를 해서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남들 따라 대학 가서 헤매는 것 또한 현실이다. 편입·유학·고시·로스쿨까지 유혹적인 탈출구는 늘고 있지만 그만큼 방황도 늘고 있다. 어설프게 ‘학문의 길’ 운운하며 어디 쓰는지도 모를 말만 외워대도 문제지만 당장 써먹을 ‘직업교육’만 할 수도 없으니 무조건 대학 진학을 한다고 인생길이 열릴 수는 없다. 빵 하나만 잘 만들어도 갑부가 되고 대학 나와도 가슴 설레는 기회가 적은 세상에 대학 진학은 스스로 원해서 선택할 일이다.

남들 따라 대학 갔다가 뒤늦게 제빵 기술 배울 수도 있다. 대학 공부에 들인 시간과 돈은 낭비가 된다. 그런데 대학 안 가고 빵 기술 배워 성공한 사람이 나중에 공부하자니 어렵다. 세상을 읽는 ‘고급 지식’이 아쉽지만 당장 대입 수능에 눈앞이 캄캄하다. 그런데 일하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선택의 기회를 살리고 ‘무의미한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미 전문계고(과거 실업계) 출신을 수능 없이 선발하는 ‘재직자 특별전형’이 시행되고 있다. 어느새 80여 개 대학에서 5000명이 넘는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일하다가 필요할 때 대학 가는 선취업·후진학,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이 제도는 일하던 인재들이 뜻한 바 있어 진리에 몰두하는 장이 되고 있을까.

혹시나 학교는 등록금 수입을 올리고 학생은 자식들 생활기록부에 부모 학력 한 줄 꾸미는 데 그치진 않을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이 제도 역시 정말 중요한 과제는 언론과 국회의 관심이 닿지 않는 작은 곳에 있다. 필자가 직접 수업과 과정 개발을 맡았던 경험에 비춰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학교의 노력이다. 세파에 시달리는 직장인을 가르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이들의 경험을 살린 공부를 위해선 교수도 각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주말 수업 활용, 강의 시간 조정 등 학생들의 형편에 맞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교수는 연구 실적에 매여 세상 물정과 담 쌓고 학교는 학부 과정을 복사해 운영해선 불가능하다.

둘째, 회사의 노력이다.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졸업한 학생들이 일반 대졸자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애써 공부해도 고졸의 벽이 남아서는 필요할 때 대학 가자는 제도의 본뜻이 무색해진다. 회사가 학위 과정을 믿지 못한다면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산업은행처럼 ‘사내 대학’ 과정을 만들 수도 있고 대학 및 교육 당국과 함께 제도의 기획과 감독에 나서도 좋겠다.

셋째, 모두의 솔직한 노력이다. 필요할 때 대학 가려면 준비는 해둬야 한다. “대학 갈 것 아닌데 왜 힘들게 공부하느냐”는 생각이 전문계고 수업 현장에 없을까. 그렇다면 대학은 덜 준비된 학생을 가르치는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애써 만든 제도가 대학들의 돈벌이, 학생들의 학력 치장에 그친다면 이 또한 말잔치, 세금 낭비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