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미국 증시 제동 걸리면 ‘투자의 판’ 새로 짜야…신흥국 주식 ‘주목’
‘테크 거인 5’가 바꿔 놓은 글로벌 자산배분
[한경비즈니스=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 상무보·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금융 위기 이전의 고점을 뚫고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이었다.

이 시점을 전후해 국내 투자자들의 자산 배분 전략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전까지 자산 배분 전략의 두 축은 성장성을 대표하는 신흥시장 중 한국 주식과 안정성을 대표하는 달러 자산으로서의 미국 국채였다. 원화와 달러, 성장 자산과 안전 자산인 이 두 자산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투자수익률을 좌우했다.

2013년 이후 뜻밖에 미국 주식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급기야 미국 주식이 성장성을 대표하는 자산으로 떠올랐다. 반대편에는 금융 위기를 겪어내며 재정 건전성이 탄탄해진 국내 채권이 오히려 안정성을 대표하는 자산으로 대체됐다. 자산 배분 전략의 두 축이 바뀐 것이다.

◆ 테크 거인들이 이끌어낸 성장과 양극화

성장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던 미국을 성장으로 이끌었던 것은 대형 기술주였다. 페이스북$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즉 ‘FAAMG’으로 불리는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5개 테크 거인(tech giants 5)들은 2013년 이후 223%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S&P500도 82%나 올랐지만 테크 거인들의 상승률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들의 시가총액 비율은 현재 15.2%로 늘어났지만 순이익과 매출액 비율은 아직 각각 10%, 6% 수준에 그친다. 이들에 대한 성장 기대가 그만큼 많이 앞당겨 반영돼 있다는 의미다.

테크 거인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나 수요를 창출해 경제 전반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기술과 온라인을 무기로 다른 산업과 기업들의 이익을 잠식하며 성장하는 ‘파괴적 혁신 기업(disruptive innovator)’들이다. 2014년부터 최근 4년 동안 테크 거인들의 순이익 증가율은 12.9%에 달한다.

반면 이들에게 이익을 잠식당한 S&P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미국의 전체 기업 이익은 2013년 이후 정체 상태다. 테크 거인들이 이끄는 주가 상승 랠리에도 불구하고 저성장이 이어지는 구조였다.

이들은 사람도 많이 채용한다.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현재 약 35만 명을 풀타임 또는 파트타임으로 고용하고 있다. 약 2년 전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에 맞춰 향후 18개월 동안 10만 명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존이 만드는 일자리는 다소 극단적이다.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는 로봇 키바가 일하고 있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약 30분 내로 키바가 물건을 찾아온다. 사람은 그 물건을 확인하고 포장하는 일 정도만 한다. 임금수준이 높을 수 없다.

2013년 이후 미국의 최대 고용 창출 산업은 사업 서비스, 교육·헬스케어, 레저·접대 둥 3개 업종이다. 이들이 전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덧 40%를 넘었지만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전체 평균보다 7%나 낮다. 특히 온라인 덕분에 여가 시간이 늘면서 성장하고 있는 레저·접대 업종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의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용은 늘지만 임금과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

저성장$저임금$저물가는 저금리를 유지해 주는 힘이었다. 저금리는 다시 주식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며 버블 논쟁에도 불구하고 테크 거인들을 중심으로 주가 상승 랠리를 이끌어 왔다. 테크 거인들은 가파른 이익 창출을 통해 기하급수적 성장으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 낸다. 이것이 지난 5년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변화이자 주가 상승 스토리였다.

◆대규모 재정지출에 따른 노이즈, 주식과 신흥시장 비율을 높일 것

하지만 탄탄할 줄만 알았던 주가 상승 스토리에 노이즈가 발생했다. 미국이 대규모 감세와 재정지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작년 말 향후 10년간 1조5000억 달러의 감세안이 통과됐다. 2월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2년간 3000억 달러의 추가 재정지출 한도 상향도 합의됐다. 2019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는 5%를 넘어설 전망이다. 전쟁이 있던 시기에나 도달했던 이례적인 수치다.

감세에 따른 소비지출과 투자 증가는 이르면 올해 2분기부터 예상되지만 본격적인 영향은 올해 하반기와 2019년에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영향으로 올해와 내년의 성장률과 물가 전망이 상향 조정되고 있다. 올해 미국의 성장률과 물가 전망은 각각 0.2%포인트, 0.4%포인트나 높아질 전망이다. 대규모 재정지출은 경기 확장 국면을 연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올해 3분기로 예상됐던 미국과 선진국의 경기 확장 국면은 내년 1분기까지, 신흥국의 확장 국면은 내년 3분기까지 연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동률 상승과 실업률 하락으로 주요국들의 유휴 자원도 빠르게 소진되는 중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10년간 1조500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를 위한 2000억 달러의 추가 예산마저 요청한 상태다.

경제성장에 강력한 자극이 주어진 가운데 인플레도 꿈틀거리고 있다. 견조한 경제성장과 낮은 실업률에 따른 임금 상승 압력 누적이 배경이지만 2017년 이후 13%나 하락한 달러 약세도 시차를 두고 점차 인플레 압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성장$저임금$저물가에 의한 주가 상승이라는 뉴 노멀(new normal)이 경제성장과 임금 상승, 물가 상승으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면서 저금리에 기대 랠리를 펼치던 테크 거인들의 상승에 급제동이 걸렸다. 성장과 물가가 오르니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을 앞당길 것이라는 걱정으로 장기 금리가 뛰어오르고 달러는 강해졌으며 주가는 급락했다.

이에 대해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공화당은 “감세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에도 불구하고 수요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 확대로 공급 능력도 대폭 늘어나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의회 증언에 나선 제롬 파월 신임 Fed 의장도 감세 등으로 잠재성장 능력이 제고될 것이므로 점진적 금리 인상이 최선이라고 말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시작했다.

문제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매 분기 말 제시하는 점도표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주장대로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장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잠재 성장 능력이 증가한다면 이는 당장 금리 인상의 문제가 아니라 FOMC에서 제시하는 중립(균형) 기준금리도 상향 조정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금리 인상으로 도달해야 할 높이가 달라진다면 장기 국채 금리는 또 한 번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점도표에서 제시하는 금리 인상이 연내 몇 차례인지도 중요하지만 향후 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 그 이후의 중립 기준금리가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당분간 이에 대한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강화된 성장과 인플레 전망 그리고 가파르게 상승하는 기업 이익 전망을 감안할 때 추가 하락은 S&P500 기준 전저점 부근에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중 바닥을 형성한 후 추세적인 상승을 재개할 것으로 판단된다.

단기적으로 달러는 반등하겠지만, 달러 약세의 중$장기 추세는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 악화에 따른 달러의 신뢰 저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낮은 저축률과 높은 투자 증가율을 감안할 때 재정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약 달러와 고금리가 필요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무역 전쟁도 달러 약세 추세를 강화하는 요인이다. 달러 약세는 상대적으로 신흥시장의 인플레 압력을 낮춘다. 신흥시장은 강건한 글로벌 경제성장의 영향과 높은 실질금리로 단기 조정 시에도 조정 폭은 크지 않을 것이다. 신흥시장 주식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당분간 테크 거인들과 함께 에너지$소재$산업재$금융 등 경기 민감 업종과 신흥시장 주식이 매력적이다.

※주 이 기고문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KB증권의 투자 의견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