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의 수명을 늘리는 4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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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오래 사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수명이 늘어난 만큼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자칫 자산관리를 잘못하면 죽기 전에 노후 자금이 먼저 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무전장수(無錢長壽)’ 하게 된다. 무전장수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흑백 TV 시절 대표적인 가족오락 방송 프로그램으로 <장수만세(長壽萬歲)>가 있었다. 1973년에 처음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장수 노인과 가족들이 함께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장수 노인에게서 삶의 지혜도 배우고 인생의 애환을 들을 수 있어 시청자들의 호응도 커서 꽤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며 방영됐다. 하지만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진전되면서 프로그램의 인기도 시들해지더니 1984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요즘 젊은이들 중엔 <장수만세>라는 방송을 기억하는 이도 드물지만, 장수만세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 그 자리를 ‘장수 리스크’가 대신하고 있다.

1970년만 하더라도 65세 남성이 넷 있으면 그중 한 명만 여든까지 살았다. 하지만 이후 생존 확률은 급속히 상승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남자가 80세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1970년에는 24.4%에서 2017년 67.9%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65세 여자가 80세까지 생존할 확률도 49.9%에서 83.9%로 껑충 뛰어올랐다.

여든이 넘어서 바로 죽는 것도 아니다. 2017년 통계청 생명표를 보면, 65세 남자가 90세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23.1%이고, 여자는 42%나 된다. 100세까지 생존 확률도 남자는 1.2%, 여자는 3.9%나 된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돈의 수명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자산의 수명’이 ‘자신의 수명’만큼 연장돼야 무전장수를 막을 수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어떻게 자산 수명을 늘릴 수 있을까.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맞은 일본에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7세기 ‘톤틴연금’, 21세기 일본에서 부활한 이유
자산의 수명을 늘리는 4가지 방법
올해 초 일본의 다이와총합연구소(大和總合硏究所)에서는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고객의 자산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자산 수명 연장 방안으로 종신연금 중 하나인 ‘톤틴연금’에 주목했다.

자산 수명을 연장하는 손쉬운 방법은 종신연금을 구입하는 것이다. 종신연금 가입자는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수명이 늘어나면 가입자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손해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입 당시에는 오래 살았을 때 이득보다 일찍 죽었을 때 손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종신연금에 가입하려다가도 ‘일찍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

조기 사망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보험 회사는 종신연금에 보증 지급 기간을 두고 있다. 그래서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보증 지급 기간이 남아 있으면, 남은 기간 동안 상속인이나 수익자가 연금을 계속 수령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증 지급 기간이 20년인데 가입자가 10년 동안 연금을 받다가 사망했다면, 상속인이나 수익자가 남은 10년 동안은 연금을 수령한다. 물론 보증 지급 기간이 지난 다음에도 가입자가 살아 있으면 계속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종신연금에 보증 지급 기간을 두는 것이 조기 사망을 우려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면, 무전장수가 두려운 사람을 고려한 금융상품이 톤틴연금이다. 종신연금의 특수한 형태인 톤틴연금은 17세기 이탈리아의 로렌조 톤티(Lorenzo Tonti)가 창안한 것이다. 톤틴연금 가입자는 연금 개시 이전에 사망하면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 연금 개시 이후에도 보증 지급 기간은 없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마련한 연금 재원을 살아 있는 연금가입자에게 지급한다. 당연히 일반 종신연금과 비교해 톤틴연금 가입자가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 살아 있다면 말이다.

톤틴연금의 도덕적 결함에 대한 일부의 지적도 많다. 조기 사망자가 많을수록 자신의 연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보험 회사들은 톤틴연금을 약간 변형해서 운용하고 있다. 이같이 변형된 톤틴연금을 ‘톤틴성’ 또는 ‘톤틴형’ 연금이라고 부른다.

2016년 일본생명에서 내놓아 인기를 끌었던 ‘그랑 에이지(Gran Age)’가 대표적인 사례다. 50세 이상인 사람만 이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데, 가입자는 70세까지 보험료를 납부하고 70세부터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는다. 보통 종신연금의 경우 가입자가 연금 개시 전에 사망하면, 수익자는 해약환급금에다 사망보험금을 더한 금액을 수령한다. 이 둘을 더하면 납입보험료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다. 하지만 ‘그랑 에이지’ 가입자가 연금 개시 전에 사망하면 수익자는 해약환급금만 수령한다. 통상 해약환급금은 납입보험료의 70% 수준이다. 그리고 보증 지급 기간도 5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조기 사망자가 덜 받아간 만큼 생존자가 받는 연금액은 커진다.

일본에서는 은퇴를 앞둔 50대들 사이에서 톤틴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비혼과 이혼의 증가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톤틴연금은 제격이다. 이들에게는 부양할 가족도 없고 죽은 다음 재산을 물려줄 상속인도 없다. 대신 자기를 부양해줄 가족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일반 종신연금보다는 같은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더 받는 톤틴연금을 선호하는 것이다.

톤틴연금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보험 회사가 종신연금을 설명하는 방법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보통은 종신연금을 판매할 때 금리와 수익률 중심으로 상품을 설명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다르다. 금리나 수익률을 강조하는 것보다 종신토록 생활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연금 본연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종신연금에 가입하지 않았을 때 노후 자금이 고갈된 사례를 보여줬을 때 높은 가입 의사를 보였다.

정액으로 인출할까, 정률로 인출할까
자산의 수명을 늘리는 4가지 방법
종신연금은 무전장수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사람에게 유용하다. 그렇다고 해도 ‘일찍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연금 가입을 꺼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이들은 은퇴한 다음 노후 자산을 스스로 운용하면서 헐어 써야 한다. 문제는 저금리다. 늘어나는 수명만큼 노후 자산의 수명을 늘리려면 노후 자산을 정기예금에만 맡겨둘 순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산을 적립하는 기간에는 ‘적립식 투자(dollar cost averaging)’와 ‘글로벌 분산투자’와 같은 다양한 자산관리 수단이 있다. 하지만 은퇴한 다음 노후 자산을 운용하며 인출해야 하는 기간 동안의 자산관리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국내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자산 운용과 인출’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수익률 순서에 따른 리스크도 그중 하나다. 투자를 하다 보면 매년 얻는 수익률에 차이가 난다. 어떤 해에는 큰 수익을 내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크게 잃기도 한다. 그런데 은퇴자가 겪는 수익률의 경로에 따라 노후 자산 고갈 속도가 달라지는데, 이를 ‘수익률 순서 리스크(sequence risk)’라고 한다. 보통은 은퇴 생활 초기에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노후 자산 고갈 속도가 빨라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수익률 경로와 인출 방법이 다른 4가지 사례를 상정해보자. 은퇴 자산은 3억 원이고 운용 기간은 5년이다. 먼저 정액 인출부터 살펴보자. 사례 ①과 사례 ②는 운용 기간 중 수익률과 상관없이 매년 초 생활비로 2400만 원씩 인출하는 것이다. 다만 수익률의 순서는 정반대다. 사례 ①에서 수익률은 첫해 20%로 시작해서 이듬해부터 9%, 5%, -4%, -15% 순이다. 반면 사례 ②는 첫해 -15%로 시작해 -4%, 5%, 9%, 20% 순이다. 둘 모두 연평균수익률 3%이고, 5년 동안 인출한 금액도 1억2000만 원으로 같다. 그런데 5년 후 기말잔고는 4000만 원 넘게 차이가 난다. 왜일까.

사례 ②는 ‘수익률 순서 리스크’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운용 기간 초기 큰 손실로 운용 자산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도 생활비를 인출하면 운용 자산은 더 줄어든다. 이렇게 자산이 크게 줄어든 다음 나중에 수익률이 좋아봐야 자산 규모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수익률 순서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정액’보다는 ‘정률’로 인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남아 있는 운용 자산의 일정 비율을 인출한다는 뜻이다. 사례 ④는 수익률 순서가 사례 ②와 같지만, 인출 방법이 다르다. 사례 ②에서는 수익률에 상관없이 매년 일정 금액을 인출했다면, 사례 ④는 전년도 기말잔고의 8%를 연초에 인출한다. 이렇게 되면 전년에 수익률이 좋아 잔고가 늘어나면 인출 금액이 늘어나고, 반대로 손실을 보면 인출 금액도 줄어든다. 그 결과 사례 ④에서 5년 후 기말잔고는 2억2159만 원으로 사례 ②보다 3700만 원이나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첫해와 둘째 해 손실로 보유 자산이 줄어들자, 이듬해 인출 금액도 줄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례 ③을 살펴보자. 인출 방법은 사례 ④와 같이 정률이지만, 수익률 순서는 정반대다. 사례 ③이 처음에 수익률이 좋고 나중에 좋지 않은 ‘전고후저’라면, 사례 ④는 ‘전저후고’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수익률 순서가 정반대인데도 5년 후 기말잔고는 2억2159만 원으로 동일하다. 이는 노후 자산을 정률로 인출하면 은퇴 생활 기간 동안 수익률 순서가 달라서 생기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정률 인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은퇴 자산이 얼마 되지 않으면 정률 인출은 적합하지 않다. 은퇴 자산이 적으면 인출액이 얼마 되지 않아 소비를 크게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은퇴 자산이 많거나 초기 수익이 좋아도 문제다. 이렇게 되면 은퇴 생활 초반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금액을 인출해 과소비를 하게 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정액 인출 방법을 유지하면서, 매년 인출 금액에 상한과 하한을 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최소생활비 이상을 인출해 기본적인 생계는 유지하면서 은퇴 자산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은퇴 직후에 보유 자산이 가장 많기 때문에 수익률 순서에 따른 리스크에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 데 있어 ‘수익률 순서 리스크’를 주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고령으로 인지 기능이 떨어졌을 때, 자산관리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굳이 치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인지 기능의 저하가 자산 수명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고령화가 금융소비자의 행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금융노년학(financial gerontology)’이라고 한다. 금융노년학자들은 고령으로 인지 능력이 저하되면 금융 이해력 수준이나 금융 지식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자산관리에 대한 자신감은 그다지 감소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사기를 당하거나, 적절한 투자 판단을 하지 못해 노후 자산이 조기에 고갈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같은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랩어카운트나 신탁 상품을 활용할 수 있다. 이들 상품은 자산 운용을 금융기관에 일임하는 것인데, 인지 능력이 정상일 때 자신에게 맞는 운용 방법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인지 기능이 저하됐을 때 금융사기를 당하거나 그릇된 투자 판단을 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산 이전도 가능하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는 랩어카운트나 유언신탁을 활용해 은퇴자의 재산을 자녀와 손자에게 사전증여 하거나 상속하기도 한다.

기대수명이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에서 노후 자금을 모으는 방법만큼이나 은퇴 이후에 이를 운용하며 인출하는 방법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직장인들 중 상당수는 노후 자산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은퇴를 맞는 일이 많다. 준비 자금이 많지 않은 만큼 노후 자산이 고갈되지 않도록 운용과 인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