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컨설턴트가 바라본 오만

오만은 기업의 흥망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다. 기업에서의 오만은 성공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성공한 기업 경영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만에 빠지게 된다. 수십 년간 글로벌 기업들의 혁신 컨설팅을 해 온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인스튜티드 대표가 바라본 오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편집자 주>
[special forum]기업은 왜 오만해지는가
기업의 성장은 혁신적인 소수의 인원(creative minority)이 이끈다. 하지만 규모가 큰 기업으로 성장하면, 성공한 경영자는 기업을 성공으로 견인한 자신의 능력이나 방법을 지나치게 믿어 ‘자만과 오만’에 빠진다. ‘자만과 오만’에 빠진 경영자는 경영상에 중대한 판단 착오를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기업은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이것이 성공한 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근본 원인이다. 이런 부질없는 자기 과신의 행동과 태도를 아널드 토인비는 ‘휴브리스(hubris, 오만)’라고 불렀다.

‘휴브리스에 빠진 인간’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조직에서 나타나는데, 기업의 경우 이런 경영자가 결정권자로 경영 활동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영자가 경영적 판단을 잘못하는 요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트라우마(trauma)’와 ‘휴브리스’다. 경영 활동 과정에서 실패한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경영상 현안을 결정하는 데 두려움을 갖게 한다. 반대로 성공한 기억은 ‘휴브리스’로 변질돼 잘못된 판단을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조직을 망하는 길로 몰고 간다.

트라우마 vs 휴브리스
기업에서의 휴브리스는 ‘인격적 휴브리스’와 ‘경영적 휴브리스’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인격적 휴브리스는 권력의 논리와 인간의 심리에 의해 발생한다. 권력의 논리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특히 절대 권력은 반드시 썩어 몰락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권력은 왜 부패하는가. 쉽게 설명하자면 조직의 권력자는 ‘남’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만드는 자리다. 필요에 따라 조직원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억제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강요한다. 이러니 조직원들은 권력자 앞에서 막연한 두려움에 떨며 아부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못하는 것은 물론, 우습지 않은데 웃기도 하고, 슬프지 않은데 울기도 한다. 반면 권력을 가진 자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이런 환경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감이 자만으로 변질되고, 자만은 인격적 오만으로 변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경영자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혁신 활동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외면상으로는 건전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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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마찬가지다. 주변의 반대 의견 없이 아부꾼과 예스(yes)맨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권력의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만과 오만으로 인해 ‘자기 과잉’이 되고 주위가 보이지 않는 성격으로 바뀌는 일종의 ‘인격 장애의 인간(personality disorder)’으로 변한다. 인격적 휴브리스는 회사가 망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조직의 침체를 가져와 간접적 몰락을 유도한다.
경영적 휴브리스는 한때의 성공 경험에 기인한다. 과거 몇 번의 성공 경험이 ‘자신의 탁월한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성공’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능력과 방법에 스스로 절대적인 믿음을 보내는 증상이다. 자기 확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당연히 남의 의견과 충고를 듣지 않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경영자들의 ‘패턴 인식’ 때문이다. 패턴 인식이란 인식의 패턴이 고정화돼 있다는 의미다.

경영상의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는 처해진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답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매 사안마다 독립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패턴 인식에 의해, ‘나는 직접 해보고 성공했다. 따라서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머무른다.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결정하는 오만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경영적 휴브리스(business hubris)’며, 기업이 망하는 주원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기업이 어떻게 휴브리스에 빠져 망하게 됐는지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기업이 노키아다. 노키아는 애플에서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 나오기 2년 전에 이미 터치스크린폰을 내놓았다가 시장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과 후임 최고경영자(CEO) 올리페카 칼라스부오는 애플의 스마트폰이 나오자 터치스크린폰은 지난 경험으로 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실패한 경험에 의존한 ‘패턴 인식’에 따른 것이다. 결국 노키아는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스마트폰 개발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위기를 자초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키아가 지속 경영의 동맥인 혁신 활동을 게을리한 기업은 아니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상당 수준의 혁신 운동을 전개해 왔다. 노키아 경영진이 10년간 회사의 운명을 걸고 전사적으로 추진한 혁신 프로그램인 ‘전략적 로드맵(strategic road map)’이 대표적이다. 6개월마다 4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지식과 경험을 함께 논의하는 프로그램이다. 임원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일반 직원들까지 모두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토록 했다. 작은 벤처기업이 아닌 12만 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공룡 조직’ 노키아에서 꾸린 대단한 혁신 조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키아는 체계적 혁신 활동과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OS)인 심비안 및 미고의 연구·개발(R&D)비로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R&D와 혁신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실행력이 매우 강한 혁신 기업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경영진과 달리 비즈니스 게임 규칙(game rule)의 변화를 감지한 개발진들은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을 개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당시 CEO는 “우리가 휴대전화 시장의 41%를 차지하고 있고, 14년이라는 오랜 기간 1등이라는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라며 “우리가 정한 것이 시장의 표준이다”라는 경영적 휴브리스 사고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한국, 중국 등 저가폰의 공세가 본격화된 데다 가격 경쟁을 위해 개발비 절약이 급선무였던 터라 개발비가 안 드는 피처폰(일반폰)만을 계속 생산하는 ‛비용 관리’를 중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노키아는 2007년 아이폰이 선풍적 인기를 끌자 2008년 허둥지둥 따라가는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그러나 신속한 R&D 인력의 보강에 실패하며 추격 전략(fast follower)은 실패했다. 그런데 노키아와 삼성전자가 동시에 추격 전략을 추구했으나 삼성은 애플의 대항마로 자리 잡게 됐고, 노키아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이유는 뭘까. 추격자 전략을 채택하는 기업이 성공하려면 핵심적인 개발 엔지니어들을 단기간에 동원해 ‘돌관 작업(break through)’을 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 역량이 최대 관건이 된다.

그런데 노키아 같은 유럽의 전통적인 기업이 근로 조건을 전부 준수하면서 개발 속도를 2배로 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노키아는 최전성기인 2006년, 칼라스부오가 CEO가 된 후 휴브리스가 만연했고 관료주의 현상이 본격화됐다. 법률·회계 전문가인 칼라스부오는 어떤 사업을 하든 ‘비용 관리’를 제1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개발 인력이 많이 위축돼 있었다. 당연히 기술 개발 능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므로 기존의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없었다.
소니와 같이 역사가 길고 크게 성공한 기업이나 사람일수록 자기 나름대로 성공 방식이 고정화돼 있기 때문에 오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소니는 1968년 트리니트론(trinitron) 방식의 브라운관을 개발해 순식간에 TV 시장을 장악했다. 1개의 전자총으로부터 3개의 전자빔을 내는 방식으로, 기존의 브라운관보다 화질이 훨씬 좋았다. 이 기술로 브라운관 TV의 원조인 미국 RCA를 무너뜨렸다. 소니는 1996년 평면 브라운관을 개발해 ‘TV 하면 소니’라는 명성을 얻어 세계 시장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휴브리스를 불러들였다. 삼성, LG 등 한국의 경쟁사들이 빠르게 액정표시장치(LCD) TV로 전환하며 도전장을 내민 데 반해 소니는 평면 브라운관을 고집했다.

‘소니가 만들면 세계 표준이 된다’는 휴브리스적 사고가 노키아와 마찬가지로 위기의 원인이 됐다. 또한 혁신적 디자인의 ‘워크맨’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자부심이 오만으로 변질돼 애플의 아이팟 등 MP3플레이어에 대해서도 대비하지 못하고 음악 시장을 애플에 내주었다. 소니는 2000년대에 브라운관의 퇴조를 인정하고 뒤늦게 방향을 전환했지만 핵심 부품인 LCD 패널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삼성 등으로부터 핵심 부품을 공급받는 처지가 됐고, 결국 삼성과 LG에 발목이 잡혔다. 이 때문에 TV 부문은 8년간 연속 적자를 내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세계적 거대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면 전혀 몰라서 당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금, 기술, 인재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특정한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변화하는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노키아나 소니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정보도 있었으며, 경쟁자가 누군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만에 빠지면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오랜 시간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뛰어난 기업들을 보면 휴브리스에 빠져 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휴브리스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영자는 제로베이스 사고(zero-base thinking: 사전적 의미는 ‘0’의 상태, 즉 처음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생각해본다는 뜻. 예전 경험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방법이다)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로베이스 사고는 패턴 인식을 바꾸어주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휴브리스적 사고를 방어할 수 있다. ‘제로베이스 활동’을 해 온 기업은 변화에 민감한 특징을 가지게 되며 내적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외적으로는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지니게 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휴브리스가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활동 이전에 중요한 점은 휴브리스에 빠지기 쉬운 성격의 소유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CEO가 휴브리스에 빠져 기업이 멸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휴브리스에 빠지기 쉬운 성격 부적격자를 사전에 ‘결정권자의 자리’에 두지 않는 게 상책이다. 성격에서 ‘자아도취의 경향’이 있거나, 무슨 일을 하든 심하게 자기를 드러내보이려고 한다면, 일단 관찰이 필요하다.

또 평상시 이미지나 외견에 신경을 쓰고 자기과시를 하려고 하거나, 자기의 판단에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지적을 우습게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부적격자들이다. 휴브리스는 질병이 아니므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의 멸망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갑자기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멸망 직전에 징후가 나타난다. 종업원들의 과거 성공에 대한 ‘안주’, ‘무사안일’, ‘오만한 자세’나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 등등. 하지만 휴브리스에 빠진 경영자는 이런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다.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고를 무시한다. 결국 파멸을 맞이하고야 만다. 그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원흉은 휴브리스다.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인스튜티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