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취임 초 80%대에서 2년 만에 40%대로…중도층 빠지고 전통 지지층만 남아
文 대통령도 못 피하는 ‘지지율 필연적 하락 법칙’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초반 고공 행진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것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치학계에선 이를 대통령 지지율의 ‘필연적 하락의 법칙(the law of inevitable decline)’이라고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갤럽이 문 대통령 임기 시작 직후인 2017년 5월 30일~6월 1일 실시한 첫 국정 운영 지지율 조사(전국 유권자 1004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1%포인트)에서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84%, 부정 평가는 7%를 각각 기록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4월 2~4일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 ±3.1%포인트)에선 긍정 평가는 41%로 내려갔고 부정 평가는 49%로 올라갔다. 이런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41.08%)과 비슷하다. 올해 1분기 전체로는 긍정 평가 46%, 부정 평가는 44%를 기록했다. 지난 4월 9~11일 조사(유권자 1002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선 긍정 47%, 부정 45%를 나타냈으나 흐름은 지지율 하락추세다. 문 대통령에 대한 새 지지층이었던 중도층이 많이 빠져나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역대 대통령 ‘임기 초 지지율 고공행진 > 레임덕’ 되풀이

문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 모두 임기 초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지만 임기 중반을 지나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에 빠졌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자료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 2분기에 5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가 5년 차 2분기엔 12%로 내려앉았다. 수서 비리 사건 여파가 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년 차 2·3분기 8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가 5년 차 4분기엔 6%로 뚝 떨어졌다. 차남 현철 씨가 연루된 한보 게이트가 직격탄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년 차 1분기에 71%를 나타냈다가 24%의 지지율로 임기를 마감했다.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3남 홍걸 씨의 금품 수수 의혹 등이 지지율 하락의 결정타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년 차 1분기 60%를 기록했으나 행담도 게이트 등의 영향으로 4년 차 4분기에 16%까지 주저앉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년 차 1분기 52%였지만 2분기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21%로 급락했다. 3년 차 2분기에 49%로 회복했다가 임기 말엔 23%로 내려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년 차 3분기 60%로 정점을 찍었다가 최순실 파문 여파로 12%까지 추락했다.

정권마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법칙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기대 이론(expectation theory)’에 따르면 어느 대통령이든 초기에는 국민의 기대가 크다. 모든 기대와 요구 사항을 다 들어줄 것처럼 공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의 이념성은 가급적 숨긴다.

그 대신 ‘준비된 대통령’, ‘경제 대통령’ 등 구호를 내세우며 국가 운영 능력과 도덕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선된 이후엔 반대편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도 막연하게나마 “잘될 것”이라며 지지에 가세하고 지지율이 최고치에 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만족스러운 정책 결과가 노출된다. 비리 등 불미스러운 일도 터지면서 국민의 실망감이 쌓이고 지지율이 급락하는 패턴을 정권마다 반복하게 된다.

지지율이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A 씨는 “대통령 지지율이 50% 넘으니 국정 운영에 거리낄 것이 없더라”며 “공무원들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40%대에서는 야당의 반발 강도가 높아지지만 국정을 운영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과 국정 경험자들은 대통령 지지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40%로 보고 있다. A 씨는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공직자들이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20%대가 되면 국정 자체가 마비될 지경이 된다”고 했다. 이 정도 되면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사태가 벌어진다.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의 상당수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조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공직 사회에서 차기 유력 대선 주자에게 줄을 대려는 현상도 나타난다.

◆ “지지율 20%대로 떨어지면 국정 마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명박 정부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을 때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마저 대통령과 거리를 두더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도 “2004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그 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니 당내에서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결국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여당 의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자진 탈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적을 지켰지만 퇴임 뒤 소속 정당이던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면서 당적이 자동적으로 없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탈당하지 않고 버텼지만 탄핵된 뒤 제명됐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간다”는 일관된 답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의 반사이익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도 자유한국당은 이탈한 문 대통령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0%대 초·중반을 유지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해도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0%를 넘어섰다.

지난 4월 첫 주 한국갤럽 조사에선 23%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말까지 40%대를 유지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최근 30%대 중·후반으로 떨어졌다. 현 정부 초반 30%포인트 가량 차이가 났던 두 당 지지율이 10%대로 좁혀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권은 이런 지지율 추이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여권에선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어떤 경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을 40%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 선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지지율이 시험대에 섰다는 의미다. 이 밑으로 한 번 내려가면 회복이 어렵다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 실증됐다.

여권 내에선 “봄날은 지나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전 대변인의 상가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나 장관 후보자 2명 낙마 때 여당이 먼저 청와대에 교체를 요구한 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다. 이런 유형의 사태가 다시 한 번 터진다면 당·청 간 갈등이 표면화할 수 있고 이는 곧 레임덕으로 직결된다.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국정 운영의 힘이자 원천이라고 하더라도 획기적인 이벤트로 만회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벤트가 구체적인 성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지지율은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여론 조사 결과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갤럽의 4월 첫 주 조사에서 국정 반대 층이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경제문제 해결 부족(3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자리 문제와 고용 부족(6%), 최저임금 인상(3%), 과도한 복지(2%) 등이 뒤를 이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경제 민심 악화가 국정 반대층을 뭉치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했다.

김명준 글로벌리서치 상무는 “국민은 경제, 즉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경제에서 성과를 못 내면 지지율 하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경제정책들을 고수하면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