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레드카드 꺼낸 선진국들
40년 가까이 견고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유류분 제도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과연 세계 각국은 유류분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민법은 유언의 자유를 인정해 피상속인으로 하여금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의사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유언자유의 원칙을 무제한으로 관철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폐단을 방지하고자 유류분 제도를 규정함으로써 피상속인에 의한 재산 처분의 절대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유류분 제도는 상속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공동상속인 간의 공평을 유지한다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그 ‘경직성’으로 인한 역기능도 없지 않다. 현재에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경우와 같이 상속 결격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유(민법 제1004조)가 없는 한, 설령 상속인이 고의로 피상속인을 부양하지 않은 경우에도 예외 없이 상속인에게 유류분권이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일률적인 유류분의 보장은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게 유류분과 유언의 자유를 조화시킨다는 관점에서 유류분 제도를 어느 정도 ‘유연화’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 유류분 박탈 제도 운영
실제로 세계 각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그러한 유연화의 일환으로서 유류분 상실에 관한 규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독일 민법(제2333조 제1항)에서는 직계비속이 피상속인에 대해 법률상 부담하는 부양의무를 악의적으로 위반한 때에 피상속인이 유언과 같은 의사 전달에 의해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스위스 민법(제477조)도 상속인이 피상속인 또는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에 대해 중죄를 저질렀을 때, 상속인이 피상속인이나 그 친족에 대해 부담하는 친족법상의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을 때에는 피상속인이 유언 또는 상속 계약과 같은 사인처분(死因處分:행위자가 죽은 뒤 효력이 생기는 법률 행위)에 의해 상속인의 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역시 민법(제768조)에서 자녀가 피상속인을 곤궁한 상태에서 도움 없이 방치한 때에는 피상속인이 자녀의 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피상속인이 유언 또는 상속 계약에 의해 상속인을 지정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정상속인이라도 피상속인에 의해 상속에서 배제되면 법정상속인이 될 수 없고 다만 유류분권만을 가지게 되는데, 피상속인의 의사에 의해 이들의 유류분권까지 박탈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일본은 상속인 폐제(廢除) 청구 가능
그렇다면 우리와 같이 상속인 지정 제도가 없는 일본 민법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류분 박탈 제도를두고 있지는 않으나, 우리와 달리 법원의 재판에 의해 추정상속인(상속이 개시된 경우에 상속인으로 될 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는 폐제(廢除) 제도를 두고 있다.

즉, 일본은 민법(제892조)에서 유류분을 가지는 추정상속인이 피상속인을 학대하거나 중대한 모욕을 가한 때 또는 추정상속인에게 현저한 비행이 있는 때에는 피상속인이 그 추정상속인의 폐제를 가정재판소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동법 제893조는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추정상속인을 폐제하는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유언집행자는 그 유언이 효력을 발생한 후 지체 없이 그 추정상속인의 폐제를 가정재판소에 청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당연히 상속 자격을 상실하는 상속 결격과는 별개의 제도다.

피상속인에게 패륜 행위를 한 자녀가 버젓이 다른 공동상속인이나 제3자에게 유류분권을 행사해 유류분을 반환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정의 관념에 반한다.

패륜 행위를 한 자녀에게 적어도 유류분 반환 청구는 할 수 없도록 유류분 박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만, 유럽 3국과 같이 단지 피상속인의 유언만으로 유류분을 박탈시킬 수 있도록 한다면 피상속인의 자의적인 처분이 행해지거나 유류분 박탈 사유를 둘러싸고 분쟁이 커질 수 있으므로 일본과 같이 법원의 재판을 거쳐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구태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