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슈퍼 달러’ 등 최악 시나리오 우려에도 정책 당국은 ‘경기 회복’ 방침 고수
한국, 국가 부도 재발 가능성 얼마나 되나?

[한경비즈니스=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작년 11월 개봉된 이후 흥행에 성공했던 ‘국가 부도의 날’이 종영됐다. 상영 기간 내내 논란이 됐던 사실 여부는 대중 영화인 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국가 부도’라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던진 만큼 한국의 국가 부도 재발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국가 부도 재발 가능성을 점검하기에 앞서 개념부터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지만 재정 위기로 본다면 잘못된 것이다. 우리 재정은 건전하다. 재정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2년 전이나 지금도 우리가 속한 신흥국의 위험 수준인 70%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 부도는 외환 위기다. 엄격히 따진다면 외환 보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컸지만 나라 밖에서는 위기가 곧 닥친다고 경고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당시 한국 경제 각료는 ‘펀더멘털(경제 기초 여건)이 괜찮다’는 안이한 경기 진단과 대처, 부처 간 갈등이 궁극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데 초점을 맞춰 이 영화는 전개됐다.

서로 다른 길 걷는 Fed와 ECB

외환위기 당시 대내외 상황을 보면 미국과 다른 국가 간 따로 노는 ‘대발산(GD : Great Divergence)’이 시작됐다. GD가 시작됐던 1994년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은 정책금리를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6%까지 올렸다. 같은 시기에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유로랜드 출범 전 유럽의 중심 역할)는 정책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5년 4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루빈 독트린’ 시대가 전개됐다. 루빈 독트린은 당시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달러 강세가 자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됐던 슈퍼 달러 시대를 말한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79엔에서 148엔까지 급등했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New Economy)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의 효과(wealth effect)→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전후 최장의 호황기를 누렸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잇달아 발생(‘그린스펀·루빈 쇼크’라고 부른다)했다.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 ‘IT 버블 붕괴’라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한국, 국가 부도 재발 가능성 얼마나 되나?

‘GD’가 다시 시작됐다. Fed는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2014년 10월 말 양적 완화(QE) 종료에 이어 이듬해 12월부터 금리를 인상해 오고 있다. 출구전략은 금융 위기로 흐트러졌던 비정상 국면을 정상 국면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푸는 것’보다 ‘회수하는 것’이 더 어려운 통화정책 관행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험난한 길이다.

같은 시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은 QE 시한을 작년 말까지 연장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 금융 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를 빼놓지 않았고 QE가 끝난 올해 들어서도 반복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행(BOJ)도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도입해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Fed와 ECB(다른 선진 중앙은행 포함)는 실물경제 여건 면에서 격차가 크지 않는 한 동일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한 묵시적인 합의 때문이다. Fed와 ECB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은 1999년 ECB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경제도 건실하다. 2009년 2분기 이후 지속돼 온 회복세가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되면 1990년대를 뛰어넘는 전후 최장의 호황기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예측 기관은 올해 성장률을 2%대로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유일하게 버팀목이 될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 당국의 ‘안이한 경기 진단’이 위기 부른다

트럼프 정부의 달러 정책도 출범 초 약달러 정책이 무역 적자 축소에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작년 3월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취임 이후 강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 신흥국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2 루빈 독트린’이라고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되는 것이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국가가 많을 정도로 신흥국이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 3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 6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터키 등 중동 국가, 9월 Fed의 금리 인상 이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Fed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라는 점이다. Fed가 추가로 금리를 올려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되면 미국과 신흥국 모두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슈퍼 달러 시대를 초래했던 GD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뜻을 밝혔다.

현재 한국의 외화보유액은 충분하다.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2선 외화(캐나다와 맺은 상시 통화 스와프 제외)까지 포함한다면 5300억 달러가 넘는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발생할 당시 외화보유액인 300억 달러보다 무려 17배 이상 늘어났다.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에 의한 적정 외화보유액인 3800억 달러보다 많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앞날과 관련해 경착륙,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 일본형 복합 불황, 베네수엘라 사태 등 각종 비관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 국민도 90% 정도가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고 공감하고 있는데 정작 정책 당국은 최근까지 회복되고 있다는 주장을 고수해 왔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각료가 보여준 펀더멘털론과 비슷하다.

해외의 시각도 악화되고 있다. 작년 12월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 사무총장은 ‘한국 경제가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고 있다’고 작심 발언했다. 갈라파고스 함정은 중남미 에콰도르령인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에 빗대 세계 흐름과 격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부 정책 결정과 집행자는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번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골드만삭스의 외채상환계수 등으로 평가해 보면 국가 부도(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게 나온다. 하지만 ‘국가 부도의 날’에 관객이 몰렸던 것은 22년 전과 마찬가지로 정책 당국의 안이한 경기 진단과 대처 그리고 부처 간 갈등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수장으로 한 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가 부도의 날’에 관객이 몰려갈 정도로 불안한 한국 국민의 심리부터 안정시켜야 한다. 1기 경제팀과 마찬가지로 ‘시간만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경제정책과 운용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삶은 개구리 신드룸(boiled frog syndrome)’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그때는 국가 부도가 재발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