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박물관·애니메이션센터 등 만화 거리…매출 30% 늘어

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명동과 달리 이곳은 지금껏 ‘소외된 상권’이나 다름 없었다. 명동 상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밀리오레에서 큰 도로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도, 그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명동역 3번과 2번 출입구에서부터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좁은 골목상권 이야기다.
[상권지도-명동] 명동역~남산 골목길, '재미로' 떴다
최근 이곳이 ‘재미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가게 간판이나 벽화마다 만화 주인공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덕분에 최근 이 거리엔 부쩍 어린 아이들과 젊은 학부모, 대학생 커플들의 발길이 늘었다.

거대한 명동 상권에 가려져 있던 명동역~남산(숭의여자대학교 별관)으로 연결된 평범한 길거리가 ‘추억 속의 만화’를 통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 쇼핑 상권 명동에 ‘색다른 재미’ 부여

대한민국의 대표적 관광 코스인 명동과 남산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는 재미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입하기에 상당히 유리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동 상권의 거대한 유동인구가 남산 방향으로 쉽게 흐르지 못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명동에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이 곧바로 남산 산책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길목은 오래전부터 러브호텔이 곳곳에 숨어 있던 곳이다. 그 영향으로 명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나 호텔 등 숙박 시설을 중심으로 한 ‘베드타운’의 성격이 강했다. 잠자는 것 외에 다른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점이 상권 발달에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 이곳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젊은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3~4년 전부터다. 2013년 서울시의 ‘만화의 거리(재미로) 및 만화박물관(재미랑) 운영 활성화 사업(재미로 활성화 사업)’이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 방법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중심으로 2013년 12월 19일 만화박물관 ‘재미랑’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곧이어 도깨비를 모티브로 한 사쿤 캐릭터를 바탕으로 가방·선글라스 등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사쿤(2015년 7월)’이 들어섰고 올해 1월에는 웹툰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나 상품을 판매하는 ‘웹툰공작소’도 오픈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최근 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조석 작가 등 유명 작가의 작품과 관련된 상품 판매와 함께 이벤트도 개최된다.
[상권지도-명동] 명동역~남산 골목길, '재미로' 떴다
이 외에도 재미로에서는 길거리의 전봇대 하나까지 ‘만화의 추억’이 가득하다. 길을 걷다 마주친 전봇대 아래에는 ‘뻔한 추억의 이름의 계획’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다음 웹툰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위대한 캣츠비(강도하 작가)’의 대사 중 하나다.

전봇대 바로 옆에는 만화 주인공들이 가려진 가게 간판이나 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추억의 만화 ‘달려라 하니’부터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까지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만화 주인공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이처럼 재미로에 이웃하고 있는 가게들 하나하나가 똘똘 뭉쳤기 때문에, 이 길거리 전체를 ‘만화 속 세상’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키는 게 가능했던 셈이다.

실제로 재미로를 조성하는 데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측의 노력 만큼이나 이곳 가게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재미로 사업의 중심추 역할을 맡았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가게 상인들과 반상회를 개최하는 등 수시로 소통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 가게 주인들의 입장에서도 재미로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꽤 큰 부담을 져야했던 게 사실이다. 가게 간판이나 벽 등을 만화 주인공으로 교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20%가량을 직접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교체가 이뤄지는 동안 일부 영업에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위치한 남산커피집 관계자는 “재미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길거리에 개성이 살아나면 상권이 활성화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2015년 말까지 재미로에 위치한 가게들 중에서 총 80여곳의 간판 개선 작업이 이뤄진 상태다.

◆ 임대료, 명동 중심가 10분의 1인 곳도

그 결과는 예상보다 빠르고 큰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평범했던 길에 ‘만화’라는 콘셉트가 분명해지면서, 침체됐던 상권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활기를 되찾고 있는 중이다. 특히 최근 1년 사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재미로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관광객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곳에 구경 나온 용신중학교 최서린 학생은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의 집’에 왔다가 다른 곳들도 같이 둘러보는 중이다”며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거리 풍경이 재밌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곳은 만화랑·사쿤 등 만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관 외에도 만화를 주제로 한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지난해 11월 열린 ‘재미로 놀자’ 축제는 약 3만 명 정도가 찾았다. 축제 기간 코스프레 행사와 명동에서 재미로로 이어지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만화박물관 재미랑 관계자는 “평일엔 꾸준히 하루 100명 정도, 주말엔 200~300명 정도가 박물관을 찾는다”며 “특히 이벤트 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방학 때면 하루 평균 방문객의 수는 200명(주말 400명) 가까이 늘어난다.

인근 가게들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고깃집 청마루의 대표는 “최근 1~2년 사이 가게 매출이 30%가량 뛰었다”며 “지방에서 재미로를 구경하러 올라오는 사람도 생겼다”고 말했다.

현재 이 지역의 임대 시세는 명동 중심가와 비교해 대체로 5분의 1 수준이다. 명동역에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명동과 멀리 떨어진 골목 안쪽은 명동 중심가의 10분의 1 정도인 곳도 찾을 수 있다. 가게 규모 또한 대형 점포 위주인 명동과 달리 9.9~33㎡(3~10평) 정도의 소규모가 주를 이루고 있다.

9.9㎡를 기준으로 했을 때 보증금은 3000만~5000만원, 월세는 100만원 안팎이다. 권리금은 3000만원 정도다. 창업비용이 10억원을 넘어서는 곳이 수두룩한 명동 상권과 비교하면 그나마 인근 지역 중에서는 진입 장벽이 낮은 상권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국내 관광객이 재미로의 주 고객이다. 하지만 향후 ‘웹툰 한류’를 타고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상권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낮지 않다. 재미로를 중심으로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보강되면서 이 지역에 풍부했던 게스트하우스와 호텔도 향후 상권 발달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윤새미 선임은 “현재 만화 박물관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은 20% 미만이지만 꾸준한 증가 추세”라며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웹툰 한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추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주재익 인턴기자 jjikis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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