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핵심은 조직원 간의 기민한 ‘앙상블’…변화와 혁신 생활화해야
‘클래식’은 한물갔다…기업 운영은 ‘재즈’처럼
(사진) 미국 시카고에서 2016년 겨울에 열린 세컨드시티의 즉흥극 공연./ 한국경제신문DB

[한경비즈니스 칼럼=권상술 IGM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에 휩싸였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로봇·사물인터넷(IoT)·3D프린팅·합성생물학 등 테크놀로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초연결성을 통해 놀라운 속도로 융합되고 있다. 어제까지 유효했던 기술이 하루아침에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기존의 경영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융합하고 협업해 새로운 창조를 이뤄 내는 조직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커지고 변화가 훨씬 더 빨라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미리 계획해 대처하는 방식보다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반응하는(sense and respond)’ 기업의 경쟁력이 높다.

잘 짜인 연극보다 즉흥극 공연처럼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웬 즉흥극일까.

각본에 맞춰 미리 철저하게 연습하고 공연하는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즉흥극은 각본 없이 대강의 줄거리만으로 현장 분위기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즉흥극은 기업과 공통점이 많다.

2014년 타계한 리더십의 권위자 워런 베니스는 “과거의 조직 운영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았지만 오늘날은 재즈와 같은 즉흥연주에 가깝다”고 말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며 혼돈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재즈의 정신에서 혁신의 통찰력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소개된 ‘예스, 앤드(Yes, And)’라는 책은 미국의 즉흥 코미디 극단 세컨드시티가 축적한 즉흥극의 원리와 기법을 기업 경영에 접목했다. 매년 400개가 넘는 기업들은 이 극단에 컨설팅과 교육을 의뢰한다.

저자는 즉흥극이 대본 없이 움직이고 상황에 맞춰 공연해야 한다는 점에서 불확실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기업과 공통점이 많다고 본다.

세컨드시티에서는 공연할 때 주제만 정해놓고 배우들이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한다.

예컨대 A가 손가락을 권총 모습으로 쥐면서 “손들어! 내 손에 든 총 보이지?”라고 말하면 B가 “어? 그 총은 내가 작년에 선물한 거 아냐?”라고 답한다. A는 “그래. 내가 이 총으로 은행을 털었잖아!”라고 하면 이번에는 C가 끼어들어 “너 그 사건 때문에 잡혀 갔었는데 벌써 석방됐어?”라고 응수하는 식이다.

◆창의성 중요한 ‘예스, 앤드’ 법칙처럼

즉흥극은 한 사람이 어떤 연기를 하면 상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맞장구치면서 다른 무언가를 더해 스토리를 전개한다. 이것이 즉흥극의 중심 원리인 ‘예스, 앤드(Yes, And)’다.

즉흥극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를 돋보이게 하면 전체 연극이 좋아지므로 자신이 초라해지기보다 더 멋있게 보인다.

즉흥극은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극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즉흥극은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동 창작 과정이다.

즉흥극을 잘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 세계적 디자인 회사 아이데오(IDEO)의 최고경영자(CEO) 팀 브라운은 ‘예스, 앤드’는 창의적 사고방식의 핵심이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기술의 융합이 활발히 이뤄지므로 창의적 사고가 더욱 중요하다.

즉흥극을 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경청’을 잘해야 한다. 상대가 표현하는 바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듣고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창의성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지만 아무리 창의적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으면 참담한 실패를 겪는다.

코카콜라에서 야심만만하게 출시했다가 참담하게 실패했던 ‘뉴코크’, 유명 여성 잡지 코스모폴리탄이 출시했던 요구르트, 치토스에서 내놓았던 자사 제품 맛의 립밤, 패션 업체 디젤이 내놓았던 와인 등이 좋은 예다.

즉흥극을 잘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상하 관계의 핵심인 위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흥극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는 것이 많다. 리더와 팔로워가 시시각각 바뀌는 리더십의 공유가 이뤄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조직 위계 구조상 윗사람이 아랫사람들보다 지식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계층에 관련 없이 특정 사안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이 일반화될 것이다.

◆ 조화로운 앙상블이 중요

앞서가는 기업들은 관리자를 없애거나 프로젝트에 따라 리더가 수시로 임명되는 구조로 바꾸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는 홀러크러시(holacracy)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서클’이라는 팀을 구성한다. 한 구성원은 어느 서클의 리더가 될 수 있고 다른 서클에서는 팔로워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 밸브에는 관리자가 없다. 모든 프로젝트는 개인 또는 집단이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팀을 구성하며 시작된다. 특정 직원이 리더를 맡기도 한다.

그는 관련 정보를 맡아 보관하고 진행 상황을 조율할 뿐 일을 지시하지 않는다. 팀원들은 업무 이외에 직원 채용도 직접 진행한다.

멋진 공연을 하는 극단은 앙상블을 이룬다. ‘앙상블’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팀을 말한다.

팀이 앙상블을 이루면 개인 간 차이를 상호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일할 때보다 더 좋은 성과가 나온다. 또한 유능한 개인들끼리 생각을 신속하게 교환하기 때문에 훌륭한 아이디어가 빠르게 도출된다.

전체의 창조성이 커지기도 한다. 앙상블은 구성원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유지 효과도 보인다.

팀을 앙상블로 만들려면 구성원을 엄격하게 선발해야 한다. 세컨드시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 ‘기브 앤드 테이크 원칙을 지키는 사람’,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뽑는 데 집중한다. 그런 사람을 가려낼 때 즉흥극을 연기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업들도 개인적 역량보다 조화로운 팀원이 될 수 있는지를 더 중시하는 추세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구글의 자체 조사에서도 앙상블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조화로운 팀에서는 구성원들이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팀의 목표와 계획 및 자기 역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고 자신이 맡은 업무를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제 시간에 해낸다.

세컨드시티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자신들이 기획 중인 즉흥극에 대한 아이디어로 연습하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무료로 공개한다. 이는 기업이 개발 중인 제품을 고객에게 공개하는 것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은 다양한 형태로 고객을 조직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항공기 엔진과 같은 산업 용품을 마치 소프트웨어 베타 버전을 개발하듯이 만든다. 패스트 웍스 방식을 통해 시제품 상태에서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개선함으로써 신속하게 상품화한다.

프록터앤드갬블(P&G)은 오래전부터 자체 연구·개발 과정에 외부 전문가와 고객들을 참여시켜 왔다. 소니는 퍼스트 플라이트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일반인들을 참여시켜 사업화하는 제도다.

즉흥극을 지탱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성을 발현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세컨드시티는 창조하기 위해, 자기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 반드시 실패해야 하고 더 똑똑하게 실패하라고 제안했다. 공개적으로 실패하고 함께 실패하고 빨리 실패하고 실패해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 있게 발전적으로 실패하라고 조언한다.

◆ 똑똑하게 실패하고 발전적으로 일어나야

뛰어난 기업들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구축돼 있다.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기업의 하나로 여겨지는 아마존조차 수없이 많은 실패를 범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큰 성공은 수십 번의 실패가 쌓인 뒤에야 온다. CEO로서 내 일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적 제품으로 유명한 다이슨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덕에 5126개의 샘플을 제작했고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즉흥극에서 자주 발생하는 실수와 실패가 누적되면 문제가 일어난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하려면 진정성 있게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

세컨드시티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불경스러운 말을 하도록 적극 권장한다.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를 존중한다면 문제를 솔직하게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경외’의 대상이라면 문제를 짚어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컨드시티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 때 배우가 아닌 스태프들이 약 45분간 시사 풍자극을 선보인다. 야근 직원과 시간제 직원들은 극단에서 상영했던 장면을 활용해 자신들의 애환을 표현한다.

한 야간 근무 웨이트리스는 극단 소유주 앞에서 “그는 청바지도 잘 차려 입으면서 왜 우리에게 보험 혜택을 안 주는 걸까?”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후 소유주는 보험 문제를 해결해 줬다.

초연결 사회가 심화되며 개방성과 투명성이 거세게 요구됨에 따라 기업은 숨을 곳이 거의 없어졌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솔직하게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도미노피자는 자사의 피자가 과거에는 맛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새로운 피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해 주겠다고 광고했다. 이런 진정성 덕분에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즉흥극의 철학과 과정 그리고 문화는 현재와 미래의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들에게 참고할 만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보다 유연하게 협업하고 소통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을 신속하게 융합해 창조적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 기업만이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제대로 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