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업들을 위한 특정 환율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정부는 특정 수준의 환율 유지가 아니라 변동성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61.10원이다. 이는 산업별 수출 마진 확보 환율이라는 1067~1104원을 이미 넘어선 상황이다. 그러면 환율 정책 당사자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수출 기업들을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까.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사회 정의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먼저 그간의 고환율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자.

2008년 2월 930원이던 환율은 MB(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유지됐다. 이에 따른 물가 상승 및 내수 침체로 서민층과 자영업자는 어려워지고 현대 및 삼성 등 대기업은 수출 및 영업이익이 크게 확대돼 한국 경제의 재벌에 대한 의존도 및 경제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전기·전자, 자동차 등의 수출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계속 인위적으로 고환율을 유지하는 게 국가 경제에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환율 정책의 목적과 당위성은 일단 수출 기업들을 살려 고용 증대, 고용 효과, 임금 상승에 따른 소비력 증대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고환율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 등의 고용과 소비력의 증대는 이미 한계점에 와 있다.

이미 전체 자동차 산업의 고용 인구가 전체 고용 인구의 7.3%를 넘어서고 현대자동차의 평균 연봉이 8900만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고용 창출과 소비력 증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자 산업 역시 가장 큰돈을 벌어들였던 모바일 제품들의 생산기지가 베트남으로 옮겨 가는 상황에서 삼성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의미 있는 고용 증대는 어려워 보인다.

그간 고환율에 상대적 피해를 본 서비스·여행·철강·화학·정유 등의 다른 산업들도 우호적인 환율 환경의 혜택을 받아 전기·전자, 자동차 이외의 여타 산업에서 새로운 고용과 소비력 증대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10대 그룹이 쌓아 놓은 유보금이 477조 원에 달하고 그간의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의 피해자가 서민층과 자영업자였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적인 정당성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고환율의 유지는 가능한 것일까. 이 역시 미국과 일본이 만들어 낸 새로운 경제 상황 속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은 양적 완화를 축소하더라도 그 규모를 지금보다 줄이겠다는 것이지, 달러를 하루아침에 시장에서 거둬 가겠다는 게 아니다.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가 다른 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정책이라는 비난과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는 작아지고 앞으로도 일본의 돈 풀기는 오랫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현시점에서 고환율 정책의 효율성·정당성 및 지속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정부의 특정 환율 수준 유지를 위한 인위적인 노력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정부는 경상수지, 통화량 등 펀더멘털적인 요소들을 시장에 의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다만 자본시장의 투기적 속성에 따른 급격한 변동성을 통제하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
[경제 산책] 고환율 정책은 독이다
정지홍 리스크헷지테크놀러지 대표

1973년생. 2000년 미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 수학·컴퓨터공학 전공. 2006년 시카고대 대학원 금융수학 전공. 2001년 미 필립스그룹 메드퀴스트 근무. 2006년 KB국민은행, 엑센추어 근무. 2011년 리스크헷지테크놀러지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