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최태원, ‘세계 정상’의 꿈…도시바 인수 총력전
(사진)= 도시바 인수전을 위해 팔 걷고 나선 최태원 SK 회장./ 한국경제신문DB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최태원 SK 회장이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전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SK그룹 내 정유·통신·반도체 사업의 삼각 구도 체제를 강화해 글로벌 기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다.

2012년 최태원 회장의 SK하이닉스 인수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9조원의 부채를 가진 부실 덩어리 하이닉스 인수는 당시 회사의 경영진조차 반신반의했던 딜이다. 하지만 최 회장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 후 5년. 그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현재 SK그룹의 성장은 SK하이닉스가 이끌고 있다. 2016년 SK그룹의 영업이익은 10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조2767억원을 올렸다. 즉 SK하이닉스 한 회사가 그룹 전체 이익의 30% 정도를 거둬들인 것이다.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전 SK그룹의 양대 축은 정유와 통신이었다. 양대 사업 모두 꾸준한 이익을 올릴 수 있지만 성장 속도가 둔화된 사업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유·통신·반도체의 ‘삼각편대’로 바꾸며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2017년. 최 회장은 또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20조원 규모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문 인수전에 뛰어든 것이다. 최 회장은 2012년 하이닉스 인수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열에 합류한 것을 뛰어넘어 2017년 도시바 인수로 세계 정상에 오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이번 인수전에서 성공하기 위해 직접 뛰고 있다. 최 회장은 4월 내에 일본 도쿄에서 도시바 경영진을 직접 만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개월간 검찰 수사로 출국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첫 출장지를 일본으로 잡은 것은 도시바 인수전에 대한 강한 의지이며 얼마 남지 않은 본입찰을 앞두고 발 빠르게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일본의 금융회사 관계자도 만나 일본계 재무적 투자자를 확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도시바 인수전을 직접 챙기는 것은 반도체 시장의 환경적인 요인을 꼽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다. 매출의 70%를 D램이 견인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낸드플래시는 후발 주자로 5위에 머물러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플래시 메모리의 원천 기술을 갖고 있고 업계를 선도해 온 도시바를 인수하게 되면 SK하이닉스의 부족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낸드플래시가 D램을 추월할 만큼 전망이 좋아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한다면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설 수 있는 그림이다.

◆ 글로벌 거인들 5파전, ‘수 싸움’ 경쟁 가열

업계는 SK하이닉스가 본입찰에서 입찰 가격을 대폭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29일 열린 1차 입찰에서 2조 엔(약 20조원)을 제시했다.

SK 측은 자사보다 더 많은 인수 금액인 3조 엔을 제시한 훙하이그룹에 대해 긴장하지 않는 눈치다. 최 회장은 “1차 입찰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바인딩 입찰’이 아니라 큰 의미가 없다”며 “본입찰이 시작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 2차 입찰에서 입찰 금액을 대폭 올릴 가능성을 내비쳤다.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의 인수전을 두고 한국의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미국·중국·일본의 글로벌 기업들도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인수 결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만큼 인수전은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각국 기업들은 서로 동맹을 맺으며 연합군 형태로 인수전에 뛰어들어 누구도 판도를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매각의 1차 입찰은 지난 3월 29일 마감됐고 2차 입찰은 5월 19일 진행된다. 도시바는 6월 중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최태원, ‘세계 정상’의 꿈…도시바 인수 총력전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전은 현재 5파전이다. 한국 SK하이닉스, 대만 훙하이그룹, 도시바와 합작 계약한미국 웨스턴디지털, 미국 브로드컴, 일본 국부펀드 컨소시엄 간의 대결 구도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하기 위해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털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일본계 재무적 투자자도 끌어들일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의 해외 매각에 대해 부정적인 일본 내 여론을 적절히 피하기 위해 미국·일본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다국적 연합’ 전략을 펼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베인캐피털은 일본에서 활발한 투자 활동을 벌이고 있는 기업이다. 베인캐피털은 일본 최대 패밀리레스토랑 스카이락, 일본 도미노피자, 일본풍력개발 등에 투자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베인캐피털 등과 손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인수 가격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의 인수 가격은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수전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베인캐피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대만 훙하이그룹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베팅했다. 훙하이는 입찰에 참가한 다른 기업들보다 10조원 가까이 더 많은 3조 엔(약 31조443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제시해 1차 입찰에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훙하이그룹은 지난해 인수한 자회사 일본 샤프를 인수전에 참여시키는 방안과 일본 소프트뱅크와 손잡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일본 내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다.

훙하이의 협력사인 미국 애플도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서 훙하이와 제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훙하이는 애플 아이폰의 주력 생산 업체다. 당장 자금이 필요한 도시바 쪽에선 가장 많이 베팅한 훙하이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미국의 하드디스크 업체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할 가능성도 낮지 않다. 일본 정부 측은 기술 유출과 안보 위협 등을 우려해 일본이나 미국 기업으로 인수되기를 원하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 정부는 반도체가 국가 안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업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시바와 함께 미에현 욧카이치에서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공동 운영하는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 양 사 간 합작 계약을 근거로 독점 교섭권을 주장하고 있어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최대 160억 달러(18조2700억원)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부문을 사전 동의 없이 제삼자에게 매각한다면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별도의 논의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시킹알파에 따르면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의 동의 없이 매각 절차를 밟는 것은 합작법인 설립 계약상 금지되는 일이다. 웨스턴디지털이 타사로의 매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고 입찰에서 높은 금액을 제시한다면 웨스턴디지털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도 도시바 반도체 사업을 인수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업계는 브로드컴이 일본 은행 3곳과 미국 사모펀드 실버레이크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게 되면 인수전에서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미즈호파이낸셜그룹·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으로부터 약 150억 달러(17조1000억원)를 지원받게 된다.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를 위해 브로드컴과 컨소시엄을 맺은 실버레이크도 30억 달러(3조4020억원)의 전환사채를 제공할 예정이다.

실버레이크는 정보기술(IT) 인수 전문 사모펀드다. 이들의 지원금을 합하면 180억 달러(20조4120억원)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로드컴이 도시바가 회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본 은행 3곳으로부터 대출받은 것은 단순히 자금력이 높아지는 차원을 넘어 일본 정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싱가포르의 반도체 기업 아바고(Avago)를 370억 달러(41조9580억원)에 인수한 경험이 있어 더욱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 국부펀드 일본산업혁신기구(INCJ)의 시가 도시유키 회장은 “도시바 메모리 1차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을 지켜보고 있고 일본 기업들과 공동출자한 일본기업연합이 입찰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반격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 142년 역사 ‘도시바’, 살길은 ‘매각’ 뿐

금융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의 실제 가치는 120억 달러(13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도시바가 내놓은 적정 입찰가 20조원과 차이가 크다.

글로벌 기업들이 연합군 전략으로 공격적인 베팅에 나선 지금, 5월 중순 치러질 2차 입찰과 우선협상대상자에 누가 선정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최태원, ‘세계 정상’의 꿈…도시바 인수 총력전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적층형 메모리인 3D 낸드플래시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 왔다. 3D 낸드 기술을 처음 제시한 기업은 도시바다.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1984년 도시바의 마스오카 후지오 박사가 최초로 개발됐다. 이후 1988년 인텔이 상업용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2D 낸드플래시 경쟁에서는 수평적으로 셀을 밀집시키는 기술력에 의존했지만 아파트와 같이 수직 구조로 위로 쌓아올리는 3D 낸드 기술이 개발되며 평면 낸드플래시에 비해 저장 공간 집적도, 속도 및 내구성, 소비전력 등이 수 배 향상됐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점유율 2위의 기업이다.

도시바는 1875년 설립돼 반도체·방산·철도·원전 등 83개 계열사를 거느리던 거대 그룹이었다. 하지만 2015년 터진 회계 부정 파문에 이어 지난해 12월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에서 수조원의 손실이 추가적으로 드러나며 2016 회계연도 채무 초과가 확정됐다.

도시바는 2016년 4월부터 12월까지 연결 기준으로 4999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고 미국 원자력 사업으로 7125억 엔의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에는 1912억 엔 규모의 자본잠식에 빠졌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극심한 경영난에 처해 있고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각 사업을 분할 매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오는 6월 열리는 이사회를 통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도시바는 수처리와 철도 시스템 등 사회 인프라, 반도체를 제외한 전자기기, 화력발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 등 4개 사업만 남긴 채 나머지 사업들을 분사나 매각해 손실을 채운다는 회생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에는 백색가전 부문을 중국 기업 메이디에 팔았다.

최근에는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하며 반도체 부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도시바그룹은 이를 위해 지난 4월 1일 반도체 부문을 ‘도시바 메모리’로 분사했다.

도시바는 주요 사업을 분사하고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한 뒤 사회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경영 재건에 나설 계획이다.

오는 12월 만료되는 건설사업 면허 갱신을 위해서는 관련법에 따라 재정 건전성을 갖춰야 하는데 지난해 미국 원전 사업에서 타격을 입은 대규모 손실로 재정적으로 면허 갱신이 어려운 상황이다. 도시바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문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시바는 지주사 체제 전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부문과 해외 원자력 사업 등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력 이동도 있을 전망이다. 사업부문이 분사하며 전체 직원의 80% 정도인 2만 명이 자회사로 이동하게 되며 반도체 부문에서도 9000여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하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시장점유율과 순위가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 SK, 도시바 인수 시 ‘세계 2위’ 점프

우선 글로벌 반도체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의 호황 덕분에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50조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반도체가 46.5%를 견인했다.

삼성전자는 사실상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앞두고 있는 1위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14년 39.6%, 2015년 45.3%, 2016년 48%다. 낸드플래시도 2015년 32%, 2016년 36.1%를 기록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시장점유율 5위인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게 되면 시장점유율 2위로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최 회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직접 인수전에 힘을 싣는 것은 단순히 기업 경쟁력 확보 차원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판도 자체가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현재 메모리 시장은 1위인 삼성과 나머지 2위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에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면 1위 기업과 2위 기업 그리고 3위 그룹으로 반도체 시장 판도 자체가 바뀐다”며 “업계에서 이 같은 매물은 다시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s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