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파는 매장인 ‘성지’ 정보 넘쳐…은어 쓰는 등 은밀히 활동

[트렌드] 휴대전화 ‘뽐뻐’들 ‘정보가 곧 돈이다’
최근에 출시된 아이폰6 16기가바이트(GB)의 출고가는 78만9800원이다. 11월 2일 벌어진 ‘아이폰6 대란’에서 같은 제품을 10만 원대에 구매한 사람이 등장했다. 이동통신사 3사에서 처음 공시했던 보조금은 10만~25만 원이었지만 실제 ‘리베이트’가 60만~7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단통법)은 불법 보조금 차별을 막기 위해 등장했다. 보조금 차별은 같은 휴대전화를 살 때 어떤 사람은 비싸게, 어떤 사람은 저렴하게 사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구매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금액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저렴하게 산 휴대전화가 중고 제품이거나 하자가 있는 제품도 아니다. 또 저렴하게 산 사람이 이동통신사나 대리점과 특별히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도 아니다. 일명 ‘뽐뻐’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은 정보를 모았을 뿐인 일반인들이다. 뽐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뽐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돼 휴대전화의 가격대가 비싸지면서 이들은 보다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뽐뿌에서 정보를 공유한다.

김아영(가명·24) 씨는 쓰던 휴대전화가 고장 나 새로 사기 위해 뽐뿌를 ‘독학’했다. 포털 사이트에 ‘휴대전화 싸게 사는 법’이라고 검색하면 화면 상단에 뽐뿌가 떴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저렴하게 사는 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으나 마치 전문용어처럼 은어를 사용해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게시물을 읽고 검색하다 보니 어느새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만 들인다면 누구나 뽐뻐 가능해
결국 김 씨는 뽐뿌에 올라오는 ‘성지(싸게 파는 매장)’ 중 한 곳에서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매했고 가족들의 휴대전화도 다 바꿔줬다. 이 씨는 “휴대전화 요금제나 서비스를 잘 살펴보면 크게 어렵지 않다”며 “찬찬히 하나하나 뜯어보고 나면 금방 이해된다”고 말했다.

원래 뽐뿌는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브랜드나 쇼핑몰 주소 등을 공유하는 용도의 인터넷 사이트였다. 가입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특히 휴대전화 분야의 덩치가 커졌다. 사이트 내에 휴대전화 업체들이 광고할 수 있는 게시판이 있어 양질의 정보가 올라왔다. 그러다가 휴대폰포럼이라는 게시판으로 옮겨가면서 점차 정보 공유가 음성화됐다.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입하려는 일념 하나로 뽐뻐가 됐다”는 이종하(가명·26) 씨는 “원래 휴대폰포럼은 가입자들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잡담 게시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일명 ‘고급 정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느 정도 관심만 갖는다면 뽐뻐들이 폐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뽐뿌에서는 가입 없이 대부분의 글을 읽을 수 있다. 또 뽐뿌 이외에 뽐뻐들이 활동 범위를 넓힌 ‘공카(공개된 인터넷 카페)’들에서도 가입 후 일정 조건을 갖추기만 하면 정보를 볼 수 있다.

뽐뻐가 생겨난 이유, 즉 뽐뻐들이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동통신사가 각 대리점에 단말기 보조금을 제공한다. 단말기 보조금은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휴대전화 가격의 일부를 대신 부담해 주는 제도로, 보조금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할인한 가격에 팔 수 있다. 단말기 보조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1~2년간 의무적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이용자에게 지급하는 약정 보조금, 대리점이 이동통신사 본사에서 받은 판매 장려금·수수료 등을 이용자에게 지급하는 약정 외 보조금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약정 외 보조금’이다. 일명 ‘리베이트’라고도 불리는 판매 촉진금이다. 종종 이동통신사에서 대리점에게 ‘몇 시 한정 리베이트’를 제공하면 대리점은 그 알짜 정보를 은어와 함께 뽐뿌에 띄운다. 이것이 ‘스팟’이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 동안 특정 판매점에서 휴대전화를 구매하면 이용자는 리베이트라는 풍족한 보조금을 더 제공 받아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여기서 ‘페이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그 자리에서 리베이트를 바로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건이 있다. 이동통신사로서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 뒤 이용자가 휴대전화를 얼마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이동통신사로 옮겨 가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달 간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기간이 조건으로 붙는다. 그 기간만큼 사용하면 이용자의 계좌로 추가적인 보조금이 들어온다. 혹은 매달 요금제에서 추가 보조금 가격만큼 제해 주는 경우도 있다.

약정 외 보조금을 몇 달 뒤 지급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간혹 문제점도 생긴다. 페이백을 해주지 않고 의무 기간 안에 문을 닫고 사라져 버리는 대리점주도 있다. 이 씨는 “2013년에 있었던 ‘거성모바일 사태’는 약정 외 보조금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약정 외 보조금을 명목으로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유통하던 온라인 판매 업체 거성모바일이 약속했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용자의 주장이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부당한 보조금 지급이기 때문에 불법으로 판단했다.

대부분의 뽐뻐는 일상생활에서 주변에 자신이 뽐뻐인 것을 딱히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반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다들 ‘3개월 반납, 페이백, 가방’이 다 뭐냐고 묻기만 한다”며 “직접 찾아보지 않고 무조건 저렴한 곳을 알아봐 달라고 하고 더 싼 곳은 어딘지, 어느 매장이 가까운지, 페이백은 확실한지 등 일일이 물어보기만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 씨가 정보를 줬더니 더 알아보지 않고 계약한 후 다른 데 더 좋은 조건도 있었다면서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 씨는 “스스로 알아보는 것은 귀찮아하면서 남보다 비싸게 내면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라며 “뽐뿌에서는 이처럼 막연히 도움만 받으려는 사람을 방지하려고 은어만 더 생겨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 씨 역시 “마치 백화점에서 물건 고르듯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가격과 조건에 맞춰 구매하고 싶으니 내게 찾아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단통법 필요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뽐뿌에서 종종 언급되는 성지들이 있다. 뽐뻐들이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주로 찾는 곳이다. 대리점도 있고 오피스텔을 빌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공개를 막기 위해 초성만으로 불린다. 3호선 지하철역 근처의 성지 한 곳은 건물 3층에 자리해 있다. 닫힌 문 옆에 초인종이 달려 있고 문 앞에는 커다란 폐쇄회로 TV(cctv)가 설치돼 있다.

이 씨는 “전문적인 성지는 대리점과 달리 평소에 문을 닫아 놓는다”며 “이동통신사가 리베이트 정책을 내릴 때만 문을 열고 정보를 뽐뿌에 올려 ‘스팟’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단골인 뽐뻐에게 문자로 직접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문자 내용은 은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뽐뻐는 단통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성급했다”고 이 씨는 말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단통법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한다. 지금처럼 같은 제품을 두고 가격 폭이 어마어마하게 큰 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무조건 경쟁을 제한하지 말고 애초에 충분히 출고가의 거품을 빼면 좋았을 것이다. 갑자기 성급한 정책을 내서 사람들의 반발이 더 심하다고 본다.”



돋보기
‘알쏭달쏭’ 뽐뻐의 용어들

공카 공개된 인터넷 카페의 준말. 뽐뿌 사이트 외에 뽐뻐들이 활동하는 곳이고 가입 후 등업(등급 업)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 공카는 회원 수가 100만 명이 넘는다.

페이백 휴대전화 개통 시 할부 원금이 일정 금액 이하면 개통할 수 없어 의무 사용 기간 후 전산상으로 할부 원금을 낮추는 편법이다.

리베이트 이동통신사가 대리점에 제공하는 판매 촉진금. 이동통신사 사이의 경쟁 때문에 리베이트가 점점 올라가기도 한다. 이용자에게 ‘약정 외 보조금’으로 주어진다.

가방 가격 방어라는 뜻으로, 중고 제품인데도 가격이 출고가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가방이 높다’고 한다. 주로 아이폰을 가리키며 이 때문에 폰태커가 양산되기도 한다.

폰태커 가방이 높은 제품을 골라 뽐뿌 등을 통해 출고가보다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입한 뒤 위약 기간이 끝나면 되파는 사람. 이럴 때 오히려 중고가가 더 비싸기 때문에 이득이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