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속인·상속인 600명 설문조사

[big story]부모·자녀의 상속 ‘동상이몽’
성공적인 상속 플랜 수립에 앞서 부모와 자식 간 상속에 대한 고민이 궁금해진다. 한경 머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대 상속 고민으로 부모가 ‘가족 갈등’을 꼽은 반면에 자식들은 ‘돈(세금)’을 선택했다. 결국 가족들의 상속 고민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것일까.

상속·증여 문제에 있어 피상속인(부모)은 갑(甲)에 속한다. 부모의 결심 없이는 생전에 을(乙)인 상속인(자식)이 상속재산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상속을 위한 유언장 작성에서부터 사전증여를 포함한 구체적인 상속 플랜의 수립까지 오로지 부모 몫의 숙제다.

그렇다고 자식들 입장에서 상속에 대해 무작정 방관하자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노령의 부모가 죽기 전까지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물려주면서 가족 간에 갈등을 겪는 노노상속(老老相續)이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상속 플랜 수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와 자식 간 상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경 머니는 리서치 전문 업체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부모(50·60·70대 각각 100명씩)와 자녀(20·30·40대 각각 100명씩) 총 600명을 대상(남녀 비율 5대5)으로 5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에 걸쳐 상속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부모, 자녀 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범위 ±5.7%)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가족 간에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상속의 고민들을 들어봤다.

상속 고민, 부모 ‘가족 갈등’·자식 ‘세금’
예로부터 자식 기르는 것을 농사에 비유해 ‘자식농사’라고 했다. 그만큼 자식을 잘 키워내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는 소리다. 자식농사의 마무리는 상속이다. 좋은 학교와 직장에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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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 사후에 재산을 놓고 자식들 간에 피도 눈물도 없는 상속 갈등을 겪는다면 죽어서도 눈을 편히 감을 수 없을 것이다.

한경 머니의 세대 간 상속 문제 설문조사에서 ‘상속 관련 최대 고민거리’로 부모 중 44.3%가 ‘가족 갈등’을 꼽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50대(43.0%), 60대(45.0%), 70대(45.0%)의 부모들이 모두 ‘가족 갈등’에 대한 고민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다만 남성의 48.7%가 ‘가족 갈등’을 꼽은 반면 여성은 ‘세금 문제’(42.7%)를 ‘가족 갈등’(40.0%)보다 중요시했다. 부모들이 그다음으로 꼽은 고민거리는 세금(38.3%)이었으며, 경영권·재산 유지(9.0%), 자녀 교육(6.7%) 등의 순으로 고민을 털어 놨다.

반면 자식들의 최대 고민은 ‘세금’(42.7%)이었다. ‘가족 갈등’(40.3%)이나 ‘경영권·재산 유지’(7.7%)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세금 문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세대는 40대(46.0%)였으며, 30대(39.0%)나 20대(43.0%)보다 높게 나타났다. 재밌는 대목은 부모세대와는 달리 자식세대는 남성이 ‘세금’(45.3%)을, 여성이 ‘가족 갈등’(44.7%)을 최대 고민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자식세대의 고민은 일면 이해가 간다. 부모의 사후에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납부해야 할 당사자가 바로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예로 들면 30억 원을 초과하면 50%까지 누진세율이 적용되며, 각종 세제 지원을 적용하더라도 30%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데 세금 낼 재원 마련이 골칫거리인 것이다.

사전증여가 답일까? 망설이는 부모들
사실 상속재산이 10억 원 미만이라면 상속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에서 중산층의 상속세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신 경우 최소한 10억 원, 한 분만 생존해 계시다가 돌아가신 경우 최소 5억 원을 공제해주기 때문.
다만 여기서 5억 원 또는 10억 원은 상속인별로 상속 받은 재산에서 각각 공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피상속인의 소유 재산 합계액에서 한 번만 공제된다.

문제는 상속재산이 공제액을 훌쩍 넘어선 경우인데 이때 절세 전략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팁이 바로 사전증여다. 우선 2014년 1월 이후 증여분부터는 배우자에게는 6억 원, 자녀에게는 5000만 원(미성년자인 경우에는 2000만 원)의 범위 내에서 증여를 하면 증여세를 내지 않고서도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 또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10년 전에 증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속세 계산 시 합산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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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세대 모두 가장 선호하는 상속 방법으로 주저하지 않고 ‘사전증여’를 꼽았다. 부모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9.6%가 ‘사전증여’를 선호했으며, ‘유언장 공증’(36.0%), ‘유언대용신탁’(5.7%), ‘재산 기부’(4.7%) 등이 뒤를 이었다. 자식세대는 55.0%가 ‘사전증여’를 선호했다. ‘유언장 공증’(30.0%)이나 ‘재산 기부’(5.0%), ‘유언대용신탁’(4.3%)은 뒤로 밀렸다.

문제는 복잡한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들에게 ‘상속·증여의 구체적인 시기’를 묻자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답이 61.0%나 나왔다. ‘5~10년 후’(19.0%)나 ‘10년 이후’(17.0%)는 상대적으로 소수의견이었다. ‘사전증여 등을 이미 진행했다’(0.3%)나 ‘현재 사전증여 등을 진행하고 있다’(2.7%)는 의견 축에도 끼지 못했다. 특히 ‘사전증여 등을 이미 진행했다’고 답변한 50대와 60대는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사전증여 시 자녀 홀대를 우려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한 부모가 39.0%나 됐다. 자신 없게 ‘잘 모르겠다’고 답한 부모도 33.0%나 됐으며, ‘아니다’라고 확신을 가진 28.0%는 소수의견이었다.

가족 위한 유언장도 상속 플랜도 없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가족과 형제도 없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자산가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뒤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됐는데 유언 한 마디 제대로 남기지 못해 남은 재산은 제대로 주인도 못 찾고 흩어졌다. 시중은행 웰스매니지먼트(WM)부문의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처럼 의외로 자산가들 중에는 유언장을 제대로 남기지 않아 사후 골치를 썩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한경 머니의 설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부모세대에게 유언장 작성 여부를 물은 결과 46.0%가 ‘유언장 작성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답변은 1.0%에 불과했다. ‘죽기 직전에 작성하겠다’(37.0%)와 ‘빠른 시일 내에 작성하겠다’(16.0%)는 답변은 그래도 ‘양반’인 것이다.

자식들에게는 ‘부모의 유언장 작성 인지 여부’ 물었다. 답변이 가관이었다. ‘유언장 여부를 알지 못한다’가 88.0%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근시일 내에 작성할 것으로 안다’(7.3%)와 ‘부모님이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다’(4.7%)는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유언장의 연장선상인 ‘가정의 상속 플랜 유무’와 관련해서는 부모들은 55.7%가 ‘없다’고 답했으며, ‘있다’(23.0%)와 ‘잘 모르겠다’(21.3%)가 그 후순위였다. 자식들은 ‘상속·증여 플랜 유무’에 대해 부모보다 한 술 더 떠 64.0%가 ‘없다’고 말했으며, ‘잘 모르겠다’와 ‘있다’는 각각 25.3%와 10.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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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언장은 분쟁 없는 상속을 위한 첫 단추와 같다. 하지만 이번 설문 결과를 보면 절반에 가까운 부모들이 ‘유언장 작성 계획이 없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9명에 가까운 자식들이 유언장 여부를 알지 못하는 등 심각한 현실을 보여줬다.

유언은 법에 정해진 5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식이 있는데 그 요건이 엄격해 자필증서의 경우 유언장의 작성 연·월·일과 유언자의 주소 또는 생활 근거지, 유언자의 이름, 도장 또는 지장이 꼭 포함돼야 한다.

최근에는 유언대용신탁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상속 설계에 있어 각종 계약 옵션을 걸고 여러 세대에 걸쳐 수증자를 지정할 수 있는 등 유언장에 비해 유연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송할 수 있다’ 16.7%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보통 부모들이 자식을 아끼는 마음을 표현할 때 쓰는 물음표다. 그렇다면 상속과 관련해 부모와 자식의 속마음도 그럴까.

부모들은 ‘상속 시 자녀 차별’에 대해 압도적으로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겠다’(63.3%)라고 답했으며, 이는 자식들에게 물은 ‘상속 시 자녀 차별에 대한 생각’에서 ‘아들과 딸의 상속지분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에 59.3%가 몰린 것과 유사했다.

다만 ‘아들에게 상속지분을 더 줘야 한다’고 답한 부모는 14.7%, 자식은 11.0%인 반면 ‘딸에게 상속지분을 더 줘야 한다’는 답변은 부모가 1.7%, 자식이 2.0%로 미세한 차이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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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게 상속 우선권이 주어져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부모와 자식 모두 ‘형제간 형평성이 우선’에 각각 56.7%와 43.7%로 다수 의견을 보였으며, ‘부모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다’라는 답변도 부모와 자식이 각각 18.0%와 32.3%로 높았다.

덧붙여 부모의 속내를 더 알기 위해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자식 유무’를 물었는데 ‘없다’는 답변이 72.7%로 다수를 보였지만 ‘있다’는 답변도 27.3%가 나와 부모 10명 중 3명 가까이가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자식이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자식들도 ‘상속인들 간 상속 배분에 불균형 존재 시 유류분(상속인 간 공평 도모를 위해 법률상 보장돼 있는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청구 소송을 진행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해진 상속재산 배분에 따를 것이다’라는 답변이 50.0%로 가장 우세했으나, ‘유류분청구 소송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자식도 10명 중 1~2명꼴인 16.7%에 달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부모가 상속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려 할 시 행동’에 대해서는 자식들의 52.7%가 ‘부모의 뜻을 무조건 따른다’고 답했는데, 뒤를 이어 ‘상속재산 기부를 반대한다’고 답한 자식도 26.0%나 됐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 관련 소송의 급증세를 보여주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만 두고 보면 상속 관련 사건은 3만301건에서 3만7002건으로 늘었고, 상속재산분할청구는 2010년 435건에서 2014년 771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상속재산분할청구 건수는 2015년 잠정치 1008건으로 2010년과 비교해 2배 넘게 치솟았다. 상속인 간 상속재산 다툼인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의 경우도 2010년 452건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811건, 2015년 911건(잠정치)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소통 없는 상속, 분쟁 불씨 키우나
부모와 자식 간에 상속 문제와 관련해 충분한 소통은 이뤄지고 있을까. ‘가족 간 상속 문제와 관련된 소통’을 묻는 질문에 부모는 52.7%, 자식은 56.7%가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가끔 대화를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부모 27.7%, 자식 24.0%)라는 답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소수의견이지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의견 충돌이 있다’(부모 3.0%, 자식 2.6%)는 답변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다소 놀라운 것은 소통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상속 분쟁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율배반적 태도다. ‘가족 간 상속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부모 58.7%, 자식 66.7%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다소 낙관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big story]부모·자녀의 상속 ‘동상이몽’
‘상속 관련 정보를 얻는 주요 통로’와 관련해서는 부모와 자식 모두 ‘방송, 미디어’를 각각 50.0%, 47.0%로 가장 우선적으로 꼽았으며, 뒤를 이어 부모는 ‘주변 지인’(33.3%)을 ‘가족’(9.3%)보다 먼저 꼽은 반면 자식은 ‘가족’(22.3%)을 ‘주변 지인’(19.3%)에 앞서 선택했다.

‘상속을 앞두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을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부모는 88.7%(당분간 없다 60.0%, 없다 28.7%)가 회의적인 답변을, 자식은 91%(당분간 계획 없다 52.3%, 없다 38.7%)가 무관심을 표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