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니어링 부부’처럼 전원생활 하기
RETIREMENT
 ● Second Life Essay
[한경 머니 = 우재룡 한국은퇴연구소장]

상당수 사람들이 은퇴 후 도시에서 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여유로운 전원생활의 진정한 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색다른 전원생활의 재미를 한 번 알아보자.

중장년층들을 만날 때마다 은퇴 후 어디서 살고 싶은가를 꼭 물어본다. 고령화로 인해 노후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대답은 상당히 진지하다. 지난 수년간 많은 곳에서 이 질문을 던졌지만 반응은 늘 비슷하게 나온다. 즉 거의 80~90%가 도시에서 살겠다고 하며, 귀농·귀촌생활은 불과 10% 미만으로 나타난다.

응답자 중 극소수가 실버타운과 해외 은퇴이민을 선호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중장년들은 재산, 건강, 삶의 스타일, 취미 등에 무관하게 한결같이 도심생활을 선호하고 있다. 도시생활은 병원이 가깝고, 외롭지 않고, 문화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전원생활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매우 위험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중 도시에 사는 사람은 92%에 달한다. 프랑스 80%, 미국 82%, 영국 83%와 같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중이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일본의 경우 94%에 달하고 있다. 이런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중장년들이 은퇴 후 도시를 선호하는 현상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노후에 도시에만 거주하는 삶을 벗어나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같이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은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다. 혹시 우리가 이토록 전원생활을 꺼려하는 것은 전원생활의 진정한 묘미를 모르기 때문일지 모른다.

중년에 자립경제를 꿈꾸다

외국에서는 전원생활 하면 니어링 부부를 최상의 모범 사례로 든다. 남편인 스콧 니어링은 1983년에 태어나 미국 명문 대학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학자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의해 자립경제를 꿈꾸며 45세에 시골로 들어가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부인인 헬렌 니어링 역시 대단한 채식주의 사상가였다. 니어링 부부는 전원생활의 여유 시간을 3등분했는데, 4시간의 노동, 4시간의 지적 활동, 4시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로 구성했다. 스콧은 100세 될 때까지 55년간 이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그는 100세가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음마저 자발적으로 당당하게 맞이한 웰다잉의 대표적인 실천가로도 유명하다.

니어링 부부는 수십 년간의 전원생활을 통해 노후에는 일, 지적 활동, 교류로 균형 잡힌 생활을 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따라서 전원생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골에서의 노동을 생활의 일부로 줄여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골생활은 힘들게 농사를 짓거나 시골집을 관리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보다는 하루 일과 중 4시간 정도의 활동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집과 땅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또한 취미생활, 독서, 문화 활동과 같은 지적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정신적인 건강을 챙기는 일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노후에는 여유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니어링 부부는 치열한 정신적인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날로 고양되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으로 인생의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떨쳐내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단순하게 이웃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하루 4시간을 쏟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인간관계가 지루해지거나 좁아지기 마련이다. 사회봉사, 취미생활, 자기계발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만나는 인간관계는 멋진 삶의 조건이 된다.

그렇다면 부담 없이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몇 가지 방법을 고민해보자. 첫째는 도시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조금씩 경험해보는 방법이 있다. 도시 주위에는 전원이나 다름없는 한가로운 지역들이 많다. 이런 곳에 있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에 살면 자연스럽게 시골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보험사에서 은퇴한 김 모(60) 씨는 시골생활을 꺼려하는 아내를 위해 지방 중소도시에 있는 시골이나 다름없는 지역의 아파트에 전세를 들어 지냈다. 시골에는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골생활을 즐기는 방법이 됐다. 김 씨 부부는 이렇게 몇 년간 경험을 한 다음 전원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둘째는 시골에 소박한 집을 마련하는 방법이 있다. 도시에 주된 거주지를 두고, 시골에 저렴하고 작은 집을 마련해 도시와 농촌생활을 병행하면 된다. 건강할 때는 전원생활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거나 간병기가 열리면 전원생활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건강할 때, 그리고 기후가 좋을 때는 전원생활을 하고, 추운 겨울이나 간병기가 열리면 도시의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이다.

셋째는 전원생활을 하더라도 혼자서 외롭게 이주하기보다는 공동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요즘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대규모 한옥 단지나 은퇴촌을 만든 다음 도시의 은퇴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곳은 공원, 도서관, 식당, 카페와 같은 기반시설이 좋기 때문에 생활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분위기는 공동체마다 워낙 다르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다. 꼭 단기 체류를 해본 다음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필자는 도시에서만 살았고 시골생활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 활동을 절반으로 줄였을 때 우연히 처갓집에 있는 수년간 놀리고 있는 밭에서 전원생활을 경험하게 됐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힘들기는 했지만 도시생활보다 몇 배로 감동스러웠다. 농작물보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를 계기로 우리 부부도 니어링 부부처럼 멋진 생활을 설계하기로 했고, 벌써 2년째 조금씩 실천 중이다. 이런 경험으로 중장년들을 만나면 자신이 도시생활형이라고 단언하지 말고, 꼭 전원생활을 체험해보라고 부탁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농사짓는 것을 최소화하고 꽃과 나무를 가꾸고 싶어 한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어서면 텃밭 가꾸기보다는 정원 가꾸기가 유행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꽃과 나무를 가꾸는 원예가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멋지게 정원을 꾸미고, 도시의 청년이나 은퇴자들과 교류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

전원생활을 결정하려면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잘 파악해야 한다. 약간의 노동이 싫지 않고 생태적인 삶이 좋다면 전원생활을 시도해보길 바란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건강을 잃게 되면 시골생활은 접고 도시로 들어올 대안까지도 마련해야 한다. 무작정 시골에 집을 짓고 정신없이 농사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니어링 부부처럼 멋진 전원생활을 설계해보자.

우재룡 소장은… 국내 은퇴 설계 대중화에 기여한 은퇴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은퇴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천 명의 은퇴자를 컨설팅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설계 무작정 따라하기>, <긴 인생 당당한 노후 펀드투자와 동행하라>, <오늘부터 준비하는 행복한 100년 플랜>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