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44호 (2017년 05월)

천 가지 얼굴, 정원의 재발견

정원은 위로와 격려의 공간이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푸르른 5월의 녹음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이 자연을 일상에 들이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가 바로 정원이다.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해 보려는 노력은 지면 안에 정원을 들임으로써 정원 감성을 깨우려는 시도다. 감성의 회복은, 우리가 상실한 인간다움으로 가는 길이면서 미래 사회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도움말 최종희 배재대 생명환경디자인학부 교수 | 참고 서적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 영화 속 정원 이야기
광활한 우주 공간 속 나무 한 그루의 의미는?
우주선 아발론호는 지구의 삶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싣고 항해하는 최첨단 우주선이다. 모튼 틸덤 감독의 영화 <패신저스>에서 신세계에 해당하는 개척 행성은 120년 후에나 닿을 수 있는 ‘미래’다. 우주선에 오른 5852명이 모두 잠들어 있는 가운데, 예정된 120년의 동면을 깨고 두 남녀 짐(크리스 프랫 분)과 오로라(제니퍼 로렌스 분)가 90년 일찍 깨어나 우주 미아가 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담고 있다.
짐이 처음 깨어난 것은 기계의 오류 때문이었다. 이때 홀로 1년 넘게 고독과 사투를 벌이던 짐이 아더에게 던진 한 마디는 첨단 디지털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아더, 자넨 기계야. 넌 아무것도 못 느끼잖아. 왜냐하면 인간이 아니거든.” 결국 그는 잠들어 있던 오로라의 동면 장치에 손을 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꿈꾸던 미래가 좌절되고 상처받은 남녀가 마주한 땅에 솟은 한 줄기 희망의 상징이 바로 나무다. 짐은 어느 날 우주선 중앙 홀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기계로 둘러싸인 회색 공간에서, 앞이 캄캄한 그곳에서 짐은 푸르른 나무를 키웠다. 나무는 오로라의 ‘지구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패신저스>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아발론호의 중앙 홀이다. 88년 후, 동면에서 깨어난 승무원들이 중앙 홀에 입장하면서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이 유독 환한 빛으로 표현된다. 나무가 있던 자리는 울창한 숲이 돼 있었다. 푸른빛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연못, 닭과 새가 생동하는 정원이었다.

정원은 위로와 격려의 공간이다
서두에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영화 속 우주선의 현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꽤 닮아 보여서다. 단절되고 고립된 우주선의 공간은 기계화, 시스템화된 첨단 산업 사회 축약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징이 바로 관계의 단절이다. 생산과 효율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삶의 여유를 상실해 가는 사람들. 관계의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은 차라리 스스로 고독을 자처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전통적인 관계는 파괴돼 가는 반면 디지털 환경에 의해 인간관계가 재편돼 가고 있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필연적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자연적 존재인 인간이 기술적 환경에 적응하며 더욱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두 환경의 간극에서 결핍과 상실감은 더해 갈 것이다. 많은 걸 갖췄지만 텅 빈 마음, 인정 욕구와 고독, 외로움과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 분노와 우울함 등 현대인의 삶을 힘들게 하고 목마르게 하는 삶의 파편들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영화 속 나무 한 그루가 필요해 보인다.
신상규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말했다. 현대인의 마음을 만질 자신만의 공간으로 정원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첨단 디지털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결핍과 외로움이라면, 정원은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져 가는 인간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상징적 공간에 해당한다. 정원은 나의 본질을 찾는 행위이며, 자연으로부터 위로 받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다.
정원의 사전적 의미는 울타리 안에 들인 자연이다. 자연을 생활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품는 것으로, 자연인 동시에 문화다. 미적으로 아름다운 경관이며, 그 시대의 문화적, 철학적, 심리적 욕구가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이다. 예를 들어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정원의 역사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공중 정원(hanging gardens)에서 로마 및 이탈리아의 노단식 정원, 프랑스의 평면 기하학식 정원, 영국의 자연 풍경식 정원 등의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왔다. 이슬람 정원과 한국·중국·일본 정원도 자부심의 역사를 써 왔다. 시대정신과 문화를 담은 채 문화유산으로서의 정원이 됐다.
일찍이 프란시스 베이컨은 정원을 가리켜, “인간의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다”라고 표현했다. 철학자들은 정원을 사랑했다. 철학 탄생의 순간에 정원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 리케이온,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는 모두 숲에 자리했고, 그들은 이곳을 거닐면서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특히 식물과 꽃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동양에서 사람이 죽은 후 하늘의 별이 된다는 표현이 있다면, 그리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꽃이 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학교를 연 날로부터 700년이 흘렀을 때, 플라톤주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느 정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고백론>을 통해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로 뛰어 들어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작가와 정원 또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많은 작가들은 정원에 살며 영감을 얻었고 정원에 대한 글도 적지 않게 남겼다. 제인 오스틴은 시골집의 정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안락함을 누렸고, 식물 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글씨기에 녹여 냈다. 헤르만 헤세도 정원을 가꾸며 자연에 대한 글과 그림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실제로 작가들이 기거했던 작가의 정원 가운데 영국의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은 영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원으로 알려진다. 영국 정원의 코티지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시싱허스트는 20세기 초 활동한 레즈비언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와 게이 귀족 남자 해럴드 니콜슨이 사랑과 우정을 간직한 장소다. 각자의 애인을 따로 둔 채 부부로 사는 독특한 관계를 맺으며 정원을 가꿔 온 배경 때문인지, 정원에 들어서면 서로 다른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토리가 있는 정원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여름을 대표하는 하얀 꽃의 향연, 화이트 정원이 백미로 꼽힌다.

영국 시싱허스트 화이트 정원. 사진은 유럽,정원을 거닐다, 글항아리.


정원으로 보는 동양의 사상과 정서
동양에서도 정원은 예로부터 삶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사상과 수도, 정적인 정서와 마음의 위안을 강조하는 동양의 정원은 중국에서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영향을 끼치며 비슷하지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 당시 사람들의 종합적 삶의 표현과 역사성이 고스란히 정원에 녹아 있다.
정원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물, 흙, 식물, 돌. 그중에서도 식물이 중요한 요소로 꼽히곤 한다. 인간이 만든 터에 자연을 다시 살리고자 시작된 정원 가꾸기는 정원에 도입된 식물과 이것들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나름의 흐름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 식물은 하나하나 상징을 지닌다. 이를 통해 옛 선조들의 가치를 읽어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대나무는 강인함을, 소나무는 장수와 인내를, 연꽃은 순수함을, 매화는 재생과 강한 의지를, 국화는 명예를, 작약은 부를 상징했다. 조선의 선비들이 대나무나 매화를 심는 것도 심성을 올곧이 하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 유행했던 파초는 잎이 큰 까닭에, 비가 올 때
‘파파파팍’ 소리가 난다.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실제 정원에서는 관리상의 문제로 인해 선호되는 수종은 아니라고 한다.
조선 선비들은 정원을 선비가 갖춰야 할 품격으로 바라봤다. 한국에서 정원은 주로 왕, 문인과 사대부들의 것이었다. 18~19세기로 오면 선비들에게 정원과 원예는 일반화된 취미 중 하나로 떠올랐고, 1800년대 후반 서울 사대문 안에는 3000여 개의 정원이 존재했다. 당시 선비들의 정원 사랑을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조선 후기에 성행한 <의원기>였다. 바로 상상 속 정원에 대한 저술로, 중인과 서인을 비롯해 비용과 출세 유무와 관계없이 마음껏 정원을 가질 수 있는 길이었다. 이원호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문인들의 이상향에 대한 관념이 상상 속 정원을 통해 표현된 것으로, 당시 정원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다”라고 말했다.
옛 그림 속에도 정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정원은 동양 미술에서 중요한 화제로 쓰였다. 중국에서 원림(園林: 거대한 중국식 정원)은 화제(畵題: 장르화된 주제)처럼 많이 그려졌다. 특히 명나라의 오파(吳派: 명나라 대표 화파)들이 원림을 주로 그렸고, 실제 그들이 활동했던 정자가 오늘날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조선의 옛 그림 속에도 한국 정원의 특징인 별서(오늘날의 별장) 정원과 정자가 많이 남아 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도시에서 군주를 모시고 백성을 계도하며 자연과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도로 별서 정원을 만들어 정자에서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감상했다. 바로 ‘차경’ 문화다. 또한 산속으로 들어가 고즈넉한 삶을 즐기는 은둔의 장소로도 정원이 쓰였다.

정원을 필요로 하는 사회
조선의 대표 화가인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호는 원림과 같은 동산 ‘원(園)’을 쓰고 있다. 홍선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김홍도가 자신의 집을 그린 그림을 보면 작은 정원이 있고, 당시 사대부들이 좋아했던 괴석, 작은 연못, 오동나무나 대나무 등을 표현했다”며 “단원이나 혜원은 원래 호를 붙일 만한 신분은 아니었는데 그만큼 시대가 많이 바뀐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대와 국가를 횡단하며, 정원은 동서양 모두에서 때에 따라 중요한 위치와 의미를 지녔고, 당시 사람들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하기도 하며 또 사상과 상징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유럽과 일본 등이 역사적인 정원 문화를 바탕으로 현대의 크고 작은 주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원 문화를 향유하며 정원 산업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비해, 한국은 근대 이후 ‘잃어버린 정원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활발했던 정원 취미와 상상으로까지 소유하고 싶어 했던 열망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다시, 정원을 얘기하는 건 ‘정원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한양의 삶에 지쳐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로 전국 각지에 별서 정원을 만들었다. 현대사회는 그때보다 더욱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시대다. 첨단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정원이 더 소중한 가치로 부상할 것이라는 근거다.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하는 체험의 공간으로 정원이 살아나야 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실린다. 김진국 문화심리학자는 “융심리학자들에게 나무와 울창한 숲은 생명과 부활의 상징이며 얀 반 아이크 그림에 자주 나오는 담으로 둘러싸인 ‘닫힌 정원(hortus conclusus)’은 지상의 낙원, 비밀스럽고 신성한 공간을 상징한다”며 “지친 현대인들이 심리적으로 생명과 부활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마음의 때를 벗길 수 있는 경건하고 신성한 공간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징과 철학이 없는 미학으로는 미래의 창의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원은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경우 처방전에 아스피린을 줄이는 대신 정원 산책이라는 항목이 추가되는 사례도 나온다. 앞서 정원의 가치를 알아보고 정원에 빠진 사람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얘기한다. “정원을 통해 전인격적인 힐링이 가능하다.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문학적 의미와 상징을 찾아가며 감상해야 진정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도 ‘정원 감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한국의 주거 환경에서 어떤 정원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여류 정원 작가인 에밀리 반스의 정원 가꾸기에서 작은 힌트를 얻어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가졌던 정원은 고구마 조각을 담근 자그마한 마요네즈 병에서 시작됐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의상실 뒤편에 있는 작은 방에서 자랐는데, 그곳은 화분을 내놓을 여유 공간도 없었다. 어머니는 빈 마요네즈 병에 물을 채워 이쑤시개를 얼기설기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가느다란 고구마를 한 토막 올려놓았다. 여름이 되자 작은 고구마 토막에서 움튼 줄기와 잎은 부엌의 창문에 커튼을 드리울 정도가 됐다. 고구마 정원은 보잘 것 없었던 작은 부엌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었고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도 이전과 달리 평온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느낌이었다.”
정원은 ‘엄마의 몸’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치인이든 문학가이든 정원은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고 자신의 앞마당이었다. 정원을 가꾸던 엄마의 삶에 대한 흔적, 기억, 순간적인 찰나의 감상들이 정원을 통해 살아난다. 예를 들어 과거 서울 가회동의 한옥마을에는 마당이 있었고, 봄이 되면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오전 10시 즈음 햇볕이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고, 화단과 화분에 심긴 난이나 진달래, 카멜리아, 동백꽃들을 보면서 감성과 기억과 추억이 뒤섞이는 그런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인생에서 남는 건 결국 사진이라고 한다. 때로 추억이 담긴 어떤 물건은 사진보다 훨씬 강력한 기억으로 각인된다. 정원에서 가족과 얽힌 추억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쉽게 퇴색되지 않는다.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적지 않은 수가 어린 시절의 정원과 관련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정원에 이를 재현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최종희 배재대 생명환경디자인학부 교수는 “어린 시절 고향 안성에서 할아버지가 감나무를 심으셨고, 아버지가 감을 따시면 저는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는데 할아버지, 아버지, 저 3대가 함께한 것이다”라며 “지금도 감나무만 보면 할아버지가 서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원은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면서도 그 이상의 것들을 우리에게 준다.
정원은 자연이 준 천 가지 얼굴을 한 선물이다. 앞서 정원의 중요한 요소로 식물을 꼽았다. 정원을 통한 힐링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요소는  ‘의도’로 보인다. 최종희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80%가 정원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의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원을 만들고 가꿨던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인간의 생각을 아는 데서 공감이 시작된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을 ‘지혜의 샘’이라 불렀다. 정사로 지친 심신을 치유해 주는 곳이라고 했다. 선조는 아버지가 살구나무를 좋아한다고 해 살구나무를 심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경효사상이 식물 하나인 살구나무에도 옷 입혀져 있는 셈이다.
정원은 시대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정원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 측면에서 볼 때, 정원은 사람들의 마음속 이상향을 내 현실 공간에 구현하려는 부단한 노력이었다. 현실은 팍팍하지만 마음속 에덴동산을 꽃과 나무를 통해 그려봄으로써 닮고 싶고, 갖고 싶고, 찾고 싶은 것들에 닿아 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부단한 소통의 과정이자 삶의 표현이었던 정원.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귀한 정원 하나를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자세, 무엇보다 그들이 정원에서 누리고자 했던 여유다.
가쁜 호흡이 아닌 깊게 들이마시는 숨, 멈추지 못하는 이가 느리게 걸어 보는 쉼,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약동하는 삶. 모두 정원에서 가능하다. 당신은 그러한 정원을 가지고 있는가.

춘천시 동면에 거주하는 김인태 씨 주택 정원. ©이병배



<정원의 재발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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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5-0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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