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 1인가구 연구센터장

[Special] “나홀로族 증가…금융도 개인화 주목”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1인 가구 600만 시대다. 우리나라 10가구 가운데 3가구 꼴로 ‘나 혼자’ 사는 셈이다. 1인 가구의 증가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다 정책적 배려도 전무한 실정이다.

일찍부터 개인주의 문화가 싹튼 유럽,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나(의 집)’보다는 ‘우리 (집)’라는 말이 더 익숙한 것도 이런 문화적 특색을 반영하고 있다. 또 이른 나이에 경제적 독립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선진 주요국들과 달리 학업과 군대, 그리고 취업과 결혼까지 자립할 수 있는 연령대가 갈수록 늦춰지는 사회 시스템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는 1인 가구는 이런 공동체 중심의 문화를 급속히 와해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변화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 사례처럼 개인주의가 정착해 가는 자연스런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현실과 인식의 괴리다. 정부 정책이 결혼과 출산 등 공동체 중심의 시스템을 방어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입안을 뒷받침할 연구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마케팅 차원의 민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지주가 3년째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한국 1인 가구 보고서’를 내놔 눈길을 끌고 있다.

정인 1인가구 연구센터장은 “저출산 문제 해결이 시급한 정부로서는 다인 가구 중심의 정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이를 이해하지만 1인 가구 증가세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이들이 겪는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어야 결혼과 출산 등 미래에 대한 설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의 발간 배경이 궁금하네요. 애로점은 없었나요.
“올해로 세 번째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첫해인 지난 2017년에는 일(1)코노미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었죠. 당시 KB금융그룹 자회사인 KB국민은행에서도 1인 가구에 특화된 예·적금과 전세자금 대출 등을 묶은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수혜 업종을 묶은 펀드 상품도 포함됐었죠. 저희 연구의 경우 애초에는 마케팅 목적이 컸지만, 화제성만큼 관련 상품들이 많이 판매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수익성만 놓고 보면 기대에 못 미쳤던 거죠. 하지만 1인 가구의 증가세는 피할 수 없는 추세고,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공익성에도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민간 금융사로서 수익성 문제를 간과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국내 금융사 가운데서 1인 가구 특화 상품을 브랜드화한 것은 KB금융이 처음이었죠. 경쟁 금융사들의 경우 개별 상품 위주로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패키지 형태로 판매 중인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합니다. 이미 출시된 상품의 경우 기본 틀은 유지되지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도 하고 있고요. 반면 유통과 식음료 등 제조업체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들이 출시돼 많은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가까운 대형마트만 가 봐도 개인화, 소량화, 가성비를 중시하는 트렌드를 금세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금융 영역은 좀 다릅니다.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일회성 소비재가 아닌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특히 1인 가구의 경우 모든 경제적 판단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연령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1인 가구의 경우 경제적 여건이 급속히 개선되기 힘들다는 부분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들의 경우 주로 주거 문제만 해결되면 소비 여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큽니다. 분명한 점은 1인 가구의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며, 개인화 경향은 갈수록 짙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소비시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2030대와 달리 40대 1인 가구의 경우 ‘경제적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점도 나름의 시사점을 주고 있죠.”
[Special] “나홀로族 증가…금융도 개인화 주목”
연령별 외에 두드러지는 성별 특성을 소개해주신다면.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전 연령대에서 여성 1인 가구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20대 남성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1인 가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대 남성들의 결혼 의향이 유독 낮아지는 현상도 발견되고 있죠. 젊은 세대의 불안한 경제 여건이 주된 원인으로 보이는데, 갈수록 심화되는 남녀 갈등 역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물론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따라서 향후에는 이들 젊은 층의 인식 변화와 관련된 조사도 심도 있게 진행해볼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사회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20대이기도 하죠. 기업들 입장에서도 이들 젊은 세대의 생각과 의식 변화에 따라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 보고서에는 이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이네요.”

1인 가구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일코노미에 대한 관심은 많이 사그라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1인 가구를 둘러싼 관심이 생각보다 빨리 식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개인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최근 경제 부진 여파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반적인 경기 부진으로 소비가 많이 위축됐는데, 특히 경제 여건이 불안정한 1인 가구의 경우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들이 1인 가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욜로(YOLO)’ 트렌드에 기댄 새로운 소비문화였죠. 하지만 단순히 ‘혼족’, ‘혼밥’ 등과 같은 딱지를 붙이고, 1인 가구의 속성만 반영해주면 알아서 사주겠지 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상품화 과정에서도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거죠.
이를테면 다인 가구의 경우 주거, 양육 등 생애 주기별로 유사한 패턴을 보이지만, 1인 가구들은 주거 문제만 해결되면 나머지 기간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연령·소득별로 다양한 니즈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기존의 표준화된 상품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되는 거죠. 금융상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 금리, 수익률뿐 아니라 그들의 취향과 기호를 파악해 부가서비스를 내놔야 합니다. 금융 영역 역시 개인화 역량이 중요해지는 거죠. 그렇다고 대단한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잠재고객 발굴 차원에서 가용할 수 있는 최대 범위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그런 혜택이 결국 금융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충성고객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죠.”

1인 가구를 비롯해 젊은 층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몰리면서 긴장하는 은행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편의성을 핵심 무기로 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공격적인 이벤트까지 내놓으며 고객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상품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도 분명하죠. 반면 주요 시중은행의 경우 카드, 보험, 캐피털, 증권 등 다양한 비은행 계열사들의 상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공할 수 있는 혜택도 다양하겠죠. 특히 1인 가구의 경우 스스로 불안을 느끼다 보니 보험 니즈가 많은데, 결국 보험을 비롯해 모든 금융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이 금융그룹 형태를 갖고 있는 시중은행이죠.
다만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 우위를 위해서는 과감해질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1인 가구의 경우 주유 등의 일반적인 카드 혜택보다는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 할인 혜택에 대한 수요가 크게 높죠. 또한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만을 위한 생활정보 콘텐츠는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올해 조사에서도 1인 가구들은 주거 등 생활 설계 포털에 대한 니즈가 높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시중은행들 역시 완성도 높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있지만 핀테크 업체들에 비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중은행들 입장에서 쉽지 않은 문제이고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실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은 1인 가구들이 전통 은행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등 핀테크 업체들로 흡수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기존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이 같은 고객 이탈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해 보입니다. 올해 보고서에도 적시했지만 ‘토스’나 ‘뱅크샐러드’의 경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우 높은 호응도를 나타냈습니다. 반면 각 은행들이 내놓은 자산관리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의 경우 인지도가 상당히 낮았죠.
이런 반응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의 효과죠. 핀테크 업체들의 경우 전통 은행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젊은 층과 1인 가구들을 주 타깃으로 상품과 서비스 중심의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데 반해,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브랜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자산은 많지 않지만 관리는 받고 싶고, 또 정보에 대한 니즈는 크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찾기 어렵다는 게 1인 가구들의 목소리죠. 사실 은행들이 내놓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이런 목적에서 출시됐는데 잘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장은 수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방치한다면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 고객들을 모두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거죠.”

1인 가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특별하게 느낀 부분이 있다면.
“‘외롭고 우울하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1인 가구가 스스로 느끼는 자아상은 생각보다 긍정적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노년층을 제외하고 1인 생활을 시작하는 계기 역시 자발적인 경우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죠. 올해 설문조사에서 확인된 인식 변화 역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유럽 등 해외 선진국처럼 1인 생활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죠. 1인 생활을 생애주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는 거겠죠.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1인 생활을 선망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 특히 사생활을 중시하는 개인화 성향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다인 가구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1인 가구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오히려 활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1인 생활을 시작했지만 주거 문제 등에서 애로를 겪게 되면 결혼과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같은 맥락에서 이런 1인 가구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소비 증가에 따른 경제 활성화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출산율 증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은퇴 준비 역시 1인 가구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입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 일본과 달리 1인 가구 증가세가 급격하다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다인 가구에 비해 1인 가구들이 예상하는 은퇴 시기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죠. 다인 가구의 경우 자녀 부양 등을 이유로 65세 정년 채우기를 희망하지만, 1인 가구는 이보다 4년여가량 빠른 61.3세를 은퇴 시점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성 1인 가구의 경우 평균 50대 후반을 은퇴 시점으로 보고 있죠. 노후를 좀 더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인데, 정년을 채우지 못할 것 같다는 현실적 불안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후 준비도 다인 가구와 달라야 합니다. 다인 가구의 경우 노후 준비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주택연금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1인 가구의 경우 자가 비율이 현저히 낮아 쉽지 않습니다. 이들의 경우 주택 구입 의향이 높지만 아파트 분양 등에서는 불이익을 받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죠.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없는 이상 결국 1인 가구는 금융자산, 축적을 통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